16. 회식
교대 근무 특성상 전 직원이 참석하는 단체 회식이 우리는 불가능하다. 3개 조가 하루에 시간을 달리 하여 모두 근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론상으로는 휴무 조와 조간 근무 끝난 조, 이렇게 2개 조가 회식할 수 있다. 물론 휴무 조의 희생이 필요하다. 이는 전일제 주간 근무자가 토요일이나 일요일 등 쉬는 날에 회식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조끼리 아주 친하거나 혹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화해를 필요로 하는 등의 긴급한 용건이 생기지 않는 이상 단체 회식은 아주 보기 드물다. 3년 가까이 근무하는 동안 딱 한 번 있었을 뿐이다. 조를 이끄는 2개 조 반장이 워낙 친해서 이루어진 극적인 회식이었는데, 그 이후 어느 누구도 선뜻 먼저 제안하지 않는 것을 보면 서로 부담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회식은 1개 조 단독으로 하게 된다. 각 조마다 성향 차이가 있어서 1년이 지나도록 회식 한 번 하지 않는 조가 있는 반면, 월 1회 꼬박꼬박 회식하는 조가 있다. 이는 반장의 성향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회식은 조간 근무 두 번째 날을 선호한다. 퇴근하면 오후 3시. 이 시간에 식당에 가면 술손님 적어 한적하니 좋은 데다 일찍 시작하니 일찍 끝난다. 저녁 9시를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게다가 다음 날이 석간 근무, 오후 출근이라 시간적 여유가 많다. 술이 조금 과해 숙취가 있더라도 여유롭게 해장하고 나올 수 있는 시간대다. 깨질 듯한 머리와 더부룩한 속을 참아가며 아침에 출근했던 수많은 날들이여 이제는 안녕이다. 세상에 이런 날이 오다니 싶다.
회식할 때는 룰이 있다. 첫째, 술 강요가 없다. 이미 산전수전 다 겪었던 백전의 노장들 아니던가. 각자 좋아하는 술을 골라 딱 1병씩만 마신다. 첫 잔만 서로 따라 주고 이후부터는 혼자 따라 마신다. 슬 못 마시는 사람은 음료수로 대체한다. 페이스 조절은 온전히 자기 몫이다. 둘째, 철저히 더치페이다. 만약 계산한다면 이유가 합당해야 한다. 로또 1등 당첨이라면 인정. 셋째, 뒷담화 일절 금지. 좋은 얘기, 도움 되는 얘기만 하자. 이러니 회식이 깔끔하다. 먹고 싶고, 또 맛있는 것을 먹는 재미가 좋다.
안주가 좋다. 좋아하는 회다. 빨간 뚜껑(참이슬 오리지널의 별칭, 도수가 20.1도로 높음)을 주문했다. 감당할 수 있겠냐, 옆자리 반장이 눈으로 묻는다. OK, 사인을 보낸다. 하지만 잠시 후 당초 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페이스가 너무 빠른데,라고 머릿속에서 경고 메시지가 울리기 시작했다. 식탁 위는 온통 빨간 뚜껑이 가득. 룰이 깨졌다. 반장이 가자 하는데 몸이 휘청댄다. 다음 날 가까스로 출근했다. 어제 일찍 갔던 한 명, 집 가다 넘어져서 핸드폰 액정 깨졌다며 울상이었다. 그날 우리 조 룰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빨간 뚜껑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