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단을 짜다

헬스 일기 4

by EAST

운동 계획만이 다가 아니었다. 체중 감량은 식단 조절도 함께 해야 효과적이라는 숱한 경험담을 귓등으로 흘린 게 잘못이었다. 암만 열심히 운동하면 뭐 하나, 집에 와서 마구 먹어대면 말짱 도루묵인 걸. 지난번에 운동하고 나서 배 고파 라면 두 개에 밥까지 실컷 잘 말아먹은 후 얼마나 땅을 치며 후회했던가. 나란 사람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죄책감과 무력함에 시달렸다. 특히 당뇨가 있는 경우 피해야 할 첫 번째 음식이 바로 정제된 하얀 밀가루가 아니던가. 좋다. 술 끊었듯이 밀가루 음식도 어디 한 번 끊어보자며 이를 앙다물었다. 라면, 빵, 피자, 햄버거. 너희들 이젠 안녕. 당장 식단표를 짜기 시작했다. 현미밥에 두부, 멸치볶음, 계란말이, 김, 김치 위주로 먹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4시. 조간 근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오자마자 바로 헬스장 갔다. 한적하니 아주 좋았다. 계획대로 트레드밀 열심히 탔다. 경사 올렸다 내렸다, 속도 높였다 낮췄다, 쿵쾅쿵쾅 음악에 맞춰 구슬땀 흘리며 뛰듯이 빠르게 걸었다. 근력 운동도 열심히, 팔, 어깨, 다리 힘줘가며 20분 끙끙 잘 끝냈다. 한바탕 땀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이 개운했고 점점 떡 벌어지는 것 같은 내 어깨가 자랑스러웠고 뿌듯했다.


씻고 나니 저녁 6시 무렵. 점심을 일찍 먹은 데다 운동까지 해서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어 멸치볶음, 김치, 두부부침을 꺼낸다. 현미밥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다. 식단 조절 이틀째다. 식탁에 앉는다. 그런데 식욕이 없다. 하지만 배는 고프다. 이게 무슨 상황. 낯설다. 당황스럽다. 이런 고민 난생처음. 이런, 어떻게 하지. 칼칼한 떡볶이 생각 간절하다. 달달한 간짜장이 불쑥 당긴다. 아! 위기임을 직감한다. 밀가루들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 삑삑 삑삑, 현관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 누구지? 이 시간에. ‘아빠!' 둘째 아들이다. 지방에서 대학 다니는 녀석인데, 이번 주 안 온다더니 불쑥 온 것이다. 어쩐 일이냐, 눈으로 묻는다. ' 내일 친구랑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하며 들고 온 봉지를 식탁에 놓는다. 봉지에 찍힌 선명한 할아버지 그림과 KFC 글자. 이것은 설마. 맞다. 짐작대로다. 자극적인 감자튀김 냄새. 군침이 꿀꺽 나도 모르게 넘어간다. ' 햄버거 사 왔어 '아들 녀석 나 잘했지, 하는 표정이다. 주섬주섬 꺼낸다. '어! 아버지, 식사 중. 그럼 햄버거 안 드셔도...'아들 녀석 말 끝나기도 전에 내 손은 후다닥 비닐봉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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