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

내맘대로 일기 5

by EAST

경비원 일을 시작하면서 집안 살림 중 빨래는 자연스레 내 담당이 되었다. 낮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세탁기랑 건조기 돌리기에 아주 좋았다.


건조기를 사용하면 좋은 점이 많다. 우선 빨래 말리려고 집안에 여기저기 널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베란다 창밖으로 빨래를 널어 둔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요즘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불이며, 옷이 팔랑거리는 모습을 볼 때 간혹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해서 가슴 쓸어내린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젠 그러지 않으니 미관상 보기 좋다.


둘째, 먼지가 많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건조기가 빨래를 말리면서 먼지까지 제거해 버리니까

깨끗하다. 거실이며, 방구석에 숨어 있다가 서부 영화 주인공인양 사막의 회전초처럼 먼지가 굴러다니는 일이 이젠 없다.


셋째, 편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두꺼운 겨울 패딩이라도 하루 반나절이면 뚝딱 말라서 나오니 너무 편하다. 급하게 옷이 필요하더라도 걱정은 NO,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신속하게 뽀송뽀송하게 말려드리겠습니다. 믿음직스러운 집사다.


우리는 건조기를 일찍 들여놓은 경우에 해당한다. 아마 2017년쯤이었을 거다. 당시 국내에는 빨래건조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다. TV 홈쇼핑을 보고 아내가 큰맘 먹고 독일제 건조기를 구입했었다. 맞벌이라 아내의 수고를 덜어줄 수야 있다면, 까짓 비싸더라도 당연히 구입해야지 했다가 금액 보고 놀랐을 정도로 고가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막상 써보니 너무 편했다. 주위에 빨래건조기 꼭 써보라고 권유할 정도였다.


좋은 점만 있지 않다. 열풍으로 건조하다 보니까 전기 요금이 많이 나온다는 게 단점이다. 전기 레인지 돌리고, 커피 내리려 정수기 온수 가열하고, 건조기 돌리면 전력 과사용 경고 신호가 띠띠, 계속 울린다. 하지만 건조기 사용 후 생활의 편리함이 전기 요금 많이 나온다는 단점을 충분히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이건 생각 못했다. 평소 빨래를 자주 해 오던 아내였다. 그런데 건조기가 들어오니까 기회는 이때다 싶은지, 틈만 나면 무거운 이불 빨래를 돌리는 것이었다. 물론 낑낑거리며 이리저리 들고 다니는 것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이때만큼은 빨래건조기가 싫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건조기를 한 대 더 살까, 요즘 고민 중인 아내다. 어떻게 해야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나의 고민이다. 막느냐, 막지 못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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