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그림자

부모의 재결합 이후, 내 삶의 불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by 혜삐
어린 날의 그림자

행복이라는 단어는 내 어린 시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모님이 다시 함께 살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2008년 10월 10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사람들은 중요한 날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첫사랑을 만난 날을, 누군가는 졸업식을 기억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날이 불행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다.


아빠는 전직 직업군인이었다. 키 186cm의 거대한 체격에 단단한 몸. 멀리서 보면 위압적인 카리스마였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공포의 그림자였다. 다른 아이들은 아빠 품을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했지만, 내게 아빠는 늘 폭풍이었다. 언제 분노가 터질지 몰라 숨을 죽여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의 말은 늘 칼날 같았다.
“개 같은 년.”
“개보다 못한 년.”
아직 어린 나는 그 말들의 정확한 뜻을 다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낮추고, 부끄럽게 하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매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돌처럼 굳어졌다. 내가 잘못한 게 없어도, 내가 그저 숨을 쉬고 있어도, 그 말들은 날아왔다.


행동은 말보다 더 거칠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집안 공기는 단숨에 얼어붙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내 심장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 거친 숨소리, 삐걱거리는 발자국… 그 작은 신호들만으로도 집 안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바뀌었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아빠가 오늘은 어떤 이유로 화를 낼지, 아니면 이유도 없이 화를 낼지, 그건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무언가가 터질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폭언이 시작되면 나는 본능적으로 두 손을 모았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아직 어린 아이였던 나는, 맞고도 사과하는 법밖에 알지 못했다. 그게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빌어야 폭풍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조차도 늘 통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내 방에 있던 물건이 날아왔고, 때로는 손바닥과 주먹이 내 뺨에 꽂혔다. 발길이 복부를 때릴 때는 숨이 턱 막혔다. 눈앞이 아찔하게 어두워지면서, 그 순간만은 “내가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스쳤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가 되었다. 맞는 순간엔 누구도 내 편이 아니었고, 그 고통은 오롯이 나만의 몫이었다. 폭력은 끝나도 흔적은 내 몸과 마음에 깊이 남았다.


아빠의 기분은 집안 전체의 공기를 지배했지만, 화살은 유독 나를 향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 결국 화풀이의 대상은 나였다.
다른 가족들도 숨죽이며 눈치를 봤지만, 가장 많이 맞고 욕을 먹은 건 늘 나였다.
나는 점점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내가 문제라서 아빠가 화를 내는 걸까?” 그 질문은 어린 나를 더 깊은 두려움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집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 얘기나 집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대답하지 않는 게 안전했다. 내 집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나만 다른 세계에서 온 아이처럼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린 나는 늘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내 잘못이 아니어도, “내가 잘못했다”고 빌어야만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내 감정을 숨기고, 내 마음을 지우고, 내 존재를 감췄다.


아빠의 그림자는 내 어린 날을 지배했고, 그 그림자 속에서 나는 점점 숨이 막혀갔다.
그리고 그 어둠은, 지금까지도 내 삶의 깊은 곳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