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미루기를 미루기
책상 앞에 앉으면 수행 여부와 상관없이 투두리스트를 쓴다.
일기 쓰기는 투두리스트에서 빼놓지 않고 마지막 줄을 차지하지만, 달성률이 형편없는 항목이다. 강제성이 없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고, 다음날로 미루더라도 금방 기억해 함께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매일매일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스무 해에 숭덩숭덩 구멍이 뚫렸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로 항상 고민했다. 나는 왜 쓰고 싶고, 도대체 무엇을 쓰고 싶은 걸까. 고민은 깊은데 증거가 너무 없었다. 그래서 아쉬워진 것이 일기였다. 흐릿한 그림자로 남은 크고 작은 사건들 자체도, 또 그 순간들을 어떤 마음으로 겪어냈는지도- 흘리지 않고 남겨두었더라면 얼마나 큰 영감 보따리가 되었을지 아쉬워 입맛이 썼다.
이제라도 기억나는 시점부터의 일들을 기록하자고 마음먹으니, 가슴이 답답해 선뜻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복기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찝찝한 감정의 찌꺼기들 때문이었다. 가슴이야 답답하든 말든 내버려두고 손이라도 움직였으면 됐을 일인데 정작 손은 가만히 두고 답답한 가슴은 각종 도파민으로 마취시켰다.
그렇게 또 몇 달의 시간이 기록 없이 날아갔다.
하루에 10분. 아니 단 5분이라도 집중해 아무 말이나 쓰는 것이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울까.
텅 빈 일기장 폴더를 흰자로 노려보다가 지난달에 들은 소설 쓰기 수업이 생각났다. 일주일을 기한으로 하는 과제가 있으니, 난생처음 엽편소설이라는 것을 매주 한 편씩 써낼 수 있었던 기억. 감시와 기한, 강제성밖에는 답이 없겠다는 깨달음이 소름처럼 등줄기를 흘렀다.
소모임 어플을 설치하고 '매일 쓰기', '일기', '일기 쓰기' 따위를 검색했지만 마땅히 나오는 모임이 없었다. 누군가 지어둔 감옥에 편하게 걸어 들어가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투두리스트에 '일기 쓰기 소모임 개설'을 적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나서야 발제문을 썼다. 한 번 쓰기 시작하니 재미가 붙었다. 소수의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사유를 나누고 기록을 쌓아갈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며 '모임 만들기' 버튼을 눌렀다.
온갖 쓰레기로 집을 짓는 새처럼. 어떤 새는 둥지를 만들 때 자기 배에서 깃털을 뽑아 쓴다고 한다. 사실 책상에서 하는 일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배에서 깃털을 뽑아 둥지 틀기. 내가 나를 재우고, 나를 먹이는 일. 일기를 쓸 때면 매번 그런 기분에 사로잡힌다.
- 문보영 [일기시대]
·일기를 쓰며 나 자신과 더 친해지고 싶지만 어쩐지 쑥스러웠던 분들
·일기만 쓰면 생각 정리, 마음과 세계의 평화, 글감의 화수분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나 시작은 하지 못하신 분들
·꾸준히 일기 쓰는 게 평생의 과업이었으나 아직은 과업으로 남기고 계신 분들
·기록의 필요성은 절실히 느끼지만 혼자서는 몸이 따라주지 않는 분들
매일 밤 무엇이라도 조금이라도 써낸 자기 자신을 자랑해 주세요.
자랑할 생각만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저 같은 분들은,
줌으로 만나 함께 쓰는 시간을 가집니다.
-자랑하는 시간: 22~24시 (오픈 채팅)
-함께 쓰는 시간: 23시~ (줌 미팅)
-육필 or 타이핑/내용/분량 자유
-공개 여부 자유
-미뤄 쓰기 찬스
저녁이 있어야 일기 거리도 있겠죠.
야근, 시험 기간, 저녁 약속, 여행, 가족 모임, 나 자신과의 시간 등을 보장해 드리고 저 역시 보장받기 위해
아래의 조건에 따른 결석을 허용합니다.
ㄴ결석 가능 기간: 2주 미만
ㄴ미뤄 쓰기 최소 분량: 일주일 기준 3일 이상
예시) 13일 결석 시 6일 이상의 일기 자랑
-줌 미팅은 주최자가 미뤄 쓰기 중일 경우 부재할 수 있습니다
-주제가 필요한 경우 대화방에 추천 요청하시면 성심성의껏 제공해 드립니다
-종교, 영업, 판매, 폭언 및 본래 목적을 과도하게 벗어난 친목을 제외한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하나, 자랑 시간(22~24시)에는 자제 부탁드립니다
-2주 이상 자랑하지 않으신다면 여정을 포기하신 것으로 간주합니다
-분기를 기준으로, 가장 꾸준히 성실히 자랑하신 분께는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