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를 미루기를 준비하기

미루기를 미루려는 마음

by 윤경주



글을 써야겠다.

혼자서는 늙어 죽을 때까지 평생 쓰지 않을 것 같으니, 남이 읽을 글을 써야겠다.

마침내 다짐한 후 글감을 고민할 때에 내 삶을 관통하는 몇 가닥 중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루기'였다.


잠자리에 들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때 백 퍼센트에 가까운 확률로 후회하게 한 원인.

오늘의 나에게 육체적 평안과 약간의 죄책감을 부여하는 것.

내일의, 또 다음 내일의 나에게 할 일을 양보해 강하게 키우는 것.


나를

계획 전문 아티스트

셀프 시간 양해 전문가

현실 안주 프로텍터

로 만드는 것.


지금 이 순간에도 당장 먹을 밥은 안치더라도 쌓인 설거짓거리는 내일 아침으로 미루고 글을 쓰고 있지만, "제발 그만 좀 쉬어라",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는 얘기를 만나는 모든 지인들에게 듣는다. 하도 미루다 보니 남들에게는 부지런해 보이도록 포장하는 특출 난 재능이 생긴 걸까.

무엇이 나를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무엇에 만족하지 못해서 자꾸만 더하려는 것일까.


무언가를 이뤄내더라도, 반대로 이루지 못하더라도 종래에 남기는 것은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뿐인 나. 남에게는 톡 치면 나올 정도로 아낌없이 베푸는 공감과 이해와 칭찬과 위로를 스스로에게는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하는 나.


착하게 살았는데 스스로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내가 불쌍해서 결심했다. 계획 세우는 특기를 뛰어넘는 특특기가 세워둔 계획 미루기라면, 특기보다 강력한 특특기를 살리면 되겠지. 미루려는 마음도 미뤄 버리자.


결심이 결심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원칙도 정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해치우기.

하고 싶지 않은 것, 못하겠는 것은 과감히 지워버리기.

그 과정에서 죄책감은 절대로 갖지 않기.

"그럴 수도 있지"를 생활화하기.

사랑한다고 소리 내어 말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외면하지 않고 찬찬히 세심히 들여다봐 줘야 하는 사람이 있음을 명심하기.


미루기를 미루기까지 끝내 또 미뤄버리게 되더라도, 이번에는 마냥 공허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