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
시골집에 다녀오던 날 사진에 담은 부모님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허리 굽은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지팡이에 의지하는 생경한 풍경에 마음이 아리다.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 앞에 꼼짝없이 꺾여버린 부모님의 젊음이다.
세월이란 놈이 이리 쉬이 배반할 줄 몰랐음이다. 어느 틈에 구부정한 노인이 되어버린 것일까? 헛된 욕망과 욕심이란 놈에 눈이 멀어 세월을 좀먹고 있을 때 부모님의 시계는 더욱 바삐 움직이고 있었나 보다. 매정한 세월은 이마에 잔주름을 늘리고 새치를 심었는데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감추기에 급급했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해가 갈수록 깊어 간다. 가만 눈을 감으니 절로 짙어지는 고향의 향기다.
어느 여름날 나란히 앉은 나무 아래, 아버지와 함께 맞던 무더위를 날려주는 시원한 강바람이 정겹다. 마을 어귀 늠름한 팽나무는 젊은 아버지의 쉼터가 되어 주었고, 이제 중년의 딸에게도 변함없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언제나처럼 묵묵히 한 자리에서 기다리다가 너른 품으로 자식을 맞이하는 우리네 부모와 닮았다. 성년이 된 자녀를 도회지로 보내고 그리는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자꾸만 멀어지는 아버지의 기억 앞에 ‘사랑한다. 감사하다.’를 외치지만 아버지의 가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후회와 반성으로 얼룩진 지난날, 온전한 정신일 때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전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이 안타깝다.
“아빠, 죄송해요. 제가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여행 좋아하시는데 좋은 곳도 더 많이 가고 효도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를 하는 못난 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독인다.
“아니, 그만큼 했으면 됐지. 얼마나 더 한다냐.”
“그때는 다 그렇게 고생했어. 우리뿐 아니라.”
5월의 어느 날 가족들의 방문을 기다리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건넨 첫마디는.
“보고 싶어서 많이 기다렸다.”
그 말씀에 울컥하여 목이 메인 아들.
“나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지을까 했더니만 그래도 어떻게 하네? 모내기는 언제 한댜?”
아버지의 말씀에 적잖이 놀란 어머니의 대답은.
“며칠 후에 하는디, 그럼 와서 지켜봐요.”
“그래야지 그럼. 내가 가서 봐야지.”
반가운 만큼 아쉬움도 커진 만남의 끝에서 적잖이 실망한 아버지 말씀은.
“겨우 여기로 다시 왔다냐?”
발길을 옮기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서글픈데,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는 가족들의 발걸음도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행복은 여러 모습을 하고 곳곳에 나타났다가 사라기기를 반복한다. 마치 우리가 볼 수 있는지를 시험이라도 하는 양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우매한 인간은 불평을 일삼으며 먼 곳만을 바라보다가 놓치기를 반복한다. 행복이 곁에 있을 때 바로 알아차리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임을 큰 대가를 치르고서야 겨우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