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나를 지키는 마법의 주문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누군가는 바로 등을 돌리고 누군가는 길길이 날뛰며 고함을 지르고 또 누군가는 그냥 눈 딱 감고 꿀꺽 삼켜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에너지를 최최소화한 방식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물론 처음에는 이불속에서 소리를 질러 봤고 공중을 향해 헛발질을 하다가 화풀이 인형을 내동댕이쳐 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던져봐도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는 귀여운 표정의 인형이 늘 좋았다. 하지만 화란 감정은 표출할수록 누그러지기는커녕 이성을 마비시키는 괴력이 있다. 처음엔 작은 불씨였던 것이 더 큰 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바로 후회한다.
불같이 화난 어느 날 씩씩거리는데 마침 아끼는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학창 시절부터 펜을 쥐면 무작정 끄적이던 손버릇이 자연스레 나를 이끌었다. 뭣하나 논리적이지도 않고 말이 되지 않는 감정 쓰레기통 속의 단어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노트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나 보다.
처음엔 분노로 손끝이 떨리고 뾰족한 단어들 사이에 숨죽인 울음이 바짝 자세를 낮춘 채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문장의 끝이 부드러워지면서 점점 분노의 감정이 사그라짐을 느낀다. 마침내 나는 순간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 객관적이 되거나 관찰자가 되고, 결국에는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왜 화가 났는지 무엇이 나를 건드렸는지 그 뿌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자판 위에서 나는 화를 발산하는 게 아니라 정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화된 감정은 더 이상 나를 해치지 못한다. 누군가는 화날 때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침묵에 갇히지만 나는 키보드 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았다. 나는 강태공이 되어 내 안 감정의 조각들을 하나씩 단어로 건져 올린다.
오늘도 나만의 응급실을 찾아 소리 없는 응급처치를 하는 중이다. 감정이 과열되기 전 문자를 꺼내고 민감한 나를 위한 문장 처방전을 내렸다.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을 글, 내 안의 화를 진정시키는 나만의 작고 조용한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