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하루의 가장 이른 순간을 살아내며
늦가을의 새벽은 공기부터 다르다.
바람은 바다의 숨결을 품고, 귤나무 잎은 은근히 흔들린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세상은 조금씩 깨어나고,
나는 그 고요함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레 움직인다.
창가에 앉아 따뜻한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신다.
입안에 번지는 온기가 몸속 깊이 스며들고,
하루의 첫 마음이 그 온기 속에서 천천히 피어난다.
운동화 끈을 조이며 문을 나서면
아직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멀리서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풀잎 끝에는 이슬이 맺혀 반짝인다.
걷는 동안 몸이 조금씩 풀리고,
마음도 서서히 맑아진다.
해가 뜨기 전의 하늘은 늘 가장 푸르다.
그 빛이 조금씩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하면
나는 나도 모르게 멈춰 선다.
이 순간이 좋다.
세상보다 먼저 깨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나 자신에게 다가가는 시간이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부지런함이라 부르지만
내게는 그저 마음의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이겨낼 것도 없이
그저 나답게 하루를 맞이하는 일.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을 어귀에는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귤밭 사이로 희미한 안개가 떠 있고,
닭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번진다.
문득, 세상 전체가 새하얀 숨을 고르는 듯하다.
작업실 문을 열면 나무 냄새가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다.
어제 다듬다 멈춰둔 나뭇결 위로
새벽빛이 얇게 내려앉는다.
나는 그 빛을 따라 손끝을 올리고,
오늘의 온도를 조심스레 맞춘다.
이른 시간의 고요 속에서
나무는 말없이 하루를 받아들이고,
나 또한 그 곁에서 천천히 깨어난다.
늦가을의 제주,
그 부드럽고 단정한 빛 속에서
나는 매일, 처음처럼 하루를 다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