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깎이는 햇살
날카로운 새벽 공기를 깊이 들이마신다. 어둑한 마당을 천천히 가로지르며, 밤의 잔향이 아직 가시지 않은 작업실 문을 밀어 연다. 조명을 하나둘 켜는 동안, 방금까지 꿈속에 머물던 숨결들이 조금씩 현실로 내려앉는다.
따뜻한 커피를 입안에 머금고, 차가운 손끝을 호호 불어가며 나무 표면을 살핀다. 칼날이 닿는 자리마다 얇게 벗겨지는 결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듯 조심스러운 소리를 낸다. 재미있게도 이 조용한 순간에만 나무는 자기 목소리를 꺼내놓는다. 마치 누군가에게 오래 묵혀둔 고백을 털어놓는 것처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처음엔 검은 유리처럼 닫혀 있던 통창 너머가 서서히 빛을 머금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햇살이 등 뒤로 스며들고, 차가웠던 어깨와 목덜미를 조심스레 감싸 안는다. 그 온기가 손끝까지 전달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호흡이 느긋해진다.
아침이 이렇게 천천히 스며드는 걸 느낀 적이 있었던가. 바쁜 하루로 흘러가기 전, 잠깐의 틈처럼 주어진 시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 나무는 나를 조금씩 안쪽으로 이끈다.
쓸쓸하다고 말하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고요는 언제나 나를 살리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세상 바깥의 날카로움이 잠시 멈추는 자리. 그리고 그 자리를 지나 햇살이 들어오면, 비로소 하루라는 것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오늘도 그렇게, 나무는 나에게 시간을 깎게 하고, 나는 나에게 조금 더 천천히 살아보자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