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이라는 놈

노안

by 나무를만지는


이제 가까운 글이 잘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는 안경이라는 놈이 꼭 필요하다.
책상 위 커피잔 옆, 조용히 놓인 안경을 손에 들면
겨울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유리알에 닿는다.
입김이 스치면 희미하게 김이 서리고,
그 안에서 계절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다.
눈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일,
그건 어쩐지 나이의 그림자를 보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자연스럽다.
어느 순간부터는 불편함도 하나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안경을 쓰면 흐릿하던 활자가 또렷해진다.
그 선명함이 잠시 반가우면서도,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젊을 땐 글씨를 읽었지만,
이제는 문장 사이의 여백을 읽는다.
그 사이에서 묻어나는 온기와 침묵,
그리고 지나온 시간의 결을 본다.

창가에 앉아 책을 펼치면
바깥의 찬 바람이 유리창을 흔든다.
안경알에 잠시 맺힌 서리를 닦아내며
나는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는 일,
그게 어쩌면 나이 든다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안경이라는 놈,
이제는 나의 일상 속 한 조각이 되었다.
그 너머로 세상을 바라볼 때면
모든 것이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부드럽게 다가온다.
이 계절의 끝에서, 나는 그렇게 하루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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