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인가?

올해 마지막을 더하며...

by 나무를만지는


달력을 한 장만 더 넘기면 새해가 열린다는 게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숫자는 정확해서,
틀림없이 한 달 뒤면 우리는 다른 해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원래 겨울은 춥다.
그렇게 배웠고, 그게 당연하다고 믿어왔다.
찬바람이 뺨을 때리고, 손등이 텄다가 아물고,
옷을 몇 겹이나 겹쳐 입어도 새어 들어오는 한기가 있어야
‘아, 겨울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올해 겨울은 영 눈치가 없다.

11월의 끝자락인데 오늘도 반팔이다.
이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게 웃기다.
바람이 분다. 그런데 날카롭지 않다.
예전 같으면 칼날처럼 볼을 스치고 갔을 바람이
무디고 둥글어진 채로,
소매와 소매 사이를 느긋하게 기웃거리다
마음 바뀐 사람처럼 슬쩍 빠져나간다.

이상하게도, 그 감촉이 낯설다.
쥐가 나도록 추웠던 새벽 러닝,
입김으로 앞이 흐려지던 겨울 새벽 산책,
그때의 공기는 분명히 더 날카롭고 매서웠다.
오늘의 바람은, 마치 가을이 아직 자리를 못 비운 듯하다.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한 느낌.

몸은 편하다.
손이 곱을 일도 없고, 아이들 장갑 챙기느라 정신 팔릴 일도 없다.
두꺼운 패딩을 꺼낼까 말까,
신발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일 필요도 없다.
그냥 가벼운 옷차림으로 문을 나서면 된다.
이건 분명 편리함 쪽에 가깝다.

그런데 편리함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상하게 이런 날 알게 된다.

나른한 햇살이 등을 살짝 지그시 누른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애매한 온기.
나는 바다로 향한다.
물결 소리가 귓가에 붙어 있는,
늘 그 자리에 있는 듯한 포구.

바다에 앉아 낚시하는 지인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
낚싯대 끝이 아주 가끔, 살아 있는 것처럼 툭툭 떨린다.
나는 그 사람 옆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터앉는다.

별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 것들을,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주고받는다.
올해는 유난히 안 춥다는 이야기,
겨울 같은 느낌이 잘 안 난다는 이야기,
그래도 아침에 이불에서 나올 때는 여전히 귀찮다는 이야기.

지인이 말한다.
“그래도 안 추우니까 좋지 뭐.”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
난방비 문자도 덜 무섭고,
아이들 감기약 먹일 일도 조금은 줄어들 거다.
분명히 ‘좋은 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도 한켠에서 자꾸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든다.

겨울은 원래 차가워야 하는데,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계절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운동장에서 혼자만 체육복을 안 챙겨 온 아이처럼,
뭔가 빠진 채로 서 있는 느낌.

바람이 다시 한번 스쳐 지나간다.
팔과 목덜미 사이를 지나가며
“이게 겨울이냐” 하고 되묻는 것 같다.

나는 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물결은 계절과 상관없이 밀려왔다 밀려가고,
멀리서 갈매기 한 마리가 느릿하게 원을 그리며 난다.

“요즘 겨울은 겨울 같지가 않아.”
내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지인이 낚싯대를 한번 추켜올리며 웃는다.

“춥지 않아서 좋은 거지 뭐.
추운 거보단 낫잖아.”

그 말도 맞다.
그리고, 어쩐지 그 말이 다가 아니기도 하다.

말끝을 삼키고, 나는 손바닥을 무릎 위에 펼쳐본다.
손바닥에 닿는 공기의 온도,
살짝 미지근한 이 늦가을 같은 겨울 공기를
한 번 더 확인하듯 느껴본다.

겨울답지 않은 겨울.
편안한데 어딘가 허전한 계절.

좋은 걸까, 아닌 걸까.
그 경계선에 앉아 있는 기분으로,
아이들의 손을 하나씩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쉬움과 서운함을 바다에 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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