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녹록지 않은 현 점포 생활을 마감 후 지방 대도시 점포로 발령은 받은 강대리는 직전의 근무 점포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기회가 잦았다. 이번 인사에서 4급 책임자를 문책하여 모두 다른 곳으로 날려버리려고 했는데 1/2만 실행했다고 옥 점장은 강대리의 후임자들에게 공공연히 자랑을 했다. 책임자의 문책성 인사발령은 물론 최일선 창구를 맡는 남ㆍ여사원의 전보인사도 본인의 의도대로 할 수준에 턱 없이 모자랐다. 강대리뿐 아니라 이는 모든 소속 직원들이 다 아는 현실인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강대리와 띠동갑인 일선 창구 남사원 심계장은 평소 전표나 문서철 각종 장표류를 찾아내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창구 여직원들은 이런 소소한 일의 해결을 심계장에게 신세를 지는 일이 많았다. 매우 많은 빚을 졌고 부채 감정도 있었다. 우리 지점은 협소한 공간 등 여러 사유로 점포장실이 다른 점포의 그것과 달리 정상적인 방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사방을 벽돌벽으로 두르고 폼나게 도배가 되어야 하나 패널로 벽을 대신하고 천정 까지는 한자 내외의 여유공간을 두었다. 그래서 금고 안에서 이런 일을 자주 할 수밖에 없는 심계장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옥 점장의 전화통화 내역은 물론 고객 또는 책임자와 대화 내용도 세세한 부분까지 들을 수 있었다.
옥 점장의 고교 선배가 이끄는 정부가 출범한 후 새로이 신설이 검토되고 있는 금융감독원장에 자신이 의사와 능력이 있음을 여기저기 내보이는 국가기밀(?)도 엿들었다.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무위로 돌아가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러다 보니 옥 점장 관련 고급 정보나 점포 운영전략 직원 인사 관련 크고 작은 정보는 심계장에 신세를 많이 졌다.
최근 강대리의 후임 서무책임자로 업무분장이 된 권 대리는 옥 점장이 업무상 ㆍ업무 외로 주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동료들이 삼삼오오 모인 호프 미팅에서 분에 겨운 나머지 훌쩍댔다. 6척 장신 우람한 체구를 자랑하는 친구에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전직 정통 관료 출신 고위공직자가 당사 CEO로 새로이 부임했다. 직원의 업무 지식 능력이나 상담 능력의 제고를 위한 연수를 대폭 강화했다. 모든 연수엔 평가를 하여 이에 따른 포상과 일정한 경우엔 인사가점을 부여하는 좀 튀는 방침을 들고 나왔다. 우연의 일치였다. 최근 강남의 한 점포에서 전입을 온 권차장과 강대리는 얼마 전 마친 직급별 업무연수 평가에서 각자 탑에 올랐다. CEO을 대신하여 옥 점장이 전 직원을 모은 자리에서 표창패와 부상을 전달했다. 사설이 좀 길어졌다. 본인이 마치 CEO인양 행세를 했다. 이 조그마한 점포에서 탑이 둘이나 배출되다니 참으로 고무적이라 했다. "이 모든 게 다 점장님의 은공입니다" 정도의 용비어천가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권차장은 98점 vs. 96점 이기 때문에 탑의 가치가 좀 다른 게 아니냐며 강대리에게 웃으개 소리를 건넸다.
지금과 달리 당시엔 점포마다 이른바 업무용 차량이 있었다. 말 그대로 점포장은 물론 모든 책임자들이 업무상 목적이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게 본래의 취지였다. 그게 운행 목적에 맞는 일이나 점포 장마다 스타일에 따라 다르긴 했다. 점장 개인이 거의 독점하여 운행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이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옥 점장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한술을 더 떴다. 강남 모아파트에 거주하는 옥 점장은 출근길엔 전철을 이용하여 우리 지점 인근 역에 도착했다. 그러면 전담 기사가 픽업을 하여 사무실로 모시는 등 명실공히 이렇게 업무용으로 이용 시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일과를 마치면 자택까지 모셔다 드리고 업무용 차량은 해당 기사가 본인의 자택에 보관 후 다음날 똑같은 패턴으로 운행을 이어갔다.
오늘은 이런저런 곳을 경유한 후 옥 점장 자택으로 향하던 중 전담기사로부터 자신이 핸들을 넘겨받았다. 옥 점장은 업무용 차량으로 귀가를 했다. 이에 전담 기사는 자신의 거주지와 거리의 원근에 불구하고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다시 대중교통의 신세를 지어 자택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이제 이런 패턴이 일상이 되었다.지금이라면 갑질 중 갑질로 꼽혀
큰 사단이 났으리라.
매주 월요일 업무개시 전 책임자 미팅이란 걸 어김없이 이어가는데 태생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다 보니 때론 자기도취가 된 양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에 창구 남자 직원들과 내통을 하여 고객으로부터 전화호출이 왔다며 깜박이는 대기 버튼 모드로 가장했다. 4급 책임자를 특정하여 불러내어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는 묘책을 개발하여 애용했다
경인 관내 점포 4개를 묶어 이른바 경인지역
본부라는 편제를 만들었다. 지역본부장엔 옥 점장을 겸임케 했다. 무늬만 또는 ‘같기도 본부장’ 제도였다. 이사대우라는 직함을 부여하고 호칭은 이사로 불렀다. 실제 명실상부한 지역본부장이 되려면 관내 점포 직원들 전보는 물론 승진 등 실질적인 인사권과 예산 배정권도 가져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무늬만 임원으로 만들자니 일반직원인 부서장에서 퇴직을 시키고 직원도 임원도 아닌 어정쩡한 자리가 생겨났다. 어쨌거나 회사 직원들 모두는 본부장ㆍ이사님이라 불러주니 그리 싫지 않은 눈치였다.
VVIP 고객 대상 배포용으로 제법 그레이드가 되는 공연 티켓이 지역본부별로 배포되었다. 강대리는 종래 관행대로 4개 점포의 외형 등을 고려하여 점포별 수량 배정을 마쳤다. 실제 원안대로 실행이 되었다. 물론 옥본부장(이사)의 사전 승인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추후 동급 다른 책임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강대리가 무슨 지역본부장 행세를 했다"는 뒤통수를 치는 일이 벌어졌다. 부하직원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데 한없이 인색했다.
옥이사의 고교 선배가 최고 군 통수권자가 된 후 당사의 최초 정기주주총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공고된 안건에 신임 임원의 선임 건도 있었다. 옥이사도 근속연수ㆍ직위ㆍ직급 등에 비출 때 명실상부한 임원에 오를 욕심을 내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본인의 출신지ㆍ출신학교를 내세우고 권력 실세 고위층의 이름도 들먹였다. 전방위 로비를 하느라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우리 지점 직원들 눈에 쉽게 들어왔다. 아주 오랜 세월 근무 경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강대리도 나름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전망을 종합해 보았다. 같은 남쪽 출신 중에도 그동안의 평판 등을 볼 때 옥이사는 결코 정통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드디어 주총일이 임박해짐에 따라 옥이사는 외부활동 회수와 강도가 늘어났다. 오늘이 임원 후보가 최종 낙점되는 날이라고 했다.
점심식사 후 외부로 나서는 옥이사에게 강대리는 서무책임자의 가장 기본 임무 중 하나인 점포장의 동선 파악을 위해 당연하지만 당돌한 질문을 정중히 건넸다.
"이사님 오늘 지점으로 복귀하시나요?" 라며 매우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 "그건 왜 묻나? 강대리"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에 순간 머쓱했다. 강대리는 이에 그저 정면 대응은 감히 할 수 없었다. 그저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점포로 복귀를 하지 않으면 임원에 선임되는 거로 보아도 좋은 형국임을 점포 소속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업무 마감 시간이 제법 지난 시각이 되어서야 옥이사는 점포로 복귀했다. 강대리는 물론 모든 직원들이 옥이사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평온을 찾으려고 무던 애를 쓰는 등 직원들은 각자 표정관리에 힘썼다. 옥이사가 최종 퇴청을 한 후 그동안 애써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키득거리는 소리가 점포 내에 가득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강대리는 여러 점포를 거쳐 강서지역의 한 점포에 부장으로 불리며 근무를 이어갔다. 평소 케미가 좋은 남직원 이계장으로부터 전갈을 받았다. 이젠 전직이 된 옥이사로부터 강 부장을 찾는 전화를 자신이 받았다. 강 부장은 현재 외근 중이라는 답변을 했다. 그러자 옥이사는 강 부장은 자신과의 인연을 대리 시절에 맺었기에 ‘부장’이 아니라 ‘대리’로 부르겠다는 참으로 기괴망측한 논리를 폈다. 참으로 눈을 씻고 찾아도 덕이라곤 한 줌도 없었다. 옥이사는 열등의식과 우월감이 뒤범벅된 상태로 계속 세상을 살아갈 것으로 보였다.
오늘도 3급 이상 책임자 미팅을 마치고 외부 영업활동을 준비하려는데 신 점장은 강 부장을 불러 세웠다.
"강 부장, 옥 이사님 잘 아는 사이 아닌가? 같이 근무한 적이 있지?"
”제가 점포장으로 모신 적이 있습니다. “
강 부장은 출제자의 의도에 아주 딱 맞는 답변을 했다. 신 점장의 질문 의도와 배경을 강 부장은 이미 휑하게 꿰고 있었다. 옥이사가 부친상을 당했는데 강 부장의 차량을 이용하여 신 점장 자신과 함께 문상을 다녀오자는 제안에 다름이 아니었다.
사실은 옥이사 부친상을 모르는 척하거나 상주 계좌로 송금하여 뜻만 전하려던 참이었다. 강 부장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문상을 나섰다. 대부분의 조문객이 흔한 인사치레로 묻게 되는 질문이 있었다. 연세가 얼마이고 혹시 병상에 오랜 기간 누워 고생은 하지 않았느냐는 것 등이 그것이었다. 문상객들의 계속되는 이런 질문에 아무리 대답하기에 지쳤다 한들 그것은 아니었다.
옥이사는 어디선가 긴급하게 메모지를 구해왔다. 당 ○●세라고 고인의 성함 아래 부분에 추가로 부착하는 기동력을 발휘했다. 별로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다. 상갓집 문상 시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이미 충분히 마쳤다. 이윽고 자리를 접고 일어나려던 참에 옥이사는 신 점장과 강 부장을 반 강제로 주저앉혔다. 밀려드는 회사의 전ㆍ현직 문상객에 대한 응대에 본인을 대신하라는 미션을 하달했다. 거절하기도 난감했다. 이래서 당일 하루 일과는 마감되었다.
무릇 복종은 강요가 가능하지만 존경을 그게 어렵다는 말이 있다. 백번 천 번 맞는 말이다. 금융기관 점포장 모두가 부하 직원에게 존경을 받는 것을 기대하기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마음에 우러나 점포장을 따르게 하는 리더십은 필요했다. ‘억지 춘향이식 복종’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저명한 원로학자 말대로 최소한 ‘비판적인 복종 자세’라도 불러내는 점포장의 리더십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