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조직은 언제나 바뀔 수 있을까

by 그루터기


“선생님께서 신청한 생활지원금은 지급을 할 수 없습니다. 사모님이 정규직 공무원이고 주소지가 같기 때문에 아예 지급대상자가 아닙니다.”

내가 생활지원금을 신청한 지 정확히 2주째 접어드는 날이었다. 나의 주소지 구청 주무관의 전갈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너희들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 그렇지 무얼 '


내가 혼자서 고향으로 귀촌한 지 5개월이 지났다. 지난달 하순에는 고로나 19 확진자가 되었다. 그래서 청주의료원으로 ‘7박 8일간의 칩거 여행’을 다녀왔다. 그 이후 먼저 경험한 지인을 통해 이런 ‘생활지원금’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격리 해제가 된 며칠 후 나는 면사무소를 찾았다. 그런데 담당자는 이 것에 관해 무엇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우선 지원금 신청은 주소지가 아닌 확진된 곳이고 지원금 규모는 격리기간에 따라서 차등해서 지급한다. 신청자의 계좌로 실제 입금은 약 2 내지 3주면 충분하다.”라고 했으나 모두 엉터리였다.


이러던 중 지난주에는 군청 담당자의 때늦은 피드백을 겨우 받았다. 지원금 신청은 주소지 행정관청에 하는 것이 맞다. 정확한 지급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남은 예산을 집행해야 하니 연말 정도까지는 될 겁니다. 최초 신청서를 접수한 공무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같은 공무원이 먼저 잘 못 안내한 점에 관한 사과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자신이 면사무소에서 넘겨받은 서류를 관할 군청에 나 대신 발송하겠다고 하며 생색만 냈다. 이것이 공무원 집단의 현주 소니 갑자기 뒷골이 당겼다. 복장이 터질 일이었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사기업체의 직원이라면 당장 잘렸거나 중징 계감에 충분했다.


생활지원금을 신청하러 처음 면사무소에 들어설 때부터 나는 이미 알아보았다. 공무원들도 이제 자유 복장을 도입한 지 오래였다. 청바지나 티셔츠 등 간편 복장을 하더라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있는 직원들을 민원인과 구별하기란 쉽지 않았다. 누가 직원이지 민원인인지 애당초 구분이 어려운 형편이었다. 일반 민간 회사 직원이 처음 고객을 응대할 때 제일 먼저 꺼내 드는 명함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소속팀과 이름을 먼저 밝히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이른바 ‘업무 실명제‘를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근무했던 금융기관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금융기관 직원은 고객과 얼굴을 맞대면 우선 명함부터 건넸다. 명함의 앞 뒷면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름은 가장 기본이고 직위, 직함, 대대표 번호, 직통번호 휴대폰 번호, 팩스번호, 이멜 주소 등 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배치했다. 게다가 자신이 보유한 주요 각종 자격증도 선별하여 부기했다. 뒷면에는 앞면의 아이템 중 몇 개를 솎아내어 영문으로 표기했다. 자신을 마케팅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라면 빼곡히 모두 채워 넣었다. 또한 목에 자신의 사원증을 걸고 근무했다. 고객 거래를 실명으로 해야 하는 ' 금융실명제'에 이어 이른바 업무(상담) 실명제를 철저히 지켰다.


이참에 공무원도 민원인에게 명함을 의무적으로 교부하는 것을 명문으로 해야 할 것이다. 자

신이 상담하고 처리한 업무에 관해서 본인의 직함과 이름을 걸고 마땅히 책임을 지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두려워서 그저 공무원이란 신분 뒤에 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난지원금과 관련하여 면사무소 담당자가 나에게 알린 내용 중 정확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한숨만 나왔다. 먼저 업무 관할을 제대로 몰랐다. 그다음엔 격리기간에 따른 지원금의 규모가 달라진다고 그릇된 대답을 했다. 민원처리 기간도 실제 2 내지 3개월인 것을 2주 내지 3주라 얼버무렸다. 게다가 성의도 없었다. 처음부터 업무 실명제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다 보니 그 이후 민원의 진행사항 등에 관해 피드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 공무’와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사기업의 영업활동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공무의 성격상 무조건 효율성을 따질 수 없는 성격이 있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양자 간엔 너무나도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작금의 공무원의 행태는 민간 회사 직원 대비 30년은 뒤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공무원들에게도 국민의 세금인 국가 예산으로 당당히 명함을 새겨 줄 필요가 있다. 고위직뿐 아니라 일선 창구 직원도 자신의 책상 위에 명패를 올려놓아야 한다. 군수(부군수), 면장(부면장)은 권한이나 결정권이 있겠지만 민원인과 가까이서 얼굴을 맞대는 직원이 아니다. 오히려 일선으로 갈수록 명패의 설치 필요성은 높다. 자신의 직통번호, 휴대폰, 이멜 주소 등을 오픈할 경우 혹시 민원인에게 시달릴 수 있음을 염려하는 듯했다. 담당자의 소속과 이름 기타 정보를 알리면 오히려 공무원과 공무의 신뢰도는 한층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연락처 좀 주세요.”

“저희들 공무원은 명함이 없는데요.”

마지못해 자그마한 종이 쪼가리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건넸다. 그마저도 꺼렸다. 이름을 물어야 그제야 마지못해 적어주었다. 이 것이 현실이었다.


민원에 대한 안내, 응답, 설명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 금융기관 직원은 특정 상품 판매 시 30 내지 40쪽에 이르는 ‘투자신탁 설명서’의 세세한 내용까지 설명하고 원본의 교부를 하도록 되어있다. 심지어 녹취도 한다. 이에 비하면 공무원의 행태는 아직도 한참 수준 미달이다.


공무원의 업무도 반드시 대면일 필요는 없다. 일정한 경우엔 팩스, 톡, 이멜 어플 등으로 대체 처리가 가능하도록 해서 편리성이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장 기본인 업무 실명제의 시급한 도입이 절실하다. 명함을 건네기는커녕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업무처리 기한도 획기적으로 단축해야 한다. ‘재량’이라는 것을 방패 삼아 마냥 늘어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민원 업무의 기한을 단축하는 데는 택배제도가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자신의 택배 물건이 ‘어디쯤 가거나 오고 있는지’ 어플이나 문자 톡으로 충분히 조회가 가능한 세상이다. 공무원도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도입하는데 아무런 걸림돌이나 장애는 없어 보인다. 쿠팡의 로켓 배송 제도를 살필 필요가 있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업무에선 사람이 다

죽은 다음 민원이 마무리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실손 보험금의 수령이 이주 좋은 본보기다. 병원을 다녀온 후 진단서, 의료비 영수증, 보험금 청구서를 팩스로 보낼 경우 빠르면 당일 계좌로 입금되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나는 이번 지원금의 수혜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를 받아내는데 2 내지 3개월이란 어마 어마하게 긴 세월이 왜 필요한지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흔히 전자제품 A/S 에 따른 사후 만족도 조사 제도 도입도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제대로 된 피드백을 위해서다.


공무원 조직과 민간 영리 회사 업무량이나 효율성은 하늘과 땅 차이다. 공무원의 근무 복장이 청바지나 티셔츠 등 간편복으로 바뀐 점은 일반 영리 회사를 이미 따라잡았거나 앞섰다. 그러나 민원처리를 하는 공무원의 책임감, 성실성, 속도 등은 최소한 한 세대는 뒤져 보였다.


‘나릿일’이란 것이 반드시 시장 논리로만 재단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인정한다. 이번 생활지원비 신청과 관련하여 공무원의 업무처리는 그 누가 보아도 과락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면사무소 담당자는 처음부터 업무 매뉴얼과 문서를 뒤적이거나 군청 담당자에게 세심하게 알아보고 답을 주어야 마땅했다.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어영부영 넘겼다. 자신이 없음에도 그저 아무렇게나 입 밖으로 내었다.


공무원의 직함도 중구난방이었다. 종래 일선 직원을 이르는 ‘담당자’나 ‘계원’이란 용어 대신‘주무관’이란 그럴듯한 것이 등장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관존민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으로 바꾸었는지 이해가 어려웠다.


내 주소지 구청의 주무관은, 실제 사는 곳에 관계가 없이 오로지 주민등록지를 기준으로 지급대상자 인지를 따진다고 했다. 나는 실제 고향에 살고 있다. 주소지가 아닌 곳에서 실제 사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지원금 지급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논리상 맞다고 본다.


나는 자가 격리 해제후 이 생활지원비를 미리 당겨서 요즈음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알티지 식물성 오메가 3’ 4개월분을 미리 손에 넣었다. 코로나 19 감염으로 인해 다운된 몸 상태를 끌어올리려는 작은 프로젝트였다. 게다가 고향 친구 절친 몇 이서 갈매기살에 소주도 한잔 곁들였다. 생활지원금의 본래 용도에 맞게 쓰려고 현금흐름을 앞당겼다.


‘꼭 이렇게 계좌로 들어올 돈을 예상하고 미리 일을 벌이면 기대했던 것이 무산되는 악순환’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벌어졌다. 머피의 법칙인지 잘 모르겠다. 허공으로 날아간 지원금을 무엇으로 메꾸어야 할지 오늘도 나는 고민을 했다.


코로나19 백신을 두 번이나 접종 후 확진되는 ‘돌파 감염’은 물론 3회 추가접종자도 오미크론이란 변종 감염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약 열흘 전 추가접종까지 마쳤다. 실제 살고 있는 고향으로 하루빨리 주소를 이전해야 할 것 같았다. 만일 운이 좋지 않게 또 감염이 된다면 이번에는 기필코 ‘생활지원비’를 야무지개 게 받아내리라는 기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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