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리 300번지 시대 (먹거리와 식생활. 2편)
2대 명절 차례와 기제사는 평소 맛보지 못하던 별식과 특식을 많이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송편, 떡국, 피둥어 탕국 , 각종 전류, 사과 배 감 등 과일, 돼지고기, 쇠고기, 시루떡 부침개류 등 다양했다. 나는 송편이나 떡에는 손길이 가지 않았다. 피둥어탕국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최선호 음식이었다. 나중에 제사를 큰 집으로 모셔간 이후엔 큰 어머니가 해주던 찜닭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 흠뻑 빠졌다. 대학 시절 단골집에서 가끔 맛을 보곤 하던 전기구이 통닭과 유사하게 기름을 쏙 빼어버린 건강 음식이었다.
콩나물밥을 비롯하여 잡곡밥 무밥 콩밥 등도 그 이름을 올렸다. 무밥은 주로 겨울철에 먹었다. 무를 채 썰어서 지었다. 양념간장이 주요 포인트였다. 쌀 보리 콩 조 수수 등 5가지가 모두 동원되는 5곡 밥은 정 윌 대보름날 커다랗고 빛이 약간 바랜 백금색 알루미늄 ‘퍼니기’에 7부 정도 채워선 안방 스피커가 걸린 맞은편 벽 아래 바닥으로 모셨다. 잠시 수저를 꽂아 두었다 콩나물 무채 등을 섞어 비빔밥을 만들었다. 제사 때와 달리 절은 하지 않았다.
노린 색의 큼지막한 콩을 먼저 물에 불린 후 짓는 콩밥은 각종 영양소 덩어리였다. 무쇠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바닥까지 알뜰하게 긁어내고 약간의 숭늉 물을 섞은 것이 맛의 절정이었다.
정구지(부추)를 추가하여 맛을 더하는 흰 죽은 아버지가 편찮으시거나 기력이 떨어진 경우 어머니가 단골로 쑤었다. 양념이 전혀 되지 않은 순수한 간장하고 궁합이 잘 맞았다. 이사날이나 동짓날에 보라색 팥죽이 밥상에 올랐다. 나는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초등 시절에 노란색에서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된 보라색 음식이지인 가지는 즐기지 않았다.
설탕을 넣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는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다. 이름이나 이미지와 달리 사람 몸속 독소를 잘 배출시키다고 하여 산후 임산부들은 물론 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호박 뿔 때"(호박죽)란 것이 있다. 300번지 별식으로 가끔 마련했다.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어머니는 내 몫으로 별도 집밥을 준비했다.
가끔 별식을 마련하고자 하면 어머니와 두 누나는" 오늘 저녁은 ●●●를 생각 중인데 너는 어떤가"라고 사전에 미리 묻곤 했다. 어머니는 6남매 소풍날은 최소한 김밥을 꼭 챙겼다. 상대적으로 농약을 덜 사용하던 시절 논이니 인근 풀밭에서 직접 잡아 "메뚜기볶음"을 도시락 반찬으로 가져갈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이 시절에도 건강 웰빙 음식으로 손을 꼽았다.
아무리 8인 대가족이지만 음식 재료를 최소 거래 단위인 한 관(3.75 킬로그램) 씩 구입하기는 부담스러웠다. 두 가구가 공동으로 구입하여 나누었다. 멸치와 도리지 등이 이에 해당했다.
멸치 볶음과 도라지 고추장 무침은 도시락 단골 메뉴였다. 300번지 시대 나는 너무 자주 먹다 보니 물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영양소도 풍부한 웰빙음식인데 그랬다. 멸치는 크기에 따라 육수를 내거나 국 종류에 넣는 것과 볶음용으로 크게 나뉘었다. 국물을 이미 우려낸 멸치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별 매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를 멀리하였는데 이 때문에 아버지 에게 늘 질책을 받았다. 마늘종 다리 무침도 단골 도시락 반찬에 합류했다.
한 집안의 음식 맛은 김장과 장맛에 달려 있다고 했다. 김장김치, 간장, 된장, 고추장 등 등겨장 등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음식이었다. 이를 주재료, 부재료 첨가물 등으로 활용하여 기타 다른 메뉴도 조리가 가능했다. 이러니 편의상 "뿌리(본원) 음식"과 "가지(파생) 음식"으로 불러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김치와 장아찌 종류는 너무나 많았다. 300번 태생을 기준하면 배추,깍두기, 동치미, 열무, 알타리(총각), 깻잎 김치 등이 주력이었다. 무장아찌(된장, 고추장), 오이장아찌도 가끔 그 이름을 올렸다.
보름에 한번 정도 찾아오는 24절기란 것이 있다. 이는 태양의 황도상 위치에 따라 계절적 구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날짜와 농업과의 밀접성을 반증한다. 24절기에 맞춰 계절 음식을 제때 먹어주어야 몸의 면역체계가 지켜진다고 했다. 이 24절기와 명절과는 별개이다. 전자는 양력을 후자는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졌다. 양대 명절인 설날과 추석 이외에 얼추 한 달에 한번 꼴로 이른바 별도의 ‘작은 명절’이 있있다. 정월대보름 삼월삼짇날 사윌 초파일 오윌 단오 유월 유두 칠 윌 칠석 구월 중양절 등이 그것이다.
아버지는 이 작은 명절날에 정확히 날짜를 맞추지는 않았다. 그 즈음해서 별식(특식)을 준비했다. 평소 일상적인 식단 이외 별식을 마주 할 수 있는 기회란 양대 명절(2)과 기제사(11)를 합하여 13번었다. 이에 작은 명절(8)을 더하면 어림하여 보름에 한번 정도는 색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300번지 최상급의 토질을 자랑하는 앞마당엔 벼 지푸라기로 꼼꼼하게 꼬아 만든 새끼를 주재료로 다시 한번 엮어낸 커다란 원형의 멍석이 깔렸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칠 윌 칠석이었다. 모기도 잡는 파리약을 미리 살포한 것도 부족하여 두엄 밭 왼쪽과 텃밭 사이의 공간엔 지푸라기와 ‘뿍디기’등을 작은 산처럼 쌓는 모깃불도 지폈다. 지금 산업도시의 공장에서 배출되는 독성이 있는 매연과는 차 윈이 달랐다. 모기불 발 연기와 마주할 경우 코나 눈이 약간 매운 것 말고는 별다른 독성이 없었다.
설날 팔월 한가위 2대 명절에 더하여 유두나 칠석 등 윌 1회 정도는 아버지가 푸줏간에 들렀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김치찌개가 아닌 ‘돼지 고깃국’이다. 국물이 많고 바계 부분이 더 많은 돼지고기 몇 점이 질서 없이 이리저리 둥둥 떠다니고 듬뿍 집어넣은 빛깔 고운 토종 고춧가루가 제 실력을 발휘한 덕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여름철 보양식의 하나였다. 김치찌개를 마련하기에는 고기의 양을 감당하기가 여의치 않아 적은 비용으로 여러 식구가 먹기 위해 생겨난 것이라고 지근거리에 있는 고향 친구가 귀띔했다. 본디 경상도 지방 음식이라 했다.
돼지 고깃국으로 배를 충분히 불린 형제들은 멍석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견우와 직녀의 상봉 현장을 찾아내고자 무던 애를 쓰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군대 취사장에서 병사들에게 국 등 부식을 배식할 때 사용했다. 나무 손잡이가 기다랗고, 품질이 좀 떨어지는 재질이었다. 오랜 기간 사용하여 부식성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는 국자와 모양이 아주 흡사한 북두칠성을 찾아냈다.
손잡이 끝 부분에 자리한 별로부터 바로 앞의 별 간 간격의 약 다섯 배에 해당되는 거리를 어림한 곳엔 다른 여섯개의 별보다 밝기가 훨씬 뛰어 난 별이 있었다. 그게 바로 ‘북극성’이라고 세 살 터울인 형은 그럴듯한 천문학적 지식(?)을 자랑했다. 자연 시간에 배운걸 나름 응용한 것으로 보였다. 형은 나보다 모든 부문에서 아는 것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선 대부분이 "별 하나 나하나"를 이어가는 것과 달리 차별화한 것인지 몰랐다.
지난달 유월 유두 즈음엔 외갓집에 가신 어머니의 빈자리를 누나가 대신했다. 간장 종지에 부엌칼로 잘게 토픈 지고추를 소복이 쌓는 등 식단 준비에 최선을 다한 것에 관해 아버지는 많은 칭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