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과 정리해고(1편)

by 그루터기

약 2년 반 기간 점포장 재직 시 나는 죽기 살기로 영업에 매진했다. 오전엔 주로 점포 내의 브로커리지 영업을, 오후엔 외부에서 자금 유치를 하는 아웃바운딩 영업을 했다. 같은 입장의 다른 복합점포와 견줄 때 혁혁한 실적을 거양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최근 회사 측의 점포 운영 계획이 바뀌었다. 종래 운영되던 복합점포를 영업소로 전환하고 여러 가지 영업모델을 검토했다. 그 일환으로 복합 점포장들에게 증권직군으로 전환을 권유했다. 이러한 것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임원 등 윗선과 줄이 닿는 것으로 보이는 일부 복힙점포장들은 부진한 영업실적에도 불구하고 보기 좋게 이 자리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이미 일반점포장으로 차기 보직이 내정된 것으로 보였다. 결국 이들은 추후 일반 점포장으로 보임되는 영전을 했다.


내가 책임을 지고 이끌던 복합점포는 영업소로 전환이 되었다. 종래 오랜 기간 동안 근무한 적이 있는 인근 일반점포의 예하 단위 영업조직으로 편제가 바뀌었다. 지점장에서 영업소장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어 불렸다. 향후 일반점포장으로 발돋움하기 전 단계라고 하는 영업팀장도 겸하게 되는 좀 기형적인 구조였다.


최근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부채권)의 부실화에서 촉발된 위기는 전 세계로 빠르게 전이되어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되었다. 대략 10년 단위의 주기로 발발한다는 금융위기가 이번에도 도래한 것이었다. 약 20여 년에 이르는 근무경력과 관록을 갖춘 나는 크게 우려하며 안절부절하지는 않았다.


4년 내지 5년 주기로 반복되곤 하는 주식시장의 사이클, 1997년의 IMF 금융위기, 그 후 1999년 대우채 사태, 2002년 카드채 사태 등 굵직한 위기를 모두 경험한 바 있었다. 그 규모와 영향이 다르겠지만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미국의 DOW산업 평균지수, 중국의 상하이지수, H/H 지수의 일중 변동폭이 1천 ~ 2천 포인트에 달하는 등 엄청나게 변동성이 큰 시장이 이어졌다. 극심한 롤러코스트 장세였다. 현기증을 넘어 공포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국내외의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도래에 따라 회사 안팎은 어수선했다.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나아가 기이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매년 두 번 이어가던 정기 인사발령이 이번에는 무슨 연고인지 1개월 정도 앞당겨졌다. 지역본부장은 금번 인사는 통상의 것과 달리 ‘구조조정 성격’이 있다고 노골적으로 공언했다. 조만간 희망퇴직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번 주요 타깃은 이른바 자산 관리직 중 장기근속한 고령자가 될 것이라 했다. 이젠 소문을 넘어 정설로 굳어지는 듯했다.


드디어 부서장급 인사가 단행된 후 구조조정이란 본색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금번 부서장에서 해임된 직원들과 그 외 전보된 직원들이 희망퇴직 권유 대상자라 했다. 그 최종 목표 인원은 ●백 명 내외가 될 것이고 만약 이에 응하지 않는 자는 정리해고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등 흉흉하고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소문이 파다해졌다..


살생부 작성 기준이란 것이 있었다. 실적 부진자가 우선이지만 아무리 실적이 양호하더라도 근속 연수와 나이가 절대적 기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실적만을 따지자면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나는 대학원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온지라 상대적으로 고령이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양호한 실적을 바탕으로 일반 점포장으로 새로이 부임하는 영전을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기는커녕 이젠 회사 내의 목숨 걱정을 할 지경이 되었으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미 지역본부엔 살생부가 전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평소 잘 소통이 되는 직원에게 나도 해당되는지 여부를 물었다. 지역본부 직원은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 대답에 갈음했다. 이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소속 모(母)점 포장에게 선수(先手)를 쳤다. 이번 이벤트의 명단에 나도 포함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음을 미리 통보하노라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좀 곤란한 입장이었는데 미리 알려주어서 오히려 고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드디어 부서장급 인사발령에 이어 후속 인사가 있었다. 이번에도 전보 발령된 직원들 대부분이 이른바 살생부에 오른 대상자들이라 했다. 이미 본인도 그 인재풀에 들어 있음을 비공식 확인한 바 있는 나는 두 번째 문서에 이름을 당연히 올려야 했다. 그러나 어이된 연고인지 내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복합 점포장은 종래 고생을 많이 한 것에 대한 일정한 보상 차원에서 좀 접어준다는 말도 돌았다. 지역본부를 거쳐 일선 점포까지 리스트가 내려진 이후엔 회사 측은 최종 목표치에 달할 때까지 희망퇴직 권유 대상자들에게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이미 동종업계에선 구조조정 전문가로 악명이 높은 회사 사장이었다. 본 이벤트 개시 이전 벌써 신문사ㆍ방송사에 관련 보도 자료를 사전에 흘려 이른바 언론플레이를 선보이는 치밀함을 보여 주었다.


IB업무에 특화된 같은 계열 증권회사와의 합병을 구조조정의 근거 내지 명분 중 하나로 내세웠다. 이번 이벤트에 응하지 않는 대상 직원들은 살 떨리는 이른바 ‘정리해고’도 불사하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국가고시 2차 국민윤리 주관식 문제에 단골로 등장했다. ‘공산주의 이론을 비판함’ 중 반드시 적어야 하는 용어인 ‘잉여인간’ 이었다. 희망퇴직 대상자들을 잉여인력으로 낙인찍어 한꺼번에 모조리 정리하겠다는 태세였다. 회사 내에서 이런 무시무시한 용어를 접할 기회가 오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나도 이윽고 본부장으로부터 별로 달갑지 않은 전갈을 받았다. 평소 히쭉거리는 그 특유의 웃음을 섞어가며 내가 명실상부하게 리스트에 올라 있음을 공식적으로 처음 확인했다. 벌써부터 피가 거꾸로 솟았다. 종래 복합 점포장으로 부임하여 영업의 최일선에서 ‘쌔 빠지게' 일하여 대단한 실적을 보여 주었다. 이에 대한 보상은커녕 대가가 기껏 이 따위 것이란 말인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말이 되지 않았다. 중3ㆍ초5에 다니고 있는 두 아들은 아직도 ‘삐약이’였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IT주특기를 가진 입사 선배 양 부장은 법전을 뒤져가며 과연 정리해고가 가능한지에 관해

독학에 들어갔다. 정리해고가 실제로 가능하려면

회사의 경영상의 어려움에 더하여 해고 회피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전자의 예시로 거론되는

파산 인수 합병 중 이번 계열사와의 합병이 그중

하나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등 열공 모드로 진입했다.


비록 인생 전반기 일생의 과업이었던 국가고시

최종 합격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명색이 법학석사인 나는 법전을 들추어보기조차 싫었다. 아예 희망퇴직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러 여건상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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