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는 지방투신이 있다고 하나 3대 투신이 시장을 지배하는 독과점 체제였다. 시장여건도 우호적이라 지금보다는 영업여건이 어렵지 않았다. 6일간의 영업일 중 4~5일 정도 일간 평균 주행거리 약 250~350킬로미터 내외로 힘들게 외곽 법인 영업활동을 했다. 한주가 어느새 금세 지나갔다.
매년 부서장과 두 번 정도 정기 인사상담을 했다. 업무차 잠시 2층에 들른 나에게 점장은 올라온 김에 인사상담을 하자고 제안했다.
"애로사항은 없습니다. 당 점포에 전입 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은 그렇지만 기회가 되면 생활 근거지인 인천 쪽으로 전보 발령을 윈 합니다"
짧은 상담을 마쳤다.
맞벌이 주말부부의 애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점에 부임하여 새로이 배우고 얻은 것도 제법 많았다. 야성을 갖고 외곽 법인 등 수탁고의 유지와 방어, 신규 개척, 법인 영업 노하우의 체득, 조직 생활에 적응하는 방법 등을 꼽을 수 있었다.
향후 다른 점포로 이동하여 법인영업을 이어 갔다. 제2의 법인부라 불리는 대전지점에서 갈고 닦은 경험과 노하우 등을 십분 발휘했다. 모래주머니를 양쪽 발목에 묶고 자갈길을 달리다 평탄한 포장도로를 모래주머니를 떼어내고 신나게 달리는 수준의 환경이 되었다. 이는 식은 죽 먹기나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기존 거래처인 논산 소재 ●●●신협의 실무책임자는 평소 당점은 물론 관리자인 나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 책임자에게 인근의 ●●● 금고와의 거래를 성사시켜달라고 염치 불고하고 졸라댔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던가, 당해 미 거래법인으로
부터 무려 11억이나 되는 신규자금을 받아왔다. 아주 짜릿한 쾌거였다. 기존 거래처를 방문할 때마다 인근 미거래처도 끈질기게 문턱이 닳도록 넘어 다닌 것이 드디어 열매를 맺은 것이었다.
“박 과장님 그동안 고생한 것이 이제 결실을 거두는 것 같네요. 축하드립니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같은 전략팀 성계장은 나를 응원했다. 점장은 수고했다고 어깨를 툭 쳤다. 상급 책임자들도 덕담을 건넸다. 정말로 거액을 유치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당시엔 펀드의 운용과 판매가 분리되지 않은 체제였다. 채권형 수익증권이지만 보수가 제법 두둑했다. 이번 건만으로도 내 연봉 상당 부분을 커버했다. 소위 영리를 추구하는 주식회사인 금융기관에서 이른바 밥값을 해낸 셈이었다.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이다 보니 그 성취감은 배가 되었다. 이른바 MGM(구전효과)의 위력을 실감했다.
외곽 법인을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논산 소재 ○○금고 이사장과 독대하여 5억의 신규자금을 유치했다. 이것을 두고 점장이 깜짝 놀라더라는 뒷 이야기를 나중에 전한 차 대리도 역시 축하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나와 차 대리는 그동안 2인 1조 드림팀으로 외곽 법인 영업에 매진하며 동고동락하던 사이였다.
충청지역 단독펀드라는 이름으로 시가평가 상품 영업을 선제적으로 치고 나간 일을 두고 ‘시가상품은 혼자서 다 파는 것 같다’고 했다.
평소 나에게 우호적이고 동향인 심부장도 대박을 쳤다고 좀 오버해 칭찬을 했다. 나는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드디어 ‘터미네이터’가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 정도를 가지고 무슨 동네잔치라도 일어난 것처럼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채 가시기 전이었다. 점장으로부터 긴급 호출을 받았다.
"박 과장, 바쁜가? 아닙니다".
실제로 바빠도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한다는 정도의 짬밥은 이미 넘어섰다. 드디어 ‘신호’가 온 것으로 보였다. 나는 내심 기뻤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점장실로 들어섰다.
“무릇 인사발령이란 것이 최종 뚜껑을 열어보아야 알겠지만 이번에 어쩌면 거주지인 인천 쪽으로 가게 될 것 같네. 관리하던 고객 중 특히 법인고객은 같은 드림팀인 차 대리에게 철저히
인수인계를 하되 말로 하지 말고 글(기록)로 해주었으면 하네.”
나는 감사의 인사를 뒤로 하고 상담실의 문을 다시 한번 점검한 채 인수인계에 필요한 내용을 글로 적어나갔다. 말보다는 글로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보통사람들도 알 수 있었다.
세상엔 비밀이 없었다. 이런 흐름을 기가 막히게 낌새를 알아챈 차 대리였다.
“박 과장님, 무슨 일이 있어요? 지금 무엇하고 계신 건가요?”
고 물어왔다. 시치미를 뚝 떼고 아무 일도 없다고 너스레를 떨어 보았지만 내가 모두를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실토하고 인사발령 정식 문서가 도착하기 전에 차 대리에게 모든 인수인계를 마쳤다.
신규법인을 개척하고자 먼 거리를 오가던 대천 앞바다였다. 지점으로 늦은 복귀 의사를 미리 알린 뒤 허름한 한 횟집 야외 평상 위에 나는 차 대리와 마주 앉았다. 두 사람만의 환송회를 따로 열었다. 펑소 생선회를 좋아하는 나의 식성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차 대리가 저녁을 환송회란 이름을 걸어 한턱을 쏘기로 했다. 나는 부담 없이 고맙게 받기로 했다. 길지 않은 근무 기간 외부에 나오면 하루 종일 영업의 최일선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끈적끈적한 정이 많이 들었다.
저 멀리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붉디붉은 태양을 주위 배경으로 싱싱한 회를 안주로 쓴 소주 한 병을 순식간에 비웠다.
차 대리는 오늘은 자신이 하루 운전병을 자청하는 등 벌써부터 스케줄을 구상했다. 나 혼자이지만 마음껏 마시리고 연속해서 술잔을 채워주었다. 길고 긴 직장생활 동안 아주 멋지고 추억에 남는 장면으로 손을 꼽을 수 있었다.
오류동 수협 공판장 회집이 오늘도 나의 전보발령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근무기간은 고작 11개 윌이었만 해수론 2년으로 우길 수도 있었다. 점장은 나를 비롯한 점 내 4급 책임자들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은 4급 책임자들에겐 불만이 없다는 평상시 지론을 오늘도 다시 한번 입 밖에 냈다.
손대리는 민부장을 향해 한마디 건넸다.
“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에겐 당할 수 없는 것 아셨지요?”
나도 한마디 했다.
“점장님, 전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무어 대단한 아이디어는 없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습니다.”
열심히 하지는 않아도 좋은데 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자신의 평소의 지론을 다시 강조했다.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기본적으로 열심히 하는 input이 있어야 그에 따른 output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 평소 내 생각이었다.
11개월이란 짧은 근무기간이었다. 하지만 24개월은 족히 되어 보였다. 여러 가지를 배우고 얻어서 떠난다는 생각에 보람 있는 생활이었다고 자부도 했다. 발령일로부터 2~3일 지나도록 인수인계를 마친 후 승용차 하나 가득 봇짐으로 채웠다.
이윽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동안 적립된 노조 분회비로 마련한 금주 말의 1박 2일간 ●●●갈대밭 지점 워크숍의 동참을 점장은 나에게 권유했다. 감사하지만 부득이 참여할 수 없는 사정을 완곡하게 설명했다. 이어 핸들을 인천 방향 코스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