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과 정리해고 (2편)

by 그루터기

과연 이미 진행되고 있는 희망퇴직에 대상자로 선정된 직원이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회사 측은 정리해고를 감행할지, 한다면 이에 대해 법원의 최종 판단을 구하면 직원이 구제받을 수 있는지가 최대 관건이었다. 연식이 같은 동료 직원들이 같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대응책을 논의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한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이에 응할 사정이 되지 못하여 못내 안타까웠다.


같은 점포에서 근무한적이 있는 직장동료 조 부장, 입사 선배 성 부장과 변호사를 수소문하여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 중소기업도, 더구나 동네 구멍가게는 더욱 아닌 이렇게 멀쩡한 금융기관에서 정리해고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비분강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먼저 민노총 소속 후배 변호사를 찾아 자문을 구했다. 회사의 이러저러한 현황과 사실관계 등을 털어놓았다. 정리해고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는 뜻밖의 결론을 들었다. 우리는 아연질샜했다. 당연히 근로자 편을 들어주리라는 예상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학창 시절 한때 모교 법대 전용 도서관의 같은 방에서 같이 국가고시를 준비한 인연이 있었다. 국립 S대 법대 출신, 서울 소재 모지 방법원 수석부장 판사로 재직 중인 선배와 연락이 닿았다. 국내 유수한 로펌 소속 이른바 노동전문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본 이벤트와 관련하여 한차례 더 자문을 구했다. 최근까지 노동사건 전담 법관으로 재직하다 옷을 벗고 이른바 ‘전관예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변호사를 만나 한층 더 심도 있는 상담을 받았다.


“이러한 노동 사건의 경우 현직 법관들도 노동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아무리 역대급 글로벌 금융 위기가 온 상황이지만 본인이 보기엔 이 건의 경우 정당한 정리해고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회사 측의 희망퇴직 종용에 응하지 말 것이며 만약 정리 해고를 당할 경우엔 제가 기꺼이 소송대리인이 되어 도와주겠

습다.”라고 자신감 있게 자문에

답변을 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부연 설명을 했다. 희망퇴직 대상자 선정 시 은행 사례를 들었다. 대부분 연령(1), 근속연수(2), 영업실적(3), 근무평정(4) 등을 점수화한다. 1ㆍ2 항목은 높을수록 감점을 하고 3ㆍ4 항목은 우수할수록 당연히 가점을 한다. 그런데 전자 두 항목의 비중을 후자 두 항목 비중 대비 눈에 띌 만큼 높여 회사 측의 의도대로 살생부를 작성한다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정해

놓고 꿰어 맞춘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직원의 정년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고 심지어 영업실적이나 근무평정이란 항목은 애시당초 그 기준 자체로 인정하지 않아 무효로 판시한 경우가 있다. 무릇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경영상의 위기’와 ‘해고 회피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게 둘 다 충족되어 설령 정리해고를 실행한 경우에도 추가 요건이 필요하다. 정리해고 실행 후 일정기간 동안 신입ㆍ경력직원을 일체 충원해서는 아니 된 다는 것이 그 상담 변호사의 상담 요지였다.


상담을 마무리한 후 나와 동행한 조 부장과 성 부장은 변호사의 명함 수령을 정중히 거절했다. 희망퇴직 불응 시 혹시 회사 측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의 단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의 표현으로 보였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진지한 자문을 해준 변호사와 헤어졌다. 잠시 후 당해 법무법인 사무실 내 여직원에게 상담료 징구 여부를 물었다. 신 부장판사와의 막역한 관계를 이유로 상담료는 받지 않겠다는 호의도 베풀었다. 인맥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나는 평소 회사의 여러 선후배에게 신망이 두터운 전직 임원 최상무를 조 부장과 함께 찾아 나섰다. 실외로 나온 최상무는 우선 담배를 한대 입에 물자마자 플라스틱 재질의 1회용 라이터를 옥상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번 이벤트에 대한 본인의 속내를 말 대신 드러냈다. 금융지주사의 방침이나 회사의 현 경영진의 이 무례하고 깡패 같은 이벤트 추진 건에 대한 황당함과 적개심의 표현이었다.


살생부에 오른 직원들의 입장이나 처지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 면면을 볼 때 만 50세가 되지 않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근속연수 등을 기준으로 무차별적으로 전방위 압박을 하는 꼬락서니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혀를 끌끌 찼다. 대부분 대상자들의 자녀들은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 특히 나와 조 부장은 자녀가 초ㆍ중교에 다니고 있으니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회사 측의 요구를 거절하여 퇴직원을 제출하지 않으면 지방 원거리 발령 등 보복 조치가 나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그럼에도 그 각종 보복조치 등을 버텨낼 수 있는 독한 마음 가짐과 실행 의지가 있는 경우엔 버티라고 했다. 일종의 ‘조건부 불응론’을 제시했다.


희망퇴직 신청 기간 중 정보교환, 조언과 자문 청취, 대응 논리 개발과 그에 따른 지난한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희망퇴직원을 받아낸 실적이 저조한 부서장이나 본부장은 본부의 부서장ㆍ임원회에 들어 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이 조직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내가 두 삐약이와 같이 네 가족이 오붓하게 극장 나들이를 하던 일요일 오후였다. 총괄본부장이 휴대폰으로 나를 호출했다. 주요 용건은 필시 희망퇴직원 제출을 종용하는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나는 이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 ‘냉혹한 조직의 생태’와 ‘처절한 생존의 의지’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두 삐약이는 물론 집사람도 아마 이 냉혹함과 처절함을 알리가 없었다.


자랑스럽게도 같은 리스트에 그 이름을 올려 동병상련이 된 직원들이 삼사오오 모여 자주 머리를 맞댔다. 정보공유, 의견수렴, 대응논리 개발 실행 등에 관해 묘수를 짜내려고 무던 애를 썼다. 희망퇴직을 압박하는 쪽의 여러 행태를 볼 때 이른바 6.25와 4.19 세대 간엔 그 압박의 정도가 다르고 온도 차가 느껴진다는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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