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에서 인심은 물론 여유도 나왔다. 나는 본인이 참여 중인 A 경기장은 물론 윗목에서 벌이고 있는 B 경기장도 넘겨다 보았다. 입신의 경지에 들어선 남호는 본인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일행들은 입을 쩍쩍 벌리고 다물 줄을 몰랐다.
무릇 모든 운동에선 기본자세(폼)가 가장 중요하고 이를 연마하는데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고 했다. 체육학을 정통으로 전공하는 주위 선배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남호는 기본적으로 화투 패를 섞거나 나누는 동작과 손놀림부터 보통의 필부필부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어릴 적 어머니가 손수 홍두깨로 밀어 손칼국수를 만드는 공정 중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고 치대듯이 동작이나 손놀림이 능수능란하고 막힘이 없었다.
남호는 이번엔 화투패를 섞고 나누기 전에 안주인 혜수 쪽으로 5광 패가 모두 갈 것이라고 미리 알렸다. 이 예언이 순식간에 현실이 되었다. 이에 장내는 기겁을 하는 일행들의 고함소리로 가득했다. 순간 나는 친구 남호 앞에 선뜻 무릎이라도 꿇고 나서며 ‘아이고 형님, 제가 사부로 모시고 싶은데 받아 주실 수 있습니까?’라는 부탁이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남호와 같은 경기장에 나서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만약 그랬다면 지갑을 모두 동째로 털리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 없을 듯했다. 벌써 저런 아스라한 경지에 오른 우리 친구가 있다니 우리 친구들 모두는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병완이가 모처럼 최소 점수에 도달했다. 고나 스톱이냐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섰다. 같은 경기장의 나머지 두 명의 스타팅멤버가 과연 본인에게 고박을 씌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를 살폈다. 순간 양쪽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 나선 문질러 대더니 양 손바닥을 을 두세 번 마주쳤다.
춘수의 본명이 아닌 초등시절 자주 불러 놀려대던 별칭을 불렀다.
“그래 달구지야 , 무어 홍단. 날 테면 나와라 그까지 것 3점 정도는 피박을 써주마”
멤버들은 ‘원고’를 외치리라 모두 기대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용어가 새로이 등장했다.
"완 뺑그리 “였다.
순간 장내 선수 모두는 포복절도했다. 온통 뒤집어졌다. 향후 얼마지 나지 않아 병완이는 이 ‘뺑그리’란 걸 주위의 도움을 받아 당당히 특허로 정식 등록 신청을 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기네스북에도 등재 신청을
하기로 했다. 가히 가문의 영광이자 고향 통합 동창회 전체의 자랑이었다.
아무리 치열한 경기라도 중간 휴식 타임이 필요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었다. 임자를 오랜동안 기다리던 전기밥통 안의 천연 기름이 좔좔 흐르는 ‘아끼바레 흰쌀밥’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평생 몇 번 구경한 적이 없는 꿩탕은 막걸리 전용 양은 잔을 여러 순배 돌리는데 일등 공신이었다. 더없이 귀하
고 맛있는 별식 반찬이자 안주
였다. 이 집 안주인은 일찍이 특별시 소재 고급 음식점 최강 레벨 주방장의 음식 솜씨를 이미 넘어섰다.
주인장 근우는 안주인 혜수에게 오늘은 너무 고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적지 않은 친구들이 예고도 없이 쳐들어와 시각은 자정을 넘어까지 '때려라 부어라 마셔라' 해대는데 불평은커녕 한마디의 군소리도 없었다. 친구들에게 접대를 잘하니 정말로 마음에 들고 고맙다며 집사람을 치켜세웠다. 이에 이의를 다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가 썩는지 모른다’고 했다던가, 시간은 벌써 자정을 훌쩍 넘어 새벽으로 향했다. 오늘의 최종 승자는 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만이 날이 아니고 여러 사정상 날 밤을 꼬박 지새우기는 부담스러웠다. 아쉽고 안타까운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일단 접고 다음을 또 기약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나는 오늘의 특식 뀡탕에다 막걸리 값을 모두 치렀다. 그래도 장판 위의 고리는 아직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A 경기장 선수들에게 이른바 개평이란 이름으로 서운치 않을 정도로 수익의 상담 부분을 먼저 돌려주었다. 근우, 혜수 부부 안방 사용료 명목으로 떼어내고도 아직 주머니에 여유가 있었다.
달음박질 실력은 거의 국가대표급이었고 체력도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친구 만 구는 의외로 어두운 밤길을 혼자서 나서지 못했다. 무서움을 탔다. 졸지에 선무당 자리에 오른 나는 같은 부락 만 구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한가위를 이틀 앞두니 거의 만월이 된 달빛도 나의 이 역사적인 등극을 축하했다. 오늘은 겹경사가 일어난 드문 날로 기록되었다. 나에게 기이
한 일이 일어난 기념비적인 날
이었다.
나는 전날 일어난 엄청난 이벤트 덕에 밤잠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 다음 날 읍내 ●●역 인근의 뼈다귀 해장국집을 찾아 한 끼를 해결하고자 했다. 나를 발견한 오정골 출신 충호는 서두는 생략한 채 " 병철아, 어제 소나무가 많은 동네에서 벌인 고스톱판에서 재미 많이 보았다며?" 라며 갑자기 훅 들어왔다. 보통 흔히 일어나는 일과는 달리 이변은 더욱 빨리 퍼지는 소문이었다.
짙은 고동색의 표면이 거친 뚝배기 그릇에 수북이 담겼다. 살코기가 듬성듬성 붙어 있는 뼈다귀 덩어리를 푸짐하게 덮은 무청 새래기부터 손을 댔다. 충호는 나에게 허기진 황소가 여물을 정신없이 먹듯 한다는 말을 보탰다. 나는 이를 전날 선무당에 성공리에 데뷔한데 대한 일종의 부러움이자 칭찬으로 들었다.
나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 날이 자주 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장마다 꼴뚜기냐’라는 고스톱판에서 자주 등장하는 명언이 있었다. 세상은 특정인에게 자주 꽃피는 호시절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이는 동서고금의 진리인 듯했다.
호시절이 자주 찾아왔다면 나는 아마도 이미 재벌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오늘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