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이틀 전이다 보니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아궁이엔 나름 땔감을 이미 밀어 넣어 구들장 위 장판은 온기가 돌았다. 게다가 두 개의 경기장엔 일진일퇴의 공방전 내지 면학의 열기(?) 덕분에 어느새 방안엔 자동 천연 난방장치가 가동된 듯했다. 이 열기를 견디지 못하는 선수들은 더위를 참지 못해 위 저고리는 물론 남방(Y) 셔츠까지 벗어 젖혔다.
A 경기장엔 관내 주임상사 병호를 비롯하여, 나, 남자 주인장 근우, 제철 강국의 기틀을 다진 세계 굴지의 철강회사에서 밥을 먹는 경찬, 특별시 소재 공립학교에 재직 중인 희준이가 입장을 해서 자웅을 겨루었다. 희준이는 평소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본인이 들르는 곳마다 일행에게 늘 즐거움을 선물했다. 서낭당 넘어 ‘뱀칭이’가 출생지였다.
B 경기장엔 이 집 안주인 혜수, 프로 수준의 타짜를 친형으로 두고 있고 있는 남호, 모그룹 계열사에 근무 중인 만구, 국내 굴지의 보험회사에 최근 입사한 춘수, 수도귄 인근 중 소도시에서 대형 유통업체를 이끌고 있는 황골 출신 병완이가 포진했다.
"어이 친구, 우리 지금 근우 집에서 한판 벌이고 있으니 어서 빨리 이리 오시게나"라는 짧은 메시지에 부리나케 달려온 친구 인호과 창섭이었다. 이 두 친구는 부지런히 고리를 챙기고 전문가답게 나름 판세를 분석하고 경기 상황을 생중계 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정말 젊음과 열정으로 가득 차고 끈끈한 우정이 이루어진 다이내믹한 경기가 절정을 향하여 치달았다.
초고수들의 타자 세계는 예외였다. 통상 고스톱판이란 것이 ‘운칠기삼’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를 했다. 어느 정도 역량이 성패를 가르지만 그보다 더 많은 부분은 운이 승패를 좌우한다. 주위의 다른 선수들이 비자발적으로 도와주거나 뒷 패가 잘 맞는 등 운이 따라야 승산이 있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나에겐 세상에 참 드문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하여 일어났다. 역량을 냉정히 따져보면 나는 선수들 중 결코 상위에 랭크될 수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선을 잡을 기회가 점점 많아졌고 승률은 물론 수익률도 발군이었다.
주위 다른 선수들이 결코 고의로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예기치 않는 이웃 선수의 도움이 이어졌고 뒤 패도 잘 맞아 주었다. 심지어 실수로 낙장을 한 패가 쪽이 되는 기적에 가까운 일들이 한두 번도 아니고 미친 듯이 뒤를 이었다. 바닥 패와 들고 있는 것을 아무리 뚫어지게 번갈아 보아도 같은 짝이 없어 전전 긍긍하던 순간이었다. 앞의 선수들이 내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패를 내동댕이 치거나 뒷패를 넘겨 상납을 하는 보기 드문 일도 자주 일어났다.
다른 선수들의 한숨 소리가 자주 터졌다.
자포자기에 가까운 탄식도 들렸다. 다른 선수
들은 내가 한 장 들고 있는 것을 어떻게 귀신같이 알았는지 고맙게도 뻑을 해주었다. 나는 때론
같은 패2장을 들고선 ‘자뻑’도 드물지 않게 하다
보니 가히 운수 100단의 선수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오늘에야 나는 명실상부하게
선무당의 자리에 올랐다. 선을 잡는 횟수가 점점 잦았다. 물론 수익금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고리에 기여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군사정권 시절 각종 성금이라는 이름으로 재벌로부터 억지
춘향이식으로 공출하던 준조세 납부 랭킹 1
위에 올랐다. 아무래도 나는 3대가 덕을 쌓은 듯했다.
그저 열심히 하는 사람은 머리 좋은 사람을 이
기지 못하고, 운이 좋은 사람을 머리 좋은 사람이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속세의 평범한 진리를 현장에서확인했다. 모든 이들은 그저 혀를
내두를 따름이었다.
이러다 보니 경기가 시작된 지 오래지 않아 현금이 바닥난 경찬이는 그리 멀지 않은 본가를 부리나케 오갔다. 금고에 차곡차곡 쌓아둔 현금 뭉치를 헐어 추가로 판돈에 보태는 ‘융이오사변’(6.25 사변)도 일어났다. 패가 잘 풀리지 않는 나 이외의 다른 선수들은 말 그대로 곡소리를 이어갔다. ‘뱀칭이’ 출신 희준이는 평소 다른 경기장에서도 자주 그런 모습을 보였듯이 텅 빈 장지갑 속을 공개하며 벌써 올인을 알렸다. 자제력이 좀 부족하여 열고를 불러대는 탓도 한 몫했다. 희준이는 고를 외칠 땐 독특하게도 "꼬꼬꼬"라 하며 금방 둥지에서 알을 낳고 밖으로 나서는 토종 암탉 울음소리를 아주 그럴듯하게 흉내 냈다. 폭소가 터졌다.
나는 명절에 고향을 찾을 때마다 1,000원 한 묶음을 신권으로 준비했다. 경기장에선 이를 판돈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를 두고 희준이는 ‘돈 공장에 다니는 녀석이라 다르다’며 또 한 번 웃으개 소리를 보탰다. 잘못 다루면 손가락 등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빳빳한 신권이었다. 멤버들은 이를 기념으로 소장하기 위해 각자의 장지갑에 챙겨 넣고 경기장에 다시 풀지 않았다. 작금에 재력가들이 5만 권 지폐를 비밀금고에 보관하듯 했다. 경기장엔 어느새 신권은 그 자취를 감추었다. 오래된 낡은 종이돈만 오갔다. 나는 구권을 받고 신권을 내주는 봉사활동에 일찍이 입문했다.
나에게만 일방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이 이어지는 날이었다. 오늘은 제 아무리 이름 있는 세기적인 타짜를 데려온들 나를 당해낼 재간이 없을 듯했다. 이미 장판 위에 수북이 쌓인 고리를 들고 인호과 창섭이는 그리 흔하지 않은 ‘꿩’ 조달에 나섰다. 이 늦은 시각에 야생하는 꿩을 잡으러 갈리는 없었다. 순식간에 들고 오는 것으로 보아 미리 이런 때가 올 줄 알고 좋은 곳을 이미 물색해 놓은 것이 분명했다. 설날 대표 음식으로 차례상 떡국 그릇 위에 ‘꾸미’(고명)라는 이름으로 아주 조금씩 얹게 되는 그 귀한 뀡고기의 맛을 볼 기회가 왔다. 나에겐 겹경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