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이 사람 잡던 호시절 (1편)

by 그루터기

민족 2대 명절엔 바다에서 살던 연어가 강으로 거슬러 회귀하듯 우리도 고향으로 돌아왔다. 추석 이틀 전 그리운 고향 본가에 도착했다. 부모님에게 인사를 끝냈다. 오늘도 의례히 반자동으로 움직였다. 관내 소나무가 많은 동네, 그중에도 동네 길목 바로 입구에 있는 관내 이른바 ’ 주임상사‘라 불리는 병호 네로 발길을 돌렸다.


유난히 대단한 장남 프리미엄을 고수하는 병호의 어머니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그럼에도 버선발로 뛰어나와 장남 병호의 친구인 우리들을 반갑게 맞았다. 장남 친구이면 부락의 구분 없이 부주 깽이를 내던지고 나섰다.


당시 관내 최대치의 인구는 약 7,000여 명을 웃돌았다. 2차 집단보다는 1차 집단의 성격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한 가구당 자녀수는 4~10 명에 이르렀다. 이리저리 누구 형 누나 동생 어쩌고를 따지다 보면 어느 네 누구인가 퍼즐을 맞추는데 절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병호 어머니의 장남에 대한 끔찍한 편애는 관내는 물론 군내에서도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때론 병호의 다른 친구들조차 시기ㆍ질투할 정도였다.


친구 병호 집에 둘러앉아 30여분 정도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난 명절 이후 관내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은 물론 소소하고 자질구레한 일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병호의 사건 사고에 대한 묘사 실력이 너무 뛰어나 눈앞에 벌어지는 듯했다. 사건의 발단에서 배경 경과 결과 분석까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다. 병호는 외지로 나간 친구가 시골 본가에 올 기회에 자신의 집에 들르는 것을 한 번이라도 거르면 무척이나 서운해하였다.


이미 준비 중인 배추전, 동그랑땡, 산적을 곁들여 막걸리 전용 노란색 양재기 잔이 여러 순배 돌았다. 친구 병호는 멀지 않은 골목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친구들을 투박한 자석식 검은색 전화기를 연결하여 순식간에 불러 모았다.


이미 중학 시절부터 특별한 사이가 되어 고교 졸업반 즈음 단란한 가정을 꾸린 바 있는 근우도 헐떡이며 숨이 차도록 달려왔다. 내가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귀향하여 본가에 들렀을 때 일이었다. 소나무가 많은 동네로 산책을 가던 중 집사람은 나에게 "당신 친구가 맞느냐"라고 할 정도였다. 실제 연식보다 15년 정도 위로 보이는 친구였다. 그렇게 오인할 만했다. 당시 3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83년 세계 청소년 축구 4강 신화를 이끌어낸 축구감독과 싱크로율 95% 이상은 충분했다. ‘우리 감독님 나오셨네요’라고 해도 아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었다. 객지 건설 현장 등에서 이미 50대 선배들과 친구로 지내도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합류한 근우는 거나하게 취기가 돌자, 본인의 살림집으로 자리를 옮겨 더 많은 시간을 갖자고 자신 있게 제안을 했다. 이에 일행 중 반대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잉꼬부부 금슬을 비롯하여 자랑거리를 구석구석 많이 숨겨 놓은 모양이었다.


일행은 친구 근우의 호기로운 제안을 기꺼이 선뜻 받아들였다. 어슬렁거리는 느린 걸음으로 채 1분 거리가 되지 않는 근우 네로 발길을 돌렸다. 군청색 철제 대문에 기와집이었다. 동기 동창이자 친구 근우의 안주인인 혜수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친구 일행을 호들갑스럽게 반가운 표정으로 맞았다.


10명 내외의 친구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용한 무당이 맞추듯 했다. 혜수는 12인용 전자 밥솥의 뚜껑을 열어 이 많은 패거리의 저녁 식사를 감당

할 수 있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아주 딱 맞는 분량

이었다.


두 개의 작은 방을 하나로 터서 같이 사용했다. 누가 자리를 먼저 정해준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두 무리로 나뉘었다. 셋 이만 모이면 늘 한판 벌이고야 만다는 국민 오락 고스톱판을 벌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은 모두 갖추어졌다. 근우의 형은 일찍이 월남 파병 용사였다. 때문에 얼마 후 결혼 필수 혼수품의 목록 중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던 국방색 A급 군용 모포는 이미 충분히 대령 중이었다. A매치 축구 시합이 벌어지는 천연산 잔디구장에 버금갔다. 이렇게 되자 선비가 붓을 탓하지 못한다는 말대로 선수들의 순수한 기량만으로 자웅을 겨루었다. 승패를 경기장의 입지나 심판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용호상박의 결전장의 진용이 모두 갖추어졌다.


선수 면면이나 숫자로 보아 국가 대표급 A매치 경기와 이른바 주전자 멤버들이 벌이는 동네 조기 축구팀 수준 리그인 B매치로 자연스럽게 갈렸다. 근우와 혜수는 한 가구의 같은 경제공동체였다. 때문에 승부 조작 내지 이해관계 충돌이 염려될 수밖에 없어 각기 다른 경기장에 입장했다.


나는 늦게서야 밥벌이를 시작했다. 취업 전에도 관내 같은 부락 친구들과 양대 명절 전날 2대 다방에 딸린 골방에서 벌이는 고스톱판에 끼어들었다. 어깨너머로 배우거나 그저 스타팅 멤버로 참여한 수준에 불과했다. 역량과 경력도 별로 내세울 게 없었다. 당연히 주전자 멤버이어야 하나 오늘은 엉겁결에 A메치 경기장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입장을 했다. 내가 이렇게 되는 바람에 고스톱판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타짜인 남호는 B메치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애시당초 2개의 방을 텄다고는 하나 그리 넓지 않은 안방엔 관중을 포함하여 12명으로 가득 찼다. 병호의 연락을 먼저 받은 친구들이 추가로 합류한 덕분이었다. A, B 매치 각각의 5명 선수와 이른바 ‘고리조’라 불리는 둘을 합하여 도합 12명이었다. ‘12명’이라는 숫자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도 했다. 선수와 고리조가 역할 부담이 제대로 된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경기 결과에 따라 실제로 각 선수들에게 금전적인 손익이 귀속되는 것은 A매치였다. 이와 달리 B매치는 동전과 지폐가 오가기는 하지만 친목을 다지는 단순히 순수한 오락 경기였다. 최종적으로 수익을 낸 선수는 자신의 수익금으로

다른 선수들의 손실 전액을 보전해 주는

300번지 용어로 ‘본전 찾기’가 있는 경기였다.


거칠게 구분하자면 A는 놀음 내지 도박장에, B는 오락에 가까웠다. 나름 장단점이 있었지만

B 메치에 참여 시 열심히 하고 잘한 사람은 때론 근로의욕‘을 상실할 수 있었다. 이른바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근본 정신과는 부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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