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노동전문 변호사를 찾아 같이 자문을 구한 바 있는 입사 선배 성 부장도 결국 정규직 회사 생활을 접기로 결단을 내렸다. 성 부장의 동기들도 거의 대부분 같은 길을 나섰다.
나보다 4 ~ 6년 입사가 이른 선배 동기들도 이벤트 초기에 이미 사직서를 작성하여 개인적으로 고이 보관해왔다. 그렇게도 초과 달성까지 바라던 회사 측의 뜻을 받들어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대통령 선거나 총선에서 최종 개표 결과 뚜껑이 열리는 순간의 짜릿함을 맛보듯 했다. 회사의 최종 목표치에 자로 잰 듯이 최종 협력자는 목표치에서 딱 한 명을 넘어섰음이 밝혀졌다. 말도 많고 힘도 들고 반전을 거듭하던 이번 이벤트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회사 측에서 그렇게 공언을 하던 정리해고의 감행 여부가 관건이었다. 나의 고교동기와 연이 닿고 평상시 소통도 제법 되는 입사 선배 진 부장과 제일 먼저 접촉을 했다. 평소 차분한 성격에다 상당한 관록과 경험으로 대단한 내공이 있었다. 판세를 잘 읽어 내곤 하여 나에겐 항상 든든한 멘토 역할을 했다. 회사 측은 소기의 목표치를 달성했기 때문에 희망퇴직 거부자 대한 정리해고는 없을 것으로 보았다. 십 년 감수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는 의견을 냈다. 이 예상
은 다행히도 적중했다.
무릇 근로자는 본인이 처한 입장과 형편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일치단결하여 사용자에게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특히 이런 이벤트 시즌에 더욱이 잘 드러났다.
희망퇴직 권유 대상자는 자녀 유무 ㆍ학업의 정도, 경제적 형편, 재취업 가능 여부 등이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누군가에겐 절망적인 상황이 될 수 있는 반면 또 다른 누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본 이벤트 진행 기간 대부분의 주위 직원들은 이번에 고비를 넘기더라도 길어야 향후 2~3년 정도밖에 추가로 근무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게 대세였다. 그 이후 여러 사회경제적 상황의 변화로 정년이 연장되었고 임금피크제도가 도입되었다. 장래에 닥쳐올 일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것이었다.
결코 적지 않은 직장 선후배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기로 확정된 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는 군가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살아남은 자도 결코 마음이 펀치 않았다.
이번 이벤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총괄본부장을 부른 사장은 노고를 치하했다. ‘고생했으니 본부장도 쉬시게나’라는 섬뜩한 지령을 내렸다. 사장은 이것으
로 이번 구조조정의 종료를 선언했다. 토사구팽 (兎死狗烹)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주위 사람들 모두는 온몸의 잔털이 꼿꼿이 솟았고 소름이 돋았다.
회사의 희망퇴직 권유를 거부한 나도 오랜 기간 동안 머물던 서울의 강서지역을 떠나 수도권 소재 다른 점포로 근무지를 옮겼다.
이번 이벤트 기간인 약 2주일만에 내 체중이 5 킬로그램이나 줄어든1급 비밀을 알아낸 동료
였다. 이를 꺼내며 진정성 있는 이른바 맞춤형 위로 말을 전해왔다. 또 다른 여러 동료와 선후배로부터
많은 격려와 위로를 담은 안부 인사를 들었다.
“지방 등 원거리가 아닌 멀지 않은 곳으로 발령이 났네요? 박 점장은 워낙 능력이 있으니까요.”
내가 소속했던 모(母) 점포 방 점장의 소견이었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것이 나에 대한 칭찬인지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분별력을 나는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이에 나는 더 많은 수양이 필요해 보였다. 이번 이벤트가 나의 직장생활은 물론 인생 중후반기에서 커다란 허들이었음은 확실했다.
이젠 향후 이런 감당하기 힘든 허들이 추가로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