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과 정리해고(6편)

by 그루터기


시장이나 금융권에선 현 조직에 대해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다. 직원에 대한 배려 등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회사 점포 정책의 변경으로 은행과의 복합점포는 몇 개를 제외하곤 지점에서 영업점

으로 격하시켜 인근 거점 점포의 예하 조직으로 편입시켰다. 나도 졸지에 영업소장으로 추락을 했다. 하필이면 나와 케미가 별로인 방 점장 휘하에 들어가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 화불단행‘ ’ 설상가상‘ 이란 말에 걸맞았다.


오늘은 내가 소속된 모(母) 점포장이 우리 영업

장으로 몸소 내점 했다. 금번 이벤트의 실시 배경과 살생부에 내가 자랑스럽게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두루두루 아는 사람들을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서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는 조언도 했다. 방 점장은 평소 남의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다. 본부 모본부장의 배려를 받고 있고 그의 직계 라인임을 공개적으로 떠벌이

고 자랑을 일삼았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어떻게 생각해 보았는가? “

“본부장님, 녹취가 되지 않는 휴대폰으로 통화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지는 않았다. 조마조마한 나는 지역본부장의 호출을 녹취용 전화기를 통해서 받았다. 평소에도 그래 왔듯이 히쭉히쭉하는 특유의 웃음을 섞었다. 나는 약간의 조롱기가 섞인 대꾸를 했다. 자신은 잘리면 그만이지만 혹시 내가 잘못될까 보아 걱정이 된다고 했다. 엄청나게 아래 직원의 안위나 목숨을 배려하는 듯 생색을 냈다.


”저도 나름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정리해고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고 회사 측에서 만약 그쪽으로 가게 되면 그땐 거기에 합당한 대가를 당당히 받겠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겁도 없이 단호하고 자신 있는 어조로 맞받아치고 말았다.

"알았네 자네한테는 내가 졌네 두 손 다 들었네 “

지역본부장은 나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서둘러 통화를 마감했다.

강하고 속 시원하게 반박을 하였지만 만의 하나 혹시라도 정리해고를 당하면 집사람과 우리 어린 두 삐약이는 어떻게 될까. 당장 길거리에 나 앉는 건 아닌가 무시무시한 공포감이 몰려들었다. 식은땀이 났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내가 회사에 기여한 것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최소한 밥값 이상은 충분히 한 것 같았다. 회사에 해가 되는 일을 한 적이 있는가를 아무리 냉철하게 따져보아도 떠오르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직원을 내동댕이치려는 회사에 대한 원망과 배신

감만 커질 뿐이었다.


종래 이번과 같은 여러 번에 걸친 희망퇴직이란 이벤트에서 어깨 너머로 지켜보고 들은 노하우가 있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본인에게 닥칠 경우 자신만의 매뉴얼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살생부가 일단 확정되면 점포장과 그보다 고위층으로부터 호출을 받는다.


‘예 검토해보겠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라는 방식의 나약하고 뜨뜨미지근한 대응으론 백전백패였다. 처음부터 아주 단호하게 절대로 희망퇴직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보여주어

야 한다. 그만두지 못하는 사유를 논리 있게 제시

라고 선배들로부터 수차례 들었다.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축 악하여 임팩트 있게 내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덕분에 본부장의 최후통첩에 즉각적인 반격을 무난히 해냈다. 한편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희망퇴직 마감일이었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과를 마쳤다. 동료 직원들이 삼삼오오 가끔 모

여 식사도 하고 고스톱판도 벌이는 단골 음식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박 점장 사직서 냈나, 내지 않았지? “

”예, 사직서는 내지 않았습니다 “

평소 직장 선후배로부터 두루 많은 신망을 받는 전직 임원 최상무는 방문을 들어서는 나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나는 짧지만 비장감이 감도는 대답을 했다. 이에 최상무는 판단을 잘했다며 위로 겸 격려의 말을 보탰다.

이런 형편에도 나는 고스톱 판에서 들러리는

어 선수로 참여를 했다. 평소 씩씩하고 힘차게 화투장을 내리치던 것과 달리 나도 모르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러니 가진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음식점 현장에 있지 않은 입사 선배인 함부장과 최상무 간 본 이벤트 관련 통화내역을 자연스럽게 엿들었다. 함부장은 최근 건강이 좋지 않은 부인 때문에 경황이 없었다. 그럼에도 전방위 압박 대상에서 예외를 두지 않는 회사

측의 처사에혀를 끌끌 찼다. 함부장도

희망퇴직에 응하지않기로했다.


결코 짧지 않은 이벤트의 종착지인 "정리해고

회피를 위한 제2차 희망퇴직" 신청이 드디어

마감되었다. 나와 오랜 기간 서로 소통하며

정보도 교환하고 엄청난 고민을 거듭하던 추

부장이었다.


“박 점장, 자네는 회사를 부디 계속 다니게나, 나의 거취는 생각한 바 있어. “

최종 마감일 오후 늦은 시각이었다. FAX의 힘을 빌어 사직서를 제출했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이에 나는 마치 친인척 한 사람이 세상을 하직한 것 같은 서운함과 비통함을 느꼈다. ‘오호통재, 오호애재’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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