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과 정리해고 (5편)

by 그루터기

대상자로 지목된 직원들이 드디어 광화문 광장에 집결했다. 정보도 교환하고 머리를 맞대고 대응 방안에 관하여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는 마치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봄까지 당시 국가의 최고 권력자 탄핵과 퇴진을 외치던 광화문 촛불집회의 효시로 보아도 별 손색이 없었다.

결코 적지 않은 직원들 간의 폭넓은 정보교환과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법률 관련 소관 부서의 최고위직인 임원급을 역임한 바 있었다. 이 선임 입사 선배의 최종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여건을 감안하고 종합해볼 때 회사 측이 정리해고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정당성을 인정받아 정리해고된 자가 설령 사법기관의 최종 판단을 구해도 이길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의견을 냈다. 바야흐로 이 선배의 결론에 가까운 의견이 이번 이벤트의 가장 커다란 분수령이 되었다. 이러한 메가톤급 충격에서 자유로울 직원은 별로 없을듯했다.

현장에 모인 직원은 물론 이 엄청난 비보를 전해 들은 대상자들은 가을날 찬바람에 나뭇잎 스러지듯 했다. 버티다 못해 급기야 두 손을 들고 속속 백기투항을 했다.


나의 절친 직원 손부장은 회사 측의 보복성 인사발령을 여러 번 받았다. 부인은 괴롭힘을 당하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부인과 합의 하에 사직원을 던져버렸다. 그 와중에도 끝까지 잘 버티어 살아나 달라고 나에게 비장한 응원도 남겼다.


상황이 스피디하게 반전을 거듭하던 중이었다. 느닷없이 조 부장은 전직 임원 정상무와 같이 내가 책임지고 이끌고 있는 점포로 오겠다고 했다. 숨이 넘어갈 듯한 어조였다. 예상하건대 반갑거나 희망적인 메시지는 기대할 수 없어 보였다. 온몸 통째로 느끼는 육감이었다.


본 이벤트 개시 초기였다. 정상무는 점포장 경력이 제법 있고 조 부장과 나보다 연식이 더 있는 민부장을 향해선 신중한 판단을 할 것을 주문했다. 이 와달리 달리 조 부장에겐 퇴직원을 절대로 제출하지 말 것이며 힘을 내라고 격려 차원의 조언을 했다.

부랴부랴 우리 점포에 도착한 조 부장과 정상무가 결코 좋은 소식을 가져온 것이 아님은 두 사람의 얼굴 표정으로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엔 회사는 종래 노사문제 부문 감독기관의 평가에서 별로 양호한 트랙 레코드가 없다. 때문에 평소부터 이에 철저히 대비하고 나름 제도적 장치 등을 마련해왔다. 종래와 달리 이번 이벤트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회사와 직원의 근로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당 노동행위의 행정적ㆍ사법적 구제 절차에서 회사 측이 용의주도하게 준비해 왔다. 이번엔 절대 엄포나 허풍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회사 측은 정리해고를 감행할 수 있어 보인다. “

광화문 집회의 결론과 같은 맥락의 조언이었다.


내 절친인 조 부장과 손부장은 결국 이렇게 해서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손부장은 잘 버티고 건뎌 내어 자신의 몫까지 직장생활을 이어가달라고 했다. 그 와중에 눈물을 섞은 덕담을 건넸다. 코끝이 찡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조 부장도 본인은 이미 마음을 굳혔으니 신중하게 생각하여 결론을 내라고 나에게 한마디 보탰다.


정말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고 버틸 경우 종국에는 그 무시무시하고 살이 떨리는 ’ 정리해고‘를 당할 것 같은 불길한 예측이 점점 짙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도 강한 의지로 끝까지 회사와의 싸움을 이겨낼 것이고 버티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우리 모두 같이 버티자며 다른 동료 직원들에게도 용기를 낼 것을 제안했다. 그랬던 양 부장은 정리해고의 정당성과 가능성에 관해 법전을 뒤져가며 열공 모드에 들어갔던 때와 판이하게 달라졌다. 어이된 연고인지 하루아침에 입장이 돌변하여 주위 직원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본 이벤트는 지주사 차원의 대대적인 프로젝트이고 이미 예정되어 있는 계열사와의 합병은 회사의 경영상의 중대한 어려움에 해당된다. 따라서 희망퇴직을 거부한 자에 대한 정리해고가 충분히 가능하다.”

그간 연구 결과의 결론을 공개하며 이른바 수건을 내동댕이쳤다.


희망퇴직 거부자에 대한 살 떨리는 이른바 ’ 정리해고‘가 임박한 것으로 보였다. 주위는 온통 공포의 도가니였다. '희망퇴직 거부‘란 간이역 다음은 ’ 정리해고 강행‘이란 종착역이 이미 나의 시야에 들어온 듯했다.


입사 이래 여러 번 지켜보아 너무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희망퇴직에 응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시한은 기껏해야 2~3일 정도로 짧게 주어졌다. 손익을 따지는 등 깊이 생각하기엔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드디어 제2차 신청기한이 오늘 오후로 다가왔다.


나와 견줄 때 엄청나게 부진한 실적밖에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연식이 좀 덜된 덕분에 이번 살생부에 오르는 절호의 기회를 아깝게도 가까스로 놓쳤다. 이런 입사동기나 직원들이 주위에 널려 있었다. 이들이 우리 점포 내 직원과 사내 메신저로 나의 동태를 수시로 파악하는 게 당연히 내 눈에 들어왔다. 정말 납득이 어렵고 속에서 천불이 났다.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지 못했고 야속할 따름이었다. 조금 연식이 더 된 것이 무어 그렇게 대역죄에 해당된단 말인가. 영업실적을 기준으로 보면 내가 살생부에 오른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우리 점포의 한 직원도 계속되는 전방위 압박을 견디다 못해 사직원을 던져버렸다. 그래서 당장 출근을 하지 않다 보니 나는 더욱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연식이 같은 주위 동료들이 점포 밖에서 얼굴을 한번 보자는 청을 받을 수 없었다. 오늘도 ’ 날궂이‘를 하듯이 궂은 비는 추적댔다.


나와 인근 거점점포에서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는 김대리는 뒷자리를 가끔씩 돌아보았다.

“점장님, 혹시 그만두시는 건 아니지요? 이쪽 영등포 쪽은 이제 지겹지도 않으세요?”

라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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