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중국음식점으로 들어섰다. 대입학원이 속한 빌딩 대각선 맞은편 지하에 자리한 곳에서 점심겸 저녁식사로 짬뽕 곱빼기를 먹기로 했다. 무려 18년이나 이어가던 권위주의 군사정권이 정점을 지나 종말을 고했던 해였다. 정부는 출근시간대의 혼잡을 피하겠다는 이유로 사상 유례가 없던 출근시간 시차제를 전격 도입하였다. ’콩나물버스’니 ‘지옥철’이라는 말을 매일 몸으로 체험하던 시절이었다. 출근시차제 시행안의 하나로 서울 소재 대입학원 등원과 수업개시 시각을 정오로 못박아 버렸다. 상당히 파격적인 조치였다.
나는 대림동에서 용산 야채시장 인근에 자리한 대입학원으로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통학을 했다. 서울 하숙비가 부담스러웠다. 월세나 전세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한다는 것도 결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은 친척 누님댁에 얹혀 살기로 했다. 막내 동생 또래인 조카의 공부를 도와준다는 조건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전부터 하루 세끼 말고는 간식이란 것을 찾지 않았다. 더구나 군것질이란 일종의 사치로 보았고 때론 죄악시까지 할 정도였다. 그래서 ‘집밥’ 대신 다른 것으로 끼니를 갈음한다는 것은 상상도 어려웠다. 이런 정규메뉴 아닌 것으로 식사를 마치면 무엇인가 조금 부족하단 생각을 늘 했다. 친척집에서 아침과 저녁식사는 해결이 되었다. 문제는 점심식사였다. 얹혀 사는 주제에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식사 후 자투리 시간을 집에서 그럭저럭 때우고 정오의 수업시각에 맞추어 학원으로 출발하는 패턴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시절 수강신청 시 시간표를 잘 짜지 못할 경우 중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은 것과 매우 비슷했다. 학원에 일찍 도착하여 수업시작 시각까지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 열람실 등 공간은 없었고 강의실을 오전에 미리 개방하지도 않았다.
“너는 삼시 세끼 오직 집밥밖에 모르는 아이인데 점심을 거르고 다닌다니 이것이 웬일이냐, 누님에게 도시락을 챙겨달라고 부탁 좀 해보아라.”
당신의 차남이 점심을 거르며 공부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어머니는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작년말에는 서울 소재 메이저 대입학원은 모두 4대문밖으로 이미 쫓겨났다. 이도 출근시간의 혼잡을 피하기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 이젠 한걸음 더 나아가 정오에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설상가상이었다.
빵이나 우유 등 간식으로 점심식사를 갈음하는 학원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본디 간식을 즐기지 않았고 이런 주전부리가 점심식사를 대신하기엔 절대로 부족하다는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나는 속을 비운 채로 정오부터 줄곧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수업이 모두 파한 후 나는 거의 매일 점심과 저녁식사를 겸하여 이곳 단골 중국집에 들러 짬뽕곱빼기로 한꺼번에 허기를 달랬다.
“아니, 재수생이 무어 쓰레기인가? 참으로 이 출근시차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일부 학원 강사는 비분강계하며 재수생들의 딱한 처지에 동정하곤했다.
같은 해 여름엔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 지미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모든 주택과 빌딩은 창문을 닫고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한미 양국 대통령이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기 위해 나섰다. 양국 정상의 경호를 위한 조치였지만 분명히 이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통치권 내지 행정권의 남용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매일 통학을 하던 시내버스의 경로가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변경이 되었다. 제3한강교를 건너 아주 훨씬 먼거리를 우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대입학원을4대문 밖으로 밀어낸 일, 정오부터 수업을 하도록 한 출근시차제의 도입, 모든 건물의 창문을 걸어 잠그게 하고 시내버스 노선도 갑작스럽게 터무니 없이 변경하는 일 등은 모두 ‘행정편의주의’를 넘어 ‘행정만능주의’에서 비롯된 헤프닝이었다. 일반 시민을 단순히 행정행위의 객체로만 보는 것이었다. 국민의 인권과 편의는 안중에도 없었다. 더욱이 출근시차제는 죄없는 재수생들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조치였다.
권위주의 시대로 일컫는 군사정권은 결국 그 해 말에 불행한 사태로 종말을 고했다. 약 40여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지금 당시의 상황을 돌아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작금엔 우리 사회의 많은 부문에서 엄청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은 눈에 띄게 줄었고 행정절차의 민주화도 상당히 진행되었다. 예전의 나 같은 대입 재수생은 이제 없다.
한강대교를 건너 용산야채시장 인근에 자리했던 그 추억의 중국음식점을 이제 다시 찾고 싶다. 점심과 저녁을 겸한 끼니를 때우는 방식이 아니었으면 한다. 제대로 된 식사 시각에 맞추어 여유를 갖고 짬뽕곱빼기의 맛을 음미하고 싶은 것이 나같은 일반 시민의 작은 바람이다.
“각하, 지금 농촌에는 병충해 때문에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답니다.”
“그래, 그것 정도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지. 모두 구속해버리면 되잖아?”
누군가가 지어낸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하나의 ‘페이소스’임에 분명하다. 이젠 이런 행정만능주의가 없어진지 오래라고 믿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