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니고 공간에 여유도 있고 인가와 멀리 떨어진 명당이었다. 마음껏 소
리 지르고 떠들어대도 나무랄 이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회장단과 연고가 있는 등 여러 가지 메리
트가 있었다. 우리 동창회 가을 모임 장소로 이곳
이 연속해서 3번이나 낙점되었다.
대개 10월 중 하순에서 11월 초순에 모이다 보
니 두세 주 정도의 간극이 생겼다. 경내엔 수령
이 오래된 여러 종류의 나무가 들어서고 특히
단골 연화장 인근엔 유난히도 조선 토종 감나
무가 빼곡히 자리했다. 이미 너무 많이 익어버
린맑은 핏빛 홍시는 세월과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래로 추락했다. 그래서 그 아까운 먹거
리가 바닥에 으깨어진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
다.
두께가 제법 되고 넉넉하게 너른 감 잎사귀가
여러 겹으로 바닥을 덮었다. 깊은 가을날의
운치 있는 경치도 공으로 즐길 수 있었다. 성인 남정네 길이의 두세 배 되는 긴 대나무 장대
끝에 매단 매미채 모양의 도구를 활용했다. 그
러면 많이 남지않은 까치몫을 빼앗아 완숙한
감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고향 읍내 가로수
임무의 많은 부분을 감나무에 맡기는 형편이
었다. 이들 감나무는 우리 고향 일대에선 다른
수종과는 달랐다. 한솥밥을 먹는 같은 울타리
안의 제식구에 다름이 아니었다.
모임 때마다 수련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고찰, 안국사와 인근 발전소, 전망대에 오르곤
하여 "호연지기"를 뽐냈다. 이곳에서 전망대로
곧장 오르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형편이었다.
강원도 속초 국립공원 설악산 일대의 절정에
오른 단풍에 못지않은 풍경이었다. 셀 수 없
는 색상이 어우러진 단풍바다가 펼쳐졌다.
옅은 노란색부터 새빨간 색상까지 여러 단계의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만추의 나뭇잎들이 형형
색색 그 자태를 뽐냈다. 어느 곳이든 여유 공간
이 되는 자리에 차를 세우고선 오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가능했다. 구도를 잡다 보면
모든 곳마다 아주 훌륭한 포토존이 생겨났다.
‘상엽 홍어 이월화 (霜葉紅於二月花)’, 가을 단
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란 중국 옛 시인의 작
품 중 한 구절을 절로 읊조렸다.
아날로그식 흑백 사진기도 귀하던 시절과 달
랐다. 디지털카메라나 보다 다루기 쉽고 용량
도 거의 제한이 없는 스마트폰의 셔터를 마구
눌러 댔다. 예전 카메라가 원산지인 사진은 촬영ㆍ현상ㆍ인화(확대)란 단계를 거쳤다.
그 후 재래식 앨범에 고이 보관하여 가끔 펼
치면 아스라하고 소중한 추억을 불러내는 것
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저장
된 이 많은 장면을 제대로 꺼내보는 일은 그
리 많지 않을 것 같았다.
물질문명의 진보와 인간의 정서ㆍ감성 등은 반
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프로 사진작가들도 컬러 작품 대신 흑백사진 부문을
한 단계 더 높은 거로 평가한다는 말도 틀린 것
은 아니다.
늦가을 정취를 300번지 말로 ‘심바 끈(실 껏)’
즐길 수 있었다. 감나무 아랜 세상에 나온 지 제
법 오래되어 보이는 평상 서너 개도 널려 있었다.
애연가는 삼삼오오 둘러앉아 흡연 타임을 갖거
나 비연 파는 그저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에
아주 제격이었다.
관내 소규모 학교에 딸린 강당 수준의 연회장에 원탁 여나무 개도 이미 준비되었다. 최신식 노
래방 기기도 벌써 무대 한 곳을 차지했다. 출장 뷔페 시스템이었다. LA갈비 목삼겹살 각종 찌개 생선회 매운탕 등을 해당 요리사들이 직접 나
서서 서비스하기로 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미션인 먹고사는 생업이 늦은 시각에 마무리되거나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 네댓 명 친구는 예외였다. 대부분 동기는 대략
약속한 시각에 크게 어긋나지 않게 만남의 장에
모여들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일단 성대
하게 차려진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이어 회장단의 인사와 예산 결산
보고를 모바일 기기의 도움을 받아 종래보다
더욱 스마트하게 마감을 했다. 원탁 테이블을 지그재그로 오가며 술잔이 몇 순배 돌다 보면
벌써 거나하 게 취기가 돌았다. 이 정도에선
자연스럽게 가무 버전으로 넘어가기 마련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