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동창회 무주 수련원 모임(3편 완)

by 그루터기


상대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인 양주, 고량주, 안동소주, 동해 백주 등은 처음부터 긴장을 하거나 각오를 하여 잔을 비우는 텀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 대세였다. 이와 달리 약주나 과일주 등은 방심하여 자주 들이켜기 일쑤인데 그러다 큰 코를 다친다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애주가 편에 든다는 평을 주위로부터 듣는 나의 짧은 소견이다. 독한 술 전용잔, 양주 고량주 소주잔은 맥주 약주 잔 대비 사이즈가 눈에 띌 만큼 작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80년대 초엔 소주 알코 도수는 25도나 30도가 기본이었다. 보통 서민들이 자주 들르는 주점에선 300원이면 마실수 있었는데 이보다 도수가 딱 한 단계 위 인 ‘동해 백주’란 게 있었다. 용량과 디자인은 소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빨간색 딱지로 차별화였다. 당시 내겐 이 것이 입맛에 아주 딱 맞는 술이었다. 광고도 ‘사나이 가슴에 불을 당긴다’라 하여 제법 앞서는 훌륭한 카피로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습을 감추어 다시는 구경할 수 없게 되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아마도 소주와 고량주 중간 정도인 35도 내외 알코올 도수였다. 희석식이 아닌 증류주라고 나는 지금도 굳게 믿고 싶다.


5년 숙성원액 과일주란 이름을 붙인 ‘매취순’에 나는 한 때 흠뻑 빠졌다. 아직도 좋아하고 기회가 되면 마시고 싶은 술이다. 서민들이 주로 드나드는 소주집에선 찾기 쉽지 않다. 일식 전문점 등 고급 술집에서 이를 마시기란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대를 호가했다. 90년대 초 같은 사무실 내 절친 직장 동료와 한 박스를 구입하여 반으로 나누던 좋은 기억도 있다. 전용 유리 술잔의 색상은 물론 디자인마저 내 마음에 아주 쏙 들었다. 술잔만을 따로 조달하기도 했다. VVIP 고객 접대 시 고급 일식 전문점에서 생선회와 찰떡궁합

이었다. 지금도 주점에서 마시기엔 여전히 부담스러우나 나와 잘 맞는 술임은 분명하다. 황금빛 가루가 병 안에서 출렁거리는 이른바 ‘순금’이란 이름을 붙인 프리미업급도 따로 등장했다.


흔히 보이는 찌개백반이나 가정식 백반 집같이 서민들이 주로 드나드는 주점에 들르거나 관광지 기념품 매장에서 눈에 들어오는 술잔이 있다. 그게 양주, 고량주, 소주, 막걸리잔 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걸 구입하거나 주인장께 사정을 해서라도 손에 넣기를 즐겨했다. 이상한 취미로 보여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으련다. 게다가 이런 습관을 바꾸고 싶지도 않다.


우리 동창회 모임 연회 만찬이 시작된 지 서너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취향이나 다음날 개인

일정에 따라 대략 4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연회장을 떠나지 않고 밤새도록 가무에 집중하기

도 했다. 같은 공간에 머물기는 하지만 가무보다

는 음주에 매진하여 부어라 마셔라 하는 무리도 있었다. 일찍이 숙소로 발길을 옮겨 조기 취침 모드에 들기도 했다. 또한 고스톱판을 벌이는 밤샘 조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다음날 골프 라운딩 일정이 있거나 다른 선약이 있는 친구는 밤늦게 자리를 뜨기도 했다. 아니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취침 시간의 확보가 필요했다. 비교적 조용하고 아늑한 방 한쪽 모퉁이를 찾아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는 제법 오래된 건물 너댓개 방을 숙소로 활용했다. 배정된 방의 난방은 어린 시절 겨울철 풀무의 신세를 진 왕겨 불 덕분에 뜨끈뜨끈하게 달궈진 온돌방을 넘어섰다. 2층 건물에 크기가 제멋대로인 너댓 개였다. 공간은 여유롭고 자주 옮겨 다녀도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특히 2층 한

쪽 변을 모두 차지한 제일 큰방은 학창 시절 수학

여행지 기준으로 배정을 하면 스물대여섯 명도 충분히 감당이 가능해 보였다. 세로 길이가 가로

의 그것보다 압도적으로 길쭉했다. 군 막사의 내무반도 연상되었다. 고스톱 경기는 아래층 중

소형 방 두세 개에서 열렸다. 경기에 뜻이 없는 친구들은 위층의 매머드 공간에서 일찍 취침모

드에 들기에 아주 제격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덕유산 향적봉 정상에 오르는 숙원 사업을 달성했다. 케이블카도 탈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시

도한 바 있었다. 하지만 미리 정해진 예약 시각

을 놓치거나 때론 강풍 때문에 여러 번 무산이 되었다. 게다가 전문 산악인들도 자주 구경 구

경할 수 없는 상고대도 감상할 수 있었다. 참

운이 좋았다. 고향 동창 친구들에겐 모처럼의 겹경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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