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번지 이야기(2편)

by 그루터기

한겨울에도 즐기는 지금의 아이스크림과 달리

아이스깨끼는 여름 한철 주전부리였다. 아이스

께끼 영업 역시 한철 장사였다. 초등학교 여자

동기네가 아이스께끼는 물론 하드 공장에다 도

매업도 겸했다. 8 식구나 되는 대가족에다 부

모 님의 평소 양육 방침(?)등 여러 가지 사유로

우리 형제들 에겐 하루 세끼 정식 이외에 간식

이나 주전부리는 금기시되었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나는 단순무식(?)하게 즐기는주식으

로 밥 물 술 세 가지만을 꼽기도 한다.


한여름철 초등생이 그 유혹을 뿌리치기 정말

로 어려운 획기적인 주전부리인 아이스께끼

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 짐자전거

에 짙은 하늘색 커다란 직육면체 아이스께끼

보관 통을 짐받이에 장착하"아아 스께끼"

라고 큰 소리로 호객행위를 하며 동네방네

를 누볐다. 자전거가 진입할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영업을 할 수 있어 영업권역은

따로 제한이 없었다. 둥근 대나무 꼬챙이에 직

경이 성인 남자 엄지손가락 굵기의 과자를 10

센티 내외의 길이로 끼워 얼려 붙였다. 이 괴물

은 순식간에 주전부리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

를 끌었다. 현금은 물론 빈 유리병이나 헌 고무

신짝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 등을 가져가도 이 괴

을 맛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물물교환 거래

였다.


나도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아이스께끼를 조

이라도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 끝에

이스께끼 소매상으로 나서기로 했다. 부모님

은 물론 형제들에게 이 국가기밀(?)이 탄로 나지

않게 는 게 가장 큰 관건이었다. 관내 최대 상가

밀집지역은 물론 이면도로나 좁은 골목길이라도

식구들과 마주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은

피해 다녀야 했다. 그러니 영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짐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빌 수 있는 다른 소매

과는 처음부터 아예 경쟁이 되지 않았다. 자전

거도 없이 조심스럽게 사브작사브작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많은 돈을 벌어보겠다는 처음의 목

표를 바꾸었다. 투하자본만 건지면 나머지 아이

스케끼는가 모두 먹어치우는 걸로 궤도 수정

을 했다.


나의 덩치나 체력에는 상당한 부담이 되는 크

와 무게의 아이스케키 통을 어깨에 짊어졌다. 많

은 고민을 했고 영업력을 발휘했다. 이윽고 소기

의 목표를 달성했다. 당시 아이스케끼의 출고단

가는 50전, 소매가는 1원이었다. 현금이 없는

나 같은 쌩초보 소매상에게도 외상거래 혜택이

주어졌다. 이 부문에선 신용사회가 일찍 정착된 셈이었다. 계산기나 주판은 없었지만 당시

주산반에 적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이 정도의 손

익계 산은 암산으로 충분히 가능한 이른바 ‘식은

죽 먹기’였다.


천신만고 끝에 목표에 도달한 나는 행인이 거

의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았다. 면사무소 뒤편 오

솔길 인근에 자리했다.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토닥였다. 혹시 있을 수 있는 부도는 막아야

했다.영업이익으로 자랑스럽게 통속에 남아

있을 괴물의 숫자를 다시 번 체크했다.검산을

무사히 마쳤다. 아이스께끼 통을 깔고 앉아 잠

시 휴식을 취한 다음 대망의 자축연을 벌였다.

인정상 막내 동생이 눈가에 어른거렸지만 내

영업이 탄로 나면 그 뒤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

이었다. 돗자리도 없이 "맨 봉당 (맨 바닥)에

우주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철부더기" 주저

앉았다. 남아 있는 괴물들을 정신없이 흡입

했다. 잔치가 끝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

지 않았다.


내가 평소 선망하였던 주전부리였지만 먹을

회가 거의 없었던 목록엔 각각 단가 5원인 "하드

"와 "호떡"이 올라 있었다. 하드는 아이스께끼보

다 단가 맛 품질 등에서 월등히 높은 고급 주전부

리였다 아이스케끼 공장에서 같이 출고가 되었다. 네모난 얇은 손잡이에다 역시 직육면체 과자를

약 8 센티미터의 길이로 끼워 얼리는 것이었다.

지금의 "수박 맛바"의 전신이었다. 이 하드란 걸

나는 초등학교 졸업 시까지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하드를 먹을 수 있는 친구들은 귀족으

로 보였다.


묽은 밀가루 반죽을 커다란 은색 주전자에 담아

4개 한 세트 주물 모양의 홈에 들어부었다. 팥고

물을 끝이 꼬부라진 쇠 꼬챙이로 두세 번 한가운

묻어 타지 않게 수시로 뒤집어 구워냈다. 이

단가 1원의 풀빵과 달리 5 윈짜리 "호떡"도 나

에게는 선망의 주전부리였다.


연탄 화덕 하나에 주물 모양의 홈이 20개 정도여

비교적 대량생산이 가능한 풀빵과는 달랐다.

호떡은 상당히 희소성이 있었다. 풀빵의 5배 정

크기였다. 표면엔 하얀 밀가루가 묻어났다.

두 조각을 내어 속을 쪼개 보면 반질 반질하게

윤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천연산 토종 쿨을 아끼지 않고 인심 좋게 흠뻑 발

라 놓은 것처럼 보였다. 더욱 구미가 당길 수밖

에없었다. 하드와는 달리 맛을 보기는 하였는데

그 기회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지금도

당시 아쉬음을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가끔 별식

으로 맛을 본다. 선망의 리스트에 올라 있던 당시

와는 아무래도 달랐다. 일정 부분은 추억의 맛인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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