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밭 비닐하우스 꾸미기 프로젝트(2편 완)

by 그루터기


크기가 다른 고무호스 줄 두 개를 둔덕 위 반대

편에 배치했다. 이 고무호스 두 개는 각각 농업

용수와 영양제를 실어 나르는 용도였다. 병주는

올해부터 새로이 마련한 농기구를 동원해 일정

한 간격으로 바닥에 원형 구멍을 뚫는 작업을 했

다. 수박 모종을 이 구멍마다 심을 거란다. 나는

보다 힘이 덜 들어 보이는 이 구멍 뚫기 작업을 자

청했다. 그런데 이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둔덕 위 양편에 올린 고무호스를 절대로 다치지

않게 작업을 해야 했다. 만약 호스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날 경우 모든 작업이 수포로 돌아간다니

어쩔 수 없었다. 전문가인 병주에게 맡기고 물러

났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감당할 자신

이 내겐 없었다.


다음에 둔덕의 가로 양 끝에 활대를 휘어 아치

형으로 꽂았다. 투명 비닐을 아치 위에 올려 일

단 큰 틀을 잡았다. 활대를 박은 지점의 비닐 위

에 두 가지 분량으로 구분된 양의 고운 흙을 조

심스럽게 흔쳤다. 투명 비닐이 흔들리는 것을 막

기 위함이었다. 이후 그 위에 두 겹의 부직포를

다시 덮었다. 부직포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흔

들어대어 덮는 노하우를 인호에게 금세 익혔

다. 작업시간이 쌓이다 보니 우리는 이제 모든

공정에 제법 익숙해졌다.


어제는 정월 대보름이었다. 인호와 나는 각종 나

물이 반찬의 주류인 병주네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오늘 점심은 해결하지요?

코로나도 만만치 않으니 외식하기도 그렇고...”

병주 부인의 제안이었다. 순간 나는 깜짝 놀

랐다.‘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관용구의 깊은 뜻

을 이미 꿰뚫고 있는 병주 부인의 인문학적

소양이 읽혔기 때문이었다. 흔히 비유로 많이

쓰이는 것을 실제 원관념으로 비틀어 표현하

실력이 발군이었다. 나는 좀 부끄럽기도 했

다. 난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내 세울

일이 전혀 아니었다.


“아마 두 분, 오늘 밤에 잠도 제대로 못 들걸

요? 모처럼 힘든 농사일을 했으니, 팔다리가

쑤실 겁니다. “에이, 무얼 이 정도 가지고?

저도 잘할 수 있어요.”나는 자존심에 병주 부

인의 말을 받아넘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

았다. 중학생 시절 개교기념 마라톤을 완주

한 끝의 후유증을 야무지게 겪었다.


“야! 기준아, 이 것이 무어 무겁다고? 이렇게

간단하게 울리미면 되지?”

병주는 2개 1조 묶음 부직포 덩어리를 나 보

란 듯이 가뿐하게 어깨에 올렸다.

“너는 늘 해오던 일이니까 그렇지?”

이렇게 말을 입밖에 내었지만 나는 이번에도

좀 부끄러웠다. 병주는 키나 체중 체격 등에

서 내게 좀 미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 것은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요령

과 기술이야.”귀촌하여 나와 자주 붙어 다니는

인호가 이른 말이었다.


어쨌거나 이틀간의 수박밭 프로젝트는 무사

히 마무리되었다. 눈으로만 보아 왔지 본인이

접몸으로 해본 적이 없는 농사일 모두는 만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정도 상식은 나도

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농사일이란

이 이렇게 고되고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였다.


작년 우리가 귀촌이래 김장을 담그는 날이나

별식을 마련할 때마다 병주네는 다른 고향 친

두 부부와 동네 이장과 후배네를 자주 식사

초대했다. 그때마다 인호의 제안으로 나도 염치없이 매번 끼어들었다.


“인호야! 너 앞으로 병주네에서 밥 먹자고 나

부르지마라.”

“그 건 또 왜 그래?”

“수박밭 일 말고 앞으로 또 고추밭 일을 시킬

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우리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즐겁게

웃었다.


사람은 오랜 기간 동안 본인이 해오던 생업

관련 일을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누

도 예외가 아나라고 본다. 하긴 내가 평생

온 일이라곤 고객자산의 유치와 관리였고

것을 위한 영업 활동이 전부였으니 수박밭

일은 서툴 수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변명에 갈음했다.


그래도 다가오는 올 겨울 김장 담그는 날 병

주네 식사에 초대받고 싶은 욕심은 버리지 못

할 것 같다. 우리 고향의 정취가 듬북 담긴 담

장과 돼지앞다리살로 요리한 수육에 세로

기다랗게 쭉 찢어 올린 배추 포기김치의

맛을 보고 싶다. 농사일을 하기 싫은 나의 이

기심의 발로라 해도 나는 변명하지 않으련다.


“어이 지금 뭐야? 별일 없으면 병주 네로 내

려와. 콩나물밥이나 같이 먹자고?”

오늘도 방금 전 인호의 호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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