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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13. 2022

졸업구술고사(1편)

“이이구, 이 것 어떡하지? 난 이번에 졸업을 하면 정말로 큰일인데. 야단 났어. 이 것 이번에 졸업을 해야 하네...”


대학 입학동기 송섭이는 캠퍼스 여기저기를 누비며 반복해서 외쳤다. 무엇이 급한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하는 동기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법대 남학생들에겐 병역문제가 수험생활을 이어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였다. 국가고시 중에도 사법시험은 출제범위가 워낙 방대했다. 그래서 학부 시절 4년 내에 최종합격이란 성과를 내기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이나 장차 교수에 뜻을 둔 친구들이 진학하는 석사과정이 정상적인 진로였다. 이와 달리 수험준비를 위해 군 입대를 합법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수단으로 대학원 진학을 활용하는 것이 대세였다. 4학기인 일반 대학원과 달리 수업 연한이 5, 6학기인 특수대학원도 있었다. 6개월 이상 세월을 추가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이쪽으로 방향을 트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이외 또 하나의 틈새 전략도 등장했다. 무릎을 탁 칠만한 묘책이었다. 바로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지 않고 학부 졸업을 6개월 뒤로 미루어 수험생활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법이었다.


고교 대학 등 상급학교 진학 시 재수를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친구들은 졸업을 뒤로 미룬 채 대학 재학을 이유로 군대 입영을 대학 졸업 시까지 추가로 뒤로 미룰 수 있었다. 이른바 학부 졸업 상한연령(입병 연기 연장 상한선)이란 기준에 아직 여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송섭이는 이 기가 막힌 선택지를 찾아냈다. 친구는 쾌재를 불렀다.


송섭이는 대학 졸업을 합법적으로 한 학기 늦추기로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 필기고사로 이루어지는 통상적인 학점은 모두 정상적으로 이수했다. 그 이후 이어지는 최종관문인 ‘졸구시’에서 2과목을 고의로 응시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학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복학생 선배들과 정반대 신세였다. 취업을 문턱에 둔 선배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졸업을 하고자 기를 썼다.


송섭이는 실제로 졸구시 2과목에 고의로 응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본인은 한 학기 졸업을 뒤로 미루는 위업을 달성했노라고 흐뭇해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졸업사정회에서 송섭이는 무난하게 졸업하는 범주에 들어갔다. 본인이 바라던 바와 정반대의 결론이 난 것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그렇게도 간절하게 졸업을 갈망하던 일부 선배들은 총학점 미달 내지 전공 교양 필수 과목 미수료등의 사유로 소기의 목적달성에 실패했다. 졸구시 2과목 결시를 한 송섭이는 이를 반영하더라도 이런 복학생 선배들보다 종합 성적에서 앞섰다. 그래서 졸업이 가능한 것으로 최종 판정이 났다.


‘무릇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고 일찍이 설파한 이순신 장군이 떠올랐다. 간절히 졸업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못하고 원치 않는 자는 졸업이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이었다.


상법 교수는 이런 저간의 사정을 전해 들었다. 그런 심오한 소망이 있었으면 사전에 자신과 상의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교수들은 평소 학생들의 수강 태도, 평판, 성실성, 평점 등을 종합하여 이른바 그레이드를 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송섭이는 대학원 시절 논문 제출에 앞서 필히 요구되는 석사학위 취득을 위한 종합 시험 시각을 착각했다. 그래서 종합시험 응시 기회도 한 번 놓치는 진기록을 세웠다.


오랜 동안 나와 같은 공간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여 소망을 이룬 국립 S대 법대 출신 신 선배는 이 송섭이의 이야기를 꺼내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성실성이 좀 부적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였다. 결국 친구 송섭이는 독특한 별칭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만고강산 좌충우돌’이란 긴 훈장을 얻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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