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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25. 2022

내가 막상 당하고 보니

                                

“야, 인마 너 허튼짓하지 마. “

”아니 그것이 아니고요, 어디지요? 무어라고요? “

우리 회사는 정규 학교보다 5일제 근무를 먼저 시행했다. 당시 학생들은 토요일도 등교를 했다.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었다. 토요일 아침이었다. 작은 아들 세진이는 오늘 아침에 학교가기를 싫어하는 눈치였다. 감기 몸살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집사람은 어서 등굣길에 나설 것을 보챘다.

     

나는 이런 것을 지켜본 후  단골 이발소로 향했다. 예전에 살 던 곳을 떠나온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럼에도 나는 애마의 신세를 지어 편도 20여 킬로미터가 넘는 곳에 자리한 ‘그야말로 옛날식 이발소’를 오늘도 찾아 나섰다. 날이 접히는 면도날을 갈 때 사용하는 닳아 빠진 ‘칼갈이 연마용 가죽 띠’가 매달려 있는 곳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이발용 의자에 마음 편히 앉던 순간이었다.


내 핸드폰에 등록되지 않은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영업직원의 숙명적인 직업의식이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현재 내가 관리 중인 고객이나 아니면 친구, 친지, 지인이 내게 소개한 잠재고객이려니 했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피하는 것이 대세임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나의 이런 짐작과는 다른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오늘 아침 등교할 마음이 전혀 내키지 않던 세진이의 표정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간 매스컴이나 주위로부터 ‘보이스 피싱’이란 것에 관해 나는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일어나서는 안될 장면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세진이의 학교 스쿨버스 기사로 추측되는 50대 남자가 우리 세진이를 모처의 헛간 등에 가둔 후 몽둥이로 연속해서 가격하는 것이었다. TV나 영화에서 자주 보아 온 장면이 쉽게 설정되었다. 세진이로 추정되는 아이가 “아빠~~, 아빠~~”를 외치며 구조를 요청했다. 아이는 각목으로 얻어맞으면서 아빠를 찾았고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 50대 남자는 세진이를 인질로 잡고선 내게 얼마의 금품을 요구할 것 같은 기세였다. 순간

나는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곤두섰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발용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이발소 문을 후다닥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섰다. 방금 전 50대 남자와의 통화는 어영부영 종료되었다. 나는 이것이 ‘연출된 상황’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릴랙스, 릴랙스’를 계속 외쳤다.114 안내 번호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참으로기가 막혔다. 세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이름이 금세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을 다 잡았다. 겨우 약간의 안정을 되찾았다.


“6학년 최세진의 아빠입니다. 우리 세진이, 오늘 학교에 제대로 갔나요?‘

“예 아버님, 왜 그러시지요?

“지금 아주 큰일이 났어요. 세진이가 누구엔가 잡혀서 마구 얻어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 확인해서 즉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상황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별의별 상상

이 꼬리를 물었다. 세진이의 ‘최종 안위’까지 걱정이 되었다.     


“세진 아버님, 저 교감입니다. 세진이는 오늘 학교에 제대로 등교했고, 지금 정상적으로 공부 잘하고 있습니다.”     

3분 전후의 짧은 순간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러나 학교 측의 최종 확인을 기다리는 동안은 ‘일일이 여삼추’였다. 나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이발소로 곧 복귀를 했다. 이발소용 의자에서 방금 전 갑자기 뛰쳐나가던 나를 지켜보던 주인장과 안주인은 아직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어찌 된 영문인지 내게 물어왔다.

    

“우리 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아들이 소총을 잃어버리는 사고를 쳤다고 징계를 면하려면 3천만 원을 송금하라고 했어요. 문제의 전화를 걸어온 남자는 마구 다그치며 자신이 시키는 대로 어서 미션을 마칠 것을 요구했지요. 그런데 평소 알고 있던 아들 소속 중대장과 연결이 되어서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그러게 말이야, 자식이기 때문에 이렇게 자주 내려올 수 있는 것이지.”

큰아들이 세 살 적이었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얼마 전까지 처가에서 아이를 돌보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부득이한 사정으로 더 이상 처가의 신세를 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보금자리에서 무려 600여 리나 떨어진 고향 본가 부모에게 잠시 큰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당시엔 우리 회사도 주 6일 근무 시절이었다. 1개월 단위로 열차 티켓을 예약해가며 매주 고향을 왕복하던 중이었다. 고향 절친이 이런 사연을 듣고 내게 이르던 말이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드물다는 말에 딱 들어맞았다.

    

범죄를 다스리는 사법기관의 고위 공직자인 부모도 이번 나와 같은 ‘보이스 피싱’에 꼼짝없이 속아 넘어간 사례가 종종 매스컴을 타고 있었다. 사법기관 종사자라도 별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자식의 안위가 엮이는 일이니 더욱 그럴 것이었다.

   

“그래, 만약 앞으로 실제로 너희들이 이번과 같은 일을 당할 때를 대비하자. 그때는 우리 두 아들과 아빠만 알고 있는 암구호를 정해 서로 확인하기로 하자.”

“맞아요, 아빠, 그것 좋은 아이디어이네요.”

     

이런 위기에 대비하여 우리 삼부자는 어느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우리만의 암구호를 이번 기회에 정했다. 나는 이번 이 ‘보이스피싱’에 낚이지 않고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만약 세진이가 실제로 그 50대 남자에게 감금과 린치를 당했거나 아니면 계좌로 송금이라도 했다면 어떠했을가를 상상만 해도 다시 소름이 끼쳤다.    

금품을 노리는 이런 반인류적인 범죄의 철저한 색출과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과학적인 수사기법의 개발 등 인프라 구축과 대처요령에 관한 연구도 더욱 필요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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