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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Oct 06. 2022

수학여행 전성시대(초등학교)


                               

선생님, 동성이하고 저희 집에서 내일 밤 같이 자도록 하겠습니다.”

모레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수학여행 길에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면소재지에서 약 20여 리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들을 소재지 학생들이 한 사람씩 책임을 지기로 했다. 나는 평소 아주 친하게 지내는 동성이를 미리 찜했다. 우린 모교 초등학교 교정에서 모레 아침 이른 시각에 수학여행 목적지로 출발하기로 했다.      

면소재지에 자리한 학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친구들은 별 문제가 없었다. 평소 등교 시각보다 1~2시간 앞당기더라도 약속된 출발 시각에 교정에 모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무려 20여 리나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들은 형편이 달랐다. 우리 면 끝단인 가선리라는 부락의 친구들은 워낙 먼 거리를 오가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친구들은 자전거를 이용했다. 여학생들은 그 먼길을 그저 걸어 다녀야 했다. 평소 등하교 길을 뛰다 걷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이곳 친구들은 모두 중장거리 달리기 선수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였다. 이 친구들은 3학년까진 자신들이 사는 곳의 분교를 오갔다. 그 이후 4학년부터 약 20여 리 거리에 자리한 본교로 공부 장소를 옮겼다.   

   

나의 본적지인 가곡리 300번에 보금자리 이외에 5일장 터 한 변의 중앙에 자리한 ‘창고 집’이 따로 있다. 그래서 나는 동성이를 책임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손을 번쩍 들 수 있었다.

      

매년 봄과 가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치르는 소풍과 이번 수학여행과는 전혀 차원이 달랐다. 소풍은 우리 행정구역인 면내에서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누어 단골 소풍 장소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 모두가 걸어서 당일치기가 충분히 가능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 수학여행이란 이름부터가 좀 멋져 보였고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먼 곳으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우선 달랐다.

     

하룻밤을 고향을 떠난 낯선 곳에서 묵는 멋진 추억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이는 아쉽게도 성사가 되지 않았다. 새벽에 출발하여 저녁 늦은 시각에 돌아오는 무박 여행이었다. 만약 하룻밤을 묵을 경우엔 여행 비용이 훨씬 늘어나야 했고 인솔하는 교사들이 통제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 등이 그 이유로 추정되었다.     


그럼에도 소풍 전날 밤보다 설렘의 강도가 훨씬 높았고 심지어 긴장까지 되었다. 소풍 때마다 매번 챙겨야 하는 점심 도시락’ 말고 필수 지참물이 이번에는 하나 더 늘어났다.  짙은 바닷물을 연상케하는 군청색 학교 지정 모자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모자의 진정한 용도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우리 모교 이름을 널리 알리거나 추위를 막아내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음이 금세 밝혀졌다. 수시로 머릿수를 헤아려야 하는 군대 병력 관리의 목적과 똑같았다. 시골 출신 학생들이 모처럼 먼 길을 나서니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번잡한 관광지에서 혹시 길을 잃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수시로 머릿수를 파악하는데 이만한 훌륭한 방법이 따로 없었다. 

    

우리의 수학여행 목적지는 보은군 일원에 자리한 속리산 법주사였다. 짙은 선글라스를 자랑스럽게 장착한 운전기사가 책임진 관광버스가 이미 이른 새벽에 학교 운동장에 출동을 마쳤다. 당시엔 버스 기사란 일종의 전문 직종의 반열에 오르던 시절이었다. 군청색 모자 덕분에 인원 파악은 훨씬 수월하게 마무리되었다. 

    

구절양장이라는 말에 딱 맞았다. 말티고개들 들어서던 순간이었다. 평소 차멀미와는 거리가 멀다고 자랑을 하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의 얼굴엔 갑자기 핏기가 없어졌고 수시로 비닐봉지를 찾아 나섰다. 버스가 급커브를 반복할 때마다 좌우로 몸이 쏠리기  일쑤였다. 안전 벨트라는 이름도 낯선 시절이었다.     

말티고개는 거구 황소의 내장을 일정한 길이로 반복하여 길게 늘어놓은 듯했다. 기사 아저씨의 노련한 운전 실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얼마 전 유력한 모 고위공직자의 자녀가 군대 생활 중 운전병으로 뽑힌 가장 큰 이유라고 내세우던 말이 떠올랐다. ‘코너링이 좋아서 뽑았다고 끝까지 우겼다. 정말로 코너링이 좋은 기사를 우리는 이미 한 세대 앞서 경험하는 혜택을 누렸다.     


예수님과 부처님 공자님이 셋이서 화투 경기를 벌였어요. 최종 승자는 부처님이 되었지요. 그 부처님은 예수님과 공자님에게 돈을 낼 것인지 이마의 꿀밤을 맞을 것인지를 택하라고 보채는 광경입니다.”     

현지 가이드는 팔상전 인근을 지나면서 시골 꼬맹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놓고 너스레를 떨었다. 압도적인 사이즈의 부처님이 왼손은 돈을 받으려는 자세를 하고 동시에 오른손은 엄지손가락 끄트머리 안쪽에 장지의 끝 부분 손가락을 장전하는 동작을 익살스럽게 풀어냈다.          

쌍사자석등 아래엔 암 수 두 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지요. 학생들, 이 암 수의 구분을 할 수 있나요?”

수놈은 암놈에 비해 팔뚝이 우람하고 핏줄이나 근육이 도드라져 있지요.”

가이드는 자문자답을 이어갔다. 

    

완연한 가을 정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오리숲이었다. 포장이 되지 않은 황토색 흙길이었다. 우리 일행은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이곳을 느린 걸음으로 통과하며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쌍 자사 석등(5호), 팔상전(55), 석연지(64) 이 세 가지의 국보급 문화재에 대한 기억은 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리 한구석에 화석처럼 고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일보다 어린 시절 추억을 훨씬 잘 소환할 수 있다는 것이 치매 초기의 한 증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이곳 속리산 법주사를 찾는 관광객들의 단골 등산 목적지이고 경관이 빼어난 문장대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아직도 남아있다.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초저녁에야 고향으로 복귀해야 하는 빠듯한 여행 일정 때문에 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번 수학여행비로 무려 300원이란 현금을 이미 학교 측에 건넸다. 내가 대학생 시절 보통라면 1그릇 가격과 똑같은 비용이었다. 초등생 시절 최고급 필기도구인 향나무 재질의 비둘기표 동아연필 한 자루가 10원을 호가했던 것에 비추면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우리 6남매 중 나는 초중고는 물론 대학 시절 수학여행 명단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보기 드문 혜택을 받은 행운아였다. 이른바 수학여행 전성시대란 말에 잘 어울렸다. 우리 학교 지정 군청색 모자는 다른 학교 수학여행단과 견줄 때 세련미가 아주 바닥이었다. 한 뙈기의 땅도 바다와 맞닿는 곳이 없는 완벽한 내륙지방 한 끄트머리 자그마한 분지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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