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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Oct 07. 2022

수학여행 전성시대(중학시절 1편)


                          

준수야,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너는 다른 친구들보다 앞장서서 이번 수학여행에 참여하겠다고 해야 되는 것이 아니야?”

, 선생님 저는 이번 여행에 갈 수가 없습니다. 형편이 그렇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오늘 나를 불러 개인 면담을 마쳤다. 이번 수학여행에 참여할 수 있는 학생의 명단을 집계하던 중이었다. 최소 인원에 다소 모자라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설득을 해서 즐거운 여행을 성사시켜야 할 위치에 있는데 정작 본인인 나부터 뒤로 물러서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던 담임선생님이었다.

     

내겐 아주 말 못 할 충분한 숨은 사연이 있었다. 최근 아버지는 전주에 자리한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인 ‘@@병원에 진료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아버지는 평소 속이 치 않았다. 20~30대 시절 아버지는 아마튜어 씨름선수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게다가 주종 불사 두주 불문의 손꼽히는 애주가였다. 그런데 최근 음식물 소화가 원만하지 않았고 최악의 경우 악성이 의심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러니 내가 수학여행 이야기를 입밖에 낸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가장의 막대한 역할과 책무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계기였다.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암 노이로제 현상이 주위에 많다고 합니다. 별일 없을 겁니다.”

큰 누나는 그래도 6남매의 맏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각종 책과 매체를 통해 전해 들은 지식을 토대로 아주 심각한 상황까지 각오를 한 아버지를 안심시키려 무던 애를 썼다. 결국은 다행히도 아버지의 병명은 악성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최종 판명이 났다.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수학여행 명단에 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한 나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원자가 최소 인원에 모자랐던 것으로 보였다. 결국 우리 동기들 중학교 2년 수학여행 계획은 무산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중학교 3학년생이 되었다. 또 한 번의 수학여행 시즌이 돌아왔다. 지난번 2학년 시절보다 우리 동기 중 수학여행 지원자 수가 부쩍 늘어났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학교 측은 묘안을 꺼내 들었다. 우리 후배인 2학년생과 우리 동기 3학년생의 수학여행을 합동으로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나중에 같은 관광버스에 선 후배가 같이 섞여 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이번에는 우리 동기들만으로도 최소 인원을 채웠으리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지는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로 정해졌다. 2, 3학년 선후배가 같은 일정의 수학여행에 동행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이틀 밤을 묵을 곳은 제법 규모가 큰 정원을 갖춘 2층 여관이었다. 내 본적지 300번지의 꽃밭보다는 훨씬 수종이 다양했고 공간은 넓었다. 정원을 들러싸고 배치된 객실이 20여 개에 육박했다. 한옥의 마루에 가까운 복도가 원을 그리며 이어져 있었다. 여러 개로 나뉜 유리가 부착된 미닫이식 문을 좌우로 열어야 마루를 거쳐 객실로 드나들 수가 있었다.  

    

“밥 줘, 밥 주란 말이여. 이것이 무엇이야, 고양이 밥도 아니고...”

우리는 10대 초반의 중학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평소 식사량은 이미 막일을 주로 하는 장정에 버금갔다.      

커다란 사기 밥그릇과 국대접에 익숙해져 있었다. 밥그릇은 용기의 아래 빈 공간보다 그 위 에 쌓아 올린 부분이 오히려 그 부피가 더 많은이른바 고봉밥이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 밥상에 오른 밥그릇은 우리가 늘 보아오던 것과 달랐다. 투박한 사기그릇이 아니었다. 우윳빛 재질을 자랑하는 당시 이름을 날리던 “법랑 홈세트” 유사품이었다. 밥그릇보다 훨씬 용량이 은 밥공기가 대령되었다. ‘단위가 달랐던 것이었다. 이러니 이미 대식가 반열에 오른 시골 출신 우리에겐 성이 찰 일이 없었다. 우리 일행은 뜻밖의 이런 공깃밥 등장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권위주의 군사정권이 1인 장기집권을 꿈꾸고 10월 유신이란 정체 모를 체제를 들고 나온 지 만 2년이 되던 무렵이었다. 탄수화물이 주종을 이루는 혼식 밥과, , 김치 말고 이렇다 할 부식이나 반찬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은 열약한 환경이었다. 그러니 주식인 밥의 양은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친구들은 밥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난리를 쳤다. 그러자 이 숙소 겸 식당 주인은 커다란 양푼에 모둠 밥을 가득 채워 네모난 나무 재질의 밥상이나 알루미늄 원형 밥상마다 추가로 하나씩 올렸다. 이래서 사태는 겨우 진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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