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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Oct 08. 2022

수학여행 전성시대(중학시절 2편 완)

“지금 애타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회 기획부장인 성준수에게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경부고속도로에 올라선 관광버스가 ‘경제속도’를 돌파한 후 견조하게 주행을 이어가던 순간이었다. 기술 선생님은 갑자기 내게 노래 한 곡을 뽑으라고 했다. 천하의 음치로 이미 소문이 난 내게 또 한 번 식은땀을 흘려야 하는 곤혹스러운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자리에서 애국가를 부를 수는 없었다.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당시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어니언스의 편지를 택했다. 그럭저럭 가사를 더듬거리며 마무리 했다. 가까스로 면피를 했다. 뒤를 이어 같은 동네 절친 근우는 방주연의 당신의 마음을 열창했다. 직업 가수의 반열에 오르기는 좀 부족했다. 하지만 내 노래에 비하면 아주 훌륭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슈퍼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 왔다. 우리나라 가수가 당시 번안해서 공전의 히트를 친 노래 원곡인 ‘Beautiful Sunday’를 진수는 원곡 가수를 뛰어넘는 실력을 뽐내며 자신 있게 불러져꼈다.      

이에 특히 여자 동기들은 앙코르를 연호했다. 겨우 중 3년생이 그 어려운 외국 노래를 그것도 원어로 거뜬하게 소화해내다니 이는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무릇 노래란 이렇게 소질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 불러야 듣는 이들이 즐거운 것이다. 그럼에도 주위에 사람이 몇 명만 넘어서면 그 어느 곳이나 기준에 모자라는 나 같은 이에게도 노래를 강요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반백 년에 육박하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이 아름답지 못한 관행은 이어지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Beautiful Sunday’를 직업 가수 이상으로 멋지게 뽑았던 친구는 최근 내게 오래된 비밀 한 기지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자신은 그 어린 중학생 시절에 벌써 작사와 작곡을 하는 창작가였다고 내게 귀띔을 했다. 친구의 천재적인 소질과 실력을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여러분의 좌우측을 통과하고 있는 수학여행단은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명문 이화여고 학생들입니다.”   당시 학생은 등하교는 물론 소풍이나 수학여행 길에도 교복 착용은 의무사항이었다. 우리와 달리 교복만으로 어느 학교 학생인가를 금세 알아차렸던 것이었다. 석굴암을 오르내리던 우리 일행에게 영어 선생님은 친절하게 이런 안내를 이어갔다. 우리 그 누구도 그런 부탁을 선생님에게 한 적이 전혀 없었다.

     

나는 순간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내륙지방의 한 끝인 자그마한 분지에 자리한 중학교에 학적을 두고 있는 우리에게 이는 위화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귀족과 평민으로 대비되기조차 했다. 나도 하루빨리 이 시골 굴레를 벗어나 대한민국 수도 서울로 진학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은 형편에 이런 뜻하지 않은 기를 죽이는 안내를 들어야 하니 이는 염장을 지르는 일에 다름이 아니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세간에 회자되는 일종의 ‘캐치프레이즈’에 어린 나도 동의를 하고 있는 터였으니 더욱 그랬다.  

    

여러분, 이제 울산 공업 단지에 들어섰습니다. 저기 보이는 곳이 바다입니다.”

우리 친구들 모두가 강이 아닌 바다를 처음으로 구경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또 한 번 실망을 했다. 바다라 하면 아주 맑디맑은 동해의 푸른 바다를 평소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책이나 영화 각종 영상에서 익히 보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우리가 울산 관내로 진입할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점점 긁어지고 있었다. 거센 바람도 동반했다. 울산 공단 인근에서 우리가 쳐다볼 수 있는 바닷물은 여름 장마철 한가운데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고향 비단강의 검붉은 흙탕물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또 다른 고향 절친 경수와 분황 사지 석탑 인근에서 포즈를 잡은 수학여행 기념사진을 나는 최근 부착식 앨범 한 귀퉁이에서 찾아냈다. 친구는 시커먼 교모의 차양을 구부리고 약간 삐따닥 하게 방향이 틀어진 모자를 쓴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러분에게 말하기는 좀 그렇긴 합니다. 우리가 울산으로 진입할 때 검문과 에스코트를 해준 경찰에게 수고비로 금일봉이 담긴 봉투를 2개 건넸습니다.”  

   

우리 체육 선생님이 이번 수학여행 경비 결산 내역을 공개하며 친구들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대단히 뜻밖의 일이었다. 경비 집행의 투명성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친다는 점은 높이 살만했다. 어찌 보면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어린 내 생각은 좀 달랐다. 그 런 것은 건너뛰어도 누구 하나 나무랄 사람이 없을듯했다. 우리에게 어쩌면 세상 물정을 하나씩 가르쳐나가기로 작정한 선생님의 보다 깊은 뜻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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