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Oct 30. 2022

두 마리 고래 덕분에 등 터진 새우(4편 완)

               

이번 BTS 부산 공연에서 촉발된 숙박업소들의 바가지요금 횡포에 행정당국도 그저 손을 놓고

만 있을 수 없었다. ‘행정지도라는 비권력적인 방법을 꺼내 들었다. 일일이 업소마다 숙박 예약 내역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행정지도란 것이 비록 비권력적인 방법이라고 하지만 숙박업소

들은 이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에 다

른 이유나 핑계로 받을지도 모르는 별개의 불

이익이나 후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업소들은 아마도 한 발짝식 뒤로 물러서는

시늉을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엄연히 사적 자치원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

간의 계약에 개입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이번 기회에 부산 숙박 업소들은 대목 특수를 누렸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뿌드득 뽀드득! 뿌드득 뽀드득!”
 내 본적지 가곡리 300번지 초가집 시대였다. 밤새 내린 함박눈이 덮인 골목길을 삽작문을 열고 나서 검정고무신이나 장화를 신고 푹푹 빠지면서 한걸을 씩 내딛을 때 듣던 정겨운 소리가 결코 아니었다. 오늘 일정을 모두 정리하고 내가 잠자리에 들고자 대충 담요 위에 눕고선 숨을 고르던 순간이었다. 내일을 위해 애써 잠을 청했다. 금속성 줄로 재료를 다듬는 소리에 다름이 아니었다. 친구가 아무리 건강한 치아를 자랑한다고 해도 저 정도이면 치아가 모두 닳아 없어지는데 결코 많은 세월이 필요치 않을듯했다.  

    

바로 내 왼쪽 편에 누워 깊은 잠을 이어가던 친구였다. 아직도 그 기능이 끄덕 이 없는 아래위 모든 치아를 총동원했다. 앞니 송곳니 어금니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는 고향 동기들 12일 행사를 비롯해 여러 곳의 숙박 일정을 소화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오늘 이런 난데없는 ‘이빨 갈이 국가 대표 선수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전 이런 비슷한 사례에 관한 기억은 아득했다. ‘이빨 갈이 슈퍼스타를 맞닥뜨린 것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게다가 저쪽 대각선 방향의 창고 방에선 한밤 중에 긴급 군사작전에 동원된 탱크가 돌진하고 있었다. 나도 소문난 코골이 명단에 일찍이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래서 코골이들은 제일 먼저 잠자리에 드는 것이 장땡이었다. 설혹 중간중간 잠에서 더라도 어느 정도 마음을 다 잡으면 다시 잠을 이어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이 이갈이 선수 앞에선 백약이 무효였다. 아예 처음부터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코골이와 이갈이 두 주자의 멋진 협연으로 펼쳐지는 오케스트라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 민재야 인마 너 너무 심하다. 어떻게 좀 해 보아라.”     

준수야 제 입에다 재갈 좀 물려라 아니면 흔들어 깨워보든지...”

담요 위에 눕기만 했지 눈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내 오른 쪽에 누운 순섭이는 이갈이 선수에게 내가 어떤 강력한 조치

라도 해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선 나는 도저히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고스톱판이 벌어지고 있는 옆방의 야시장으로 다시 건너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순간이었다. 잘못이 확인되었다. 방금 전의 이갈이 국대 선수’는 민재가 아니었다. 머리와 이마의 경계선이 뒤쪽으로 많이 밀리고 백발이란 헤어스타일이 너무 비슷해서 나는 준호를 민재로 착각했다.  

    

내가 들어선 야시장에선 아직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순미는 친구들을 위해 라면정식으로 야식을 대령했다. 고스톱 경기중 을 놓고 티격태격했던 앙금 때문이지 몰랐다. 당사자였던 미혜는 나를 고스톱 멤버에 새로이 끼워주기 싫은 눈치였다. ‘뒤 끝이 좀 있는 친구였음이 밝혀졌다.    

  

나는 이번 부산 여행에서 이 세계적인 K-POP 스타인 BTS 공연 때문에 이 열약한 민박집으로 행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이갈이 국대 친구 준호 때문에 토막 잠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 불쌍한 중생이 되었다.   

   

내가 그랬나? 이를 갈았다고? 잘 모르겠는데...”

준호는 천연덕스럽게 우리에게 대꾸를 했다. 다른 친구들의 숙면 기회를 몽땅 빼앗아 갔건만, 이 선수 자신은 아주 달콤한 숙면을 아무런 문제 없이 누렸으니 더 큰 문제였다. 친구들에게 끼친 민폐를 마지막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내 고향 또 한 절친인 홍철이는 독특하게도 눈을 반쯤 뜨고 잠을 자는 버릇이 있었다. 만약 이 친구도 이번 부산 여행에 동참을 했더라면 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코골이, 이갈이 국대 선수, 눈뜨고 잠자는 선수 이 셋이서 만들어내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에 나는 잠시라도 눈을 붙일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 뻔했다.  

   

BTS 부산 공연이 우리 일행의 숙소를 이곳으로 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갔다. 태풍의 나비 효과를 나는 이번에 톡톡히 체험했다. 운주의 아들 결혼식 날짜를 BTS공연 일정보다 먼저 정했음에도 우리는 이 나비효과를 피해 갈 수 없었다. 'BTS'와 '이갈이 국대 선수'라는 두 고래 덕분에 나 같은 새우는 등이 터지는 신세가 되었다. 향후 친구들 자녀 결혼식은 BTS 공연 같은 대형 이벤트를 충분히 참조하여 날을 잡을 것을 권유하고 싶다. 더 이상 나 같이 등이 터지는 새우의 출현을 막아야 할 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두 마리 고래 덕분에 등 터진 새우(3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