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Aug 10. 2023

출근 첫날부터 아주 게겨버린 신입사원

                          

샥시야 내 술 한 잔 받아.”

야 인마, 너 나 이겨?”

요즘 같으면 정말로 크게 문제 될 일이었다. 미투에다 모욕등으로 엮일 것은 뻔했다. 이미 필름이 끊어진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돼버렸다.  

     

첫 직장이자 마지막이 된 곳으로 첫 출근일이었다, 오늘 일과 후 저녁 시간엔 신입사원 환영회를 하기로 했다. 막걸리에다 파전이 메인 메뉴인 선술집이란 이름에 걸맞는 ‘못 잊어’에서 벌어진 풍경이었다. 지점 전체 인력이 동원되지 않았고 출납과 영업 쪽 직원만 참석하는 부분 회식이었다.   

  

첫 잔부터 매우 긴장한 상태에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술에 취하는 것이 무서워 아예 밀밭 도 가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처음엔 위장을 하고 나섰다. 신입사원 3명에 기존직원 9이 되다 보니 술잔을 돌리는데 구도절대적로 신입원이 불리했다. 신입사원을 환영하는 자리인 취지에 맞게 우리 3명은 집중포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조신하게 행동해야 할 형편인데 감히 신입사원 나부랭이가 첫 출근일 회식 자리에서 완전히 게긴 것이었다. 이것은 입사 동기들은 물론이고 여직원들, 대리 차장 등 책임자들에게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개망신이었다.  

    

, 그냥 내버려 두거라.”

자리를 파한 후 나는 카운터 앞에서도 같은 행태를 반복했다. 심 차장은 나를 제지하는 직원들에게 한마디 던졌다. 그대로 술주정을 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는 조그만 배려였다. 나는 나중에야 이런 사실을 입사 동기에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최준수 씨 우리 어제 이곳에서 다 같이 외박했. 빨리 뛰자고요. 오늘 지각하면 큰일 나잖아요. 면도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어쩌지?”

“준수 씨 때문에 방을 2개 잡았지요. 워낙 술에 많이 취한 데다 덩치가 크고 몸을 가누지 못하니 그랬어요.”

출근 첫날부터 외박을 한 우리 신입사원 3명은 근 시간에 맞추려고 구보를 이어갔다.   

  

어이, 최준수 씨 추어탕이나 먹으러 가자고,”

이 엄청난 사건이 터진 다음 날 점심 시간이었다.

입 사원 우리 모두는 아침 식사는 당연히 걸렀다. 출납 박스 안에 처박혀 안개가 낀 것처럼 복잡한 머리통을 두드리고 거북한 속을 달래고 있었다. 복대리가 식사를 같이 가자고 나를 콕 찍어 호출했다.   지점 뒤편에 자리한 호텔 안의 단골 음식점이었다.


최 준수 씨는 앞으로 어디 가서 술을 마신다는 말을 하면 안 되겠어?” 

담당 차장이 뼈 있는 농담 한 마디를 던졌다.      

“최 선생님 출근 첫날부터 술에 취했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음식점 이름도 ‘못 잊어’였어요.”

여직원들도 한마디 거들었다.   

  

신입 별정직원에 불과한 햇 병아리가 첫날부터 아주 게겨버리다니...”

상급자들이 한결같이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나는 회식 초반에 술 마시는 속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제법 인터벌을 두고  술잔 돌리기에 나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량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내 본적인 300번지 초가 두꺼비집 휴즈가 끊어져 버린 것에 딱 맞는 사태가 벌어졌다. 만취한 나는 술주정으로 깽판을 쳐 환영회 분위기를 일순간에 망가뜨렸다.   

  

나는 첫날부터 아주 강도가 높게 게겼으니 상사에게 말 그대로 확실하게 찍혀버렸다. 입사 동기들은 물론 여직원들에게도 체면을 확 구겨버렸다. 향후 어느 세월에 이 커다란 실수를 어떤 방식으로 만회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대학 시절만 해도 동기들에게 술에 취한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고 거들먹거리기까지 했던 나였다. 주량만을 기준으로 줄을 세운다면 상위 3% 안에 거뜬히 랭크될 자신이 있었다. 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바였다.      


내 일생일대 지상과제였던 사법시험에 최종합격을 이루지 못하고 이제 생존을 위한 밥벌이를 위해 일선 직장에 몸담게 되었다. 그러니 앞으로 구만리 같은 길을 어떻게 살아갈야 할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누적된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해 버렸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다. 선술집 ‘못 잊어’에서 정말로 환영회 참석자 모두에게 잊지 못할 풍경을 연출해 꼴통으로 찍힌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나는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을 얻어 부양해야 할 식구가 늘어났다. 가장으로 절체절명의 소임을 다하느라 직장생활에 올인했다. 중도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영업에 매진했다. 그래서 무려 32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채워 정년으로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 준수야 나는 네가 우리 동기들 중 제일 먼저 직장생활을 때려치울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제일 오래 다니게 되었어. 상상도 하지 못했다,”

, 네가 영업을 한다고? 참 웃기는 일이다.”     

대학 동기 절친은 내게 가끔 나름 이런 평가를 내렸다. 공기업에 몸을 담고 있던 또 다른 친구의 빈정거림도 감수해야 했다.     


4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위대한 소명을 다하기 위해 첫 출근 일부터 대형 사고를 친 사법시험 준비생의 생애는 어느덧 급여생활자로 굳어졌다. 회사의 사규상 내게 주어진 근속 가능 기간을 천신만고 끝에 완주했다.  

    

최 선배님! 너 나 이겨?”

신입사원이 출근 첫날 환영식에서 상상 못 할 대형 사고를 친 역사적 사건은 그 이후 입사 후배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끊기지 않고 전해졌다. 이는 이제 재미있는 작은 전설이 되었다. 그 사건은 20대 후반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그저 호연지기를 핑계로 들이대면 그리 크게 질책받을 이벤트는 아니었다.   

  

“최준수 씨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런 대단한 술꾼을 빼면 안 되지?”

4급 책임자 중 제일 선임인 복대리는 때론 내게 이런 추임새를 넣었다. 이를 나는 그때마다 나에 대한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정년을 채웠잖아요?”

나보다 10여 년 먼저 회사를 떠난 입사 선배의부러움이 섞인 위로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했다.  일찍이 꼴통으로 찍힌 실점을 만회하러 내가 정년까지 채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벤트로 나를 기억하는 직원들은 내가 끊임없는력으로 그 굴레에서 벌써 벗어났음을 모두가 인정했.               

   

작가의 이전글 액땜 기회에 만난 좋은 사람들(2편 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