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장대비와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장마철 한가운데 300번지 초가집 앞마당엔 성인 남자 장지 손가락 굵기 미꾸라지 서너 마리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졌다. 살아보겠다고 마당 바닥에 자연스럽게 생긴 조그마한 물고랑을 찾아 꿈틀댄다. 두엄 밭 출신으로 보이는 짙은 선홍색 지렁이도 쉽게 눈에 뜨인다. 소리보다 빛이 엄청나게 빠르다.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거리는 번개 불빛이 보인 후 천둥소리가 들리기까지 인터벌을 어림 잡아 300번지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이 번개의 진원지 인지를 계산해보기도 한다. 자신의 몸집 대비 커다란 입과 튀어나온 눈을 가진 갈색 가랑잎과 유사하고 요철이 심한 피부를 가진 두꺼비도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장마철은 미꾸라지 잡이 알바 시즌이기도 하다. '딘전돌' 도랑가 버드나무 뿌리가 바닥으로 반쯤 드러난 진흙더미엔 미꾸라지가 작은 호박 크기의 덩어리로 뭉쳐 이리저리 뒹구는 미꾸라지 밭ㆍ소굴이다. 산태미 비슷하게 철사로 엮어 만든 도구를 한 손으로 잡고 왼쪽 발로 바닥을 차근차근 밟다 보면 미꾸라지는 두 손 들고 자진 신고를 하여 나서게 된다. 투명한 빈 비료 포대 5 부 능선까지 채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관내 메인스트리트의 몇몇 가게에선 사발 복자가 바닥에 새겨진 사기그릇 한 사발에 40 윈씩 사들이기도 하는데 5 윈짜리 공책 8권 상당액이기 때문에 한 철이지만 제법 부가가치가 높은 일감이 된다.
길게는 2 주간의 장마가 계속되어 비단강 상류 한 복판에 자리한 '귀바위'는 이미 물에 잠긴 지 오래이고 그보다 아래 보이는 상당히 좀 더 높은 '용바위'도 간당간당한다. 나무토막, 말목, 송판 쪼가리, 가재도구 등 온갖 세간살이는 물론 살아 있는 조선 토종 꺼먹돼지까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짙은 황토색 물살을 오랜 시간 보노라면 현기증이 나 발을 헛디딜까 바짝 긴장을 한다.
관내에서 가장 길고 시원시원한 몸매를 자랑하는 토종 대나무 장대 예닐곱 개를 짊어지고 현장으로 나선다. 낚싯줄 하단에서 3부 능선 정도에 성인 남성 주먹 반 정도 크기 짱돌을 매달고 낚싯바늘엔여리고 상대적으로 귀여운 것 대신 검붉은 색의 좀 뚱뚱하게 살이 오른"꺼깽이"(지렁이)를 과감하게 끼우고선 낚싯줄을 하늘 높이 힘껏 집어던진다. 오늘 모시고자 하는 물고기들은 냄새에 홀려 몰려들기 때문에 덩치가 더 큰 미끼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다른 낚시질과 달리 장대 하나에 서너 개의 낚시 바늘을 간격을 두고 군데군데 매단다. 준비해 온 장대를 하나도 남김없이 제방뚝 둔덕 흙속에 힘껏 밀어서 끼운다.
고기가 낚싯바늘을 물었다는 걸 쉽게 알려주는 도구인 방울은 굳이 필요가 없다. 낚시에 달린 물고기의 무게에 따라 수면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찌'도 역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잠시 기다릴 새도 없이 낚싯줄과 장대가 하중을 받아 팽팽하게 당겨지거나 휘어지면 이미 고기가 낚시를 물었다는 신호가 온 것이고 장대를 손으로 점검하면'손맛'이라는 말대로 육감이 온다.
그다음은 물린 동자개, 모래무지, 부거리등을 걷어들이느라 정신없이 분주하다. 물속을 갓 벗어난 고기들은 낚싯바늘을 물었음에도 펄쩍 뛰어오르거나 파닥거리며 앞뒤로 몸을 뒤집는 등 살아보려 거칠게 몸부림을 치곤 하는데 생에 대한 처절한 의지임은 물론이다. 노란색 양은 들통이나 고무 재질의 바케츠를 가득 채우는 데 긴 시간이 필요 없음은 물론이다. 낚인 고기를 회수 후 낚싯대를 다시 장착하기를 지속 적으로 반복한다.
외국영화에 가끔 등장하는 물살이 매우 빠르고 굴곡과 커브가 많은 계곡이나 강에서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나가는 '리프팅'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야성이 넘치는 활동이다. 역사시간에 배운 원시시대 사냥 , 수렵, 어로 채집이란 용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지금도 이 물분 낚시의 연출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는 장마철에 직접 시연이 가능하니 기회가 오면 연락을 주겠노라고 고맙게 말을 이어간다.
비가 개인 여름날 오후 짧은 시간엔 도저히 다가갈 수 없을 정도의 멀고 먼 산 중턱에 일곱 색깔영롱한 아치 모양으로 걸쳐 생겨났다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게 무지개다. 공해에 찌든 도심보단 청풍명월의 이름이 결코 아깝지 않은 H의 고향에서 보는 것이 훨씬 맑고 선명한 것은 당연하다. 무지개는 파랑새와 마찬가지로 시나 동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아스라한 추억과 로망 등이 연상 되기도 한다.
어린 H는 실제로 무지개를 찾아 먼 길을 나선 적도 있다. 오랜 세월 전 모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는 '파랑새는 있다'라는 드라마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여 이멜 주소나 전산시스템 상의 아이디 앞부분을 이 두 단어의 영문 글로 정하기도 한다. 길고 긴 여름날 하루 종일 달음박질로도 결코 가까워지지 않을 거리의 먼산에 척 걸린 무지개 아치 너머를 '심바끈(힘껏)' 날아가는 파랑새를 그려본다. 무지개를 좇고 파랑새를 잡으려고 하던 어린 시절의 H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