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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y 12. 2024

넘벌 누님 포장마차(2편, 완)

나는 오랜 기간 이곳을 드나들었다. 그간 누님으로부터  생활의 작은 지혜부터 영업 노하우, 인맥 구축 비결등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남자 손님들은 들이닥치는 많은 손님 때문에 정신없이 바쁠 땐 술병은 물론 수저나 물 잔, 빈 접시 등을 직접 챙기기 때문에 자신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반해 같은 상황에서 여자 손님들은 그저 팔짱을 끼고선 손 끝 하나 까닥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포차 CEO가 모든 것을 일일이 대령하기를 기다린다며 자신의 크고 작은 경험도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평소 집안에서 삼시 세끼 식단을 책임지는 주부가 이런 곳에 와선 그야말로 온전하게 손님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였다. 이에 더해 여자들 간의 경쟁심리 내지 시기 질투가 조금은 작용한 점도 있지 아닐까 하는 에 내 생각이 미쳤다.    

 

오늘은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비법에 관한 누님의 특강을 청해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적정한 물양을 가늠하는 것이 가장 기본임은 물론이었다. 이어 냄비 안의 물이 펄펄 끓고 있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라면을 투여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런 다음 중간중간마다 길다린 나무젓가락 등으로 면발을 물밖로 끌어올려 외기에 노출을 시켜주면 면발이 꼬들꼬들해진다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숨겨진 노하우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공개했다.      


누님, 오늘 큰일 났어요. 우리 지점 회식을 차수를 변경하면서 이제 마쳤는데 제 핸드폰 배터리가 완전히 맛이 갔어요, 이것 어떡하지요. 대리기사를 불러야 하는데 휴대폰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꼼짝없이 오도 가도 못하는데...?”

, 여기 충전기 있어요. 이리 주세요 아주 고성능 급속충전기는 아니지만...”
 

포장마차 가운데 쇠기둥을 따라 위쪽에서 늘어뜨린 콘센트에 연결된 충전기에 내 휴대폰을 넘겨받아 끼워주었다. 벌 누님 덕에 오늘 걸린 외통수에서 무난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에이, 내가 라면 한 그릇 정도 서비스 못하겠어? 오늘은 라면값 받지 않을 거야.”

나는 최근 대학병원에서 특정 부위에 관해 추척관찰 중이라서 병원에 다녀오는 중이었다. 라면 한 그릇 가격은 거금은 물론 아니었다. 자신의 가게를 자주 찾는 고향 단골 후배가 병원을 다니고 있다는 고백에 작은 위로의 말과 게 내놓은 코끝 찡한 나눔이었다.    

  

“손뼉 칠 때 떠나라말에 딱 맞았다. 최근 누님은 그간 많은 정이 들었던 이곳을 떠나 여의도로 진출하기로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권리금도 챙겼고 금세 나타난 원매자에게 이 가게를 넘기기로 했다. 매우 아쉬웠다. 그간 좋은 친구들이나 편한 직원들과 이곳을 수 없이 많이 찾았는데, 단골 가게 한 곳이 사라진다고 하니 작지 않은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우리가 포차행이 필요할 때마다 매번 여의도를 오간다는 것도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넘벌 누님이 이곳을 떠난 후에도 우리는 이 양수인이 꾸려가는 곳을 자주 찾았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우리는 넘벌 누님  얼굴을 가끔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의 여의도 가게가 쉬는 날은 이곳에 출동하여 오랜 기간 단골이었던 고객의 인수인계도 해 주는 등 가게일을 손매를 걷어 부치고 도우곤 했다. 때론 누님의 여의도 가게가 비영업일인지를 묻는 우리 안부 전화에  한 걸음에 달려오기도 했다.  

    

우리 점포 직원들은 물론, 고향 친구 그 외 학교 동기들이 이곳 포차를 이용하도록 하는 데 나는 나름 많은 기여를 했다. 어쩌면 이 벌포차의 ‘영영 담당상무’ 자리에 오른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누님, 그쪽 벌엔 정 씨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지요?”
 고향 집 구석구석마다 누구네 부엌 설강에 수저가 몇 벌인 지를 술술 꿰고 있는 고향 친수 천수가 일행에 합류했다. 천수는 오늘 이 넘벌 포차의 정식 손님으로 등록을 마치자마자 이야기 대열에 본격적으로 끼어들었다.  

    

1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나는 방앗간을 건너뛰지 못하는 참새가 되었다.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곳을 찾는 더욱 많은 참새떼를 모으는데 작지 않은 기여를 했다. 내가 벌 누나와 악수를 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대학 동기들은 초면임에도 벌 누나의 손등에 저마다 자신의 손바닥을 포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혹시 벌 누님이 아직도 포차 CEO에 재직중이라면 작은 바람 한가지가 있다. 깻잎 한겹으로 바닥을 조심스럽게 장식한 접시에 담긴 잘 데쳐진 꼴뚜기를 안주로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당시 고향 친구 멤버들 그대로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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