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지점에서 대리라고 불리고 인천 야트막한 비탈진 곳 조그마한 평형의 아파트에 전세살이를 할 때였다. 나는 경인 전철과 좌석버스를 연결하여 출퇴근을 했다. 칠십 년대 말이나 팔십 년대 초반처럼 푸시맨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절은 아니었다. 경인전철의 승객들은 꾸준하게 유지되었고 특히 출퇴근 시간대는 탑승시간 내내 승객들 간 몸싸움을 해야 했다.
오늘은 그동안 열심히 근무한 대가를 한 달 단위로 금전 보상을 받는 즐거운 급여일이다. 자동이체가 일상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이러저러한 공과금을 납부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최소한의 예의 표시를 했다. 그다음 늘 불확실한 앞날에 대비코자 적립식 계좌에 평화의 댐 건조 시 한 장의 벽돌을 쌓듯이 입금을 했다. 우리 집 내무부장관 보고용 증빙 등을 상의 주머니에 잘 챙겨 넣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우리 집 첫째 삐약이 얼굴을 조금이라도 일찍 볼 생각으로 전철에 몸을 실었다.
빈 좌석이 있으리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았다. 승객들 간의 몸싸움은 여전했다. 하루마다 조그마한 행동이 쌓이다 보면 그게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굳어지어 습관이 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운 좋게 앉아서 갈 수 있는 경우와 달리 서서 여행을 할 때 나는 오른손으론 손잡이가 아닌 손잡이가 달려 있는 길게 가로로 장착된 은색 철봉을 잡고 왼손은 바지 왼쪽 주머니 속 깊숙이 집어넣는 독특한 자세를 늘 유지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런 자세에 변함이 없었다.
전동차가 급출발, 제동과 급 커브길 진입, 진출에 따라 승객들은 전후좌우로 몸이 쏠리는 불편을 감수했다. 그 정도가 심할 경우엔 여자 승객들의 금속성 비명 소리도 쉽게 들렸다.
방금 내가 올라선 역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왼쪽 주머니 바깥 부분에서 이상한 사태가 벌어졌다. 사람의 손으로 보이는 물체가 주머니 바깥 부분을 쓰다듬다가 압박을 했다를 반복했다. 처음엔 객실이 붐비어 이리저리 쏠림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려니 했다. 이게 몇 번 반복이 되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바짝 차렸다. 바로 코앞의 한 사내와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이건 사람의 어떤 목적이 있는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덜컹거리는 차량 덕분에 승객들의 쏠림 현상은 계속되었다.
방금 전 나와 눈이 마주친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내 왼쪽 주머니 바깥쪽에 본인의 손을 밀착시킨 채 내 몸이 쏠리는 방향으로 덩달아 똑같이 움직였다.
"이 보세요 이거 무어하는 겁니까? "
"당신 이거 무어 야?"
드디어 말다툼으로 발전했다.
뒷주머니 지갑에 든 돈은 내 것이 아닌 남의 돈이고, 지갑은 왼쪽 상의 안 주머니나 다른 곳에 잘 간수해야 한다고 귀가 따갑도록 나는 아버지에게 들었다. 장지갑 보다 나는 반지갑을 선호했다. 아버지의 주의를 항상 상기하여 나는 지갑을 바지 뒤쪽 주머니가 아닌 앞쪽 왼편 주머니에 넣고 왼손으로 위에서 감싸는 자세를 고집했다.
보통의 사람과 다른 이러한 나의 독특한 습관을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사내는 순간 몹시 당황한 것으로 보였다. 지갑의 소재는 정확히 탐지했으나 내가 왼손으로 철통 같은 방어막 역할을 하고 있는 줄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사내와 내가 이리저리 밀치는 몸싸움을 하고, 옥신각신하는 말다툼에 객실 안의 많은 승객들의 시선과 주의는 우리 쪽으로 쏠렸다. 내용이 같은 말다툼과 몸싸움이 일정한 시간 반복되는 중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말도 떠오른 나는 빠른 결단을 내렸다.
객실 안의 다른 승객에게 더 이상 불편을 주어서는 아니 될 것 같았다. 시시비비를 가려서 이 사태를 종결시키고 싶었다. 나에게 본인의 정체를 이미 들켜버린 이 사내는 이른바 뒤집어 씌우기를 시도했다. 나를 오히려 소매치기로 몰아버리고 싶은 행동에 돌입했다. 그 와중에도 나의 왼쪽 호주머니 바깥쪽 압박은 멈추지 않았다.
"당신, 이거 무어 야?"
라고 소리를 질러 남이 듣기에 따라 나를 오히려 소매치기로 오인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나는 물론 이 광경을 목격한 승객들이 원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다음 정차역에 하차하여 사태를 해결하기로 했다. 순간 이 사내의 또 다른 일당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나는 근처의 승객 중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걸로 생각되는 중립적인 인사(?) 두 사람을 임의로 지정하여 같이 동행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드디어 나와 이 사내, 목격자 2명이 가장 가까운 역에 하차했다. 역무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후 문제의 해결을 부탁했다. 그리 긴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 경찰 2명이 순찰차로 출동을 했다. 그 간의 사정을 전해 듣고 다툼의 당사자인 그 사내는 물론 나에게 몇 가지를 추가로 물었다. 본인들의 본래의 일정이 있음에 불구하고 고맙게 여기까지 동행해주신 목격자들의 증언도 추가로 이어졌다.
이 사내는 방금 전 객실 안에서 취했던 언동과 180도 다르게 ‘표변’을 했다.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직업이 무엇이며, 자신과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고, 본인은 ‘큰집’에 들어가도 괜찮다는 둥 횡설수설했다. 나의 눈빛이 날카로워 혹시 경찰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이야기도 이어갔다.
"여보세요 이 호주머니는 이 분의 것이고 주머니 안의 소지품도 무엇이든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머니 안에서 이 분이 손으로 무엇을 하든 이 분의 공간이니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라고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그 사내를 다시 한번 살폈다. 그 사내는 보통보다 긴 스포츠형 헤어 스타일에 점퍼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달음박질에 편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이러니 전형적인 ‘소매치기 선수’로 보였다.
그런데 그 후의 추가 조치 여부가 문제였다. 이 사내를 정식 입건을 하여 재판을 받게 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였다. 경찰은 나를 한쪽으로 조용히 불러냈다.
”저 자식, 내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소매치기입니다. 만약 선생님의 주머니에 손이 들어갔다면 사건 처리를 하려고 했는데 이즈음 해서 마무리하면 어떨까요? “라고 의견을 냈다.
당시 나의 대학 절친이 가까운 인천 시내에 검찰 현직에 있었다. 이 경찰의 의견을 거절하고 당장 친구에게 연락하여 그 사내의 행위에 합당한 처벌을 요청할까도 생각했다. 혼내주고 싶었다.
나는 잠시 더 생각을 했다. 이 건이 그렇게 중한 범죄도 아니어서 짧은 기간의 자유형이나 최악의 경우 벌금형의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수험생 시절 내가 배운 원칙대로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문제는 이 사내가 처벌을 받은 후 나의 퇴근시간대 무렵 전철역 인근에서 매일 나를 기다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규범과 현실의 갭이었다.
경찰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 나에게 같이 길을 나서자는 그 사내의 반갑지 않은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경찰 순찰차를 얻어 타고 다른 대중교통으로 환승하여 야트막한 언덕 위의 조그마한 전셋집으로 발길은 돌렸다.
아버지의 평소 가르침 때문에 다행히 재산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 사내의 범행은 결국 미수에 그쳤다. 와이셔츠 왼쪽 상의 주머니의 돈은 남의 눈에 띄더라도 쉽게 가져갈 수 없다는 자칭 전직 소매치기의 말도 떠올랐다. 그곳은 시람의 눈과 손이 가장 빠르게 옮겨갈 수 있는 이른바 안전지대이라는 것이 그 이유라 했다.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 노력 시간 등과 소매치기 피해자 체험을 바꾼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