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미쓰리 추천 장학금

by 그루터기

학부 4년 동안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나는 집안 형편이 녹록지 않음에도 부모님을 진정성 있게 설득한 나머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2기였다. 나는 영세민들이 모여 사는 월계동 9평형 시영아파트에 형, 여동생, 남동생과 넷이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른바 월계동 시대를 열었다.


여동생도 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그럼에도 작은 오빠와 남동생을 위해 주중 주말 불구하고 매일 도시락을 4개씩이나 챙겼다. 빨래와 식사 등 모든 살림을 도맡아 했다.


외부에 자리한 화장실은 두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했다. 거실이라고 아주 좁고 짧은 복도 수준에 머물렀다. 연탄보일러라 매일 연탄불이 꺼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샤위시 설은 당연히 없었으며 5층 아파트 건물의 3층에 살고 있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상상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였다.


방금 전 나는 들기름을 바르고 구워서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자른 수제 도시락용 김을 빠뜨리고 나왔다. 여동생은 작은 오빠 뒤를 온 힘으로 달려 37번 노선버스 종점에서 건네주었다.

"현성아, 여동생 시집갈 때 아주 큰 선물을 해주어야 겄네 “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동기들이 자주 하던 충고였다.

아주 성실하며 오빠의 뒷바라지를 헌신적으로 하는 셋째 딸인 여동생을 둔 나를 많이 부러워했다.


지천명이 되도록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아주 여러 번 이사를 다녔다. 너무 자주 주민등록의 전출입이 일어나자 본적지 파출소로 신원조회까지 온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잦은 거주지 이전은 수도 서울에 와서도 여전했다. 친척집 입주 알바, 하숙 , 자취 등을 두루 경험했다. 전셋집을 전전하는 것을 아버지는 매우 안쓰럽게 생각했다. 이러던 차에 장안동이나 월계동 정도 가면 일천만 원에 모자라는 돈으로 아주 작은 평형이지만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다는 복덕방 사장의 안내를 들었다. 갑자기 귀가 번쩍 뜨인 여동생의 정보제공으로 비록 영세한 초소형이지만 드디어 "우리 집"을 갖게 되는 작지 않은 행복을 누렸다.


엄마 아버지, 이제 우리 집이니까 한번 다녀가세요”

나중의 일이었다. 아주 환한 목소리의 여동생 전화 멘트가 아직도 생생하다.


휴대폰은 물론 집 전화도 없었다. 그래서 같은 층 맞은편에 사는 이웃집 전화번호를 이른바 수신전용으로 응급 시에만 아주 제한적으로 신세를 지었다. 도시락 2개와 무거운 교재가 담긴 가방을 둘러메고 토 일 불구하고 일 년 내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강의실과 도서관을 전전했다. 나는 어느 토요일 하루 사정이 있어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우리가 극히 제한적으로 그것도 수신전용으로 신세를 지던 전화기 주인의 세대엔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다. 우리들은 전화 수신의 신세를 질 때마다 좀 까칠한 바깥 주인의 눈치를 감수해야 했다. 집 없는 설움을 갓 면하였지만 전화기 없는 서러움은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토요일 오전 10시쯤이었다. 갑작스러운 앞집 안주

인의 호출을 받았다.

“현성아 오늘 무슨 일이 있어? 왜 오늘 도서관에 나오지 않았어? 아주 좋은 소식이니 빨리 학교로 나와라. 법대 일반대학원 2기에 현성이는 자네밖에 누가 있겠어? 장학금 나왔네.”

절친 석호가 부산을 떨었다. 까칠한 바깥 주인의 눈치 때문에 나는 통화를 어서 자르려고 했다. 나는 이미 2기 등록금을 일찍 납부했다. 그래서 반신반의했다.


헐레벌떡 책가방을 챙겨 신발도 대충 끼우고 학교로 내달렸다. 현장에 도착했다. 교직원은 내가 이미 납부한 결코 작지 않은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 증서와 맞바꾸어 주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드라마틱했다.


도서관 내외에 흩어져 있던 입학 동기를 있는 대로 모았다. 주점으로 직행하여 우리는 크게 한 판을 벌렸다.

“현성아. 지천명이 되도록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아주 여러 번 이사를 다녔다. 너무 자주 주민등록의 전출입이 일어나자 본적지 파출소로 신원조회까지 온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잦은 거주지 이전은 수도 서울에 와서도 여전했다. 친척집 입주 알바, 하숙 , 자취 등을 두루 경험했다. 전셋집을 전전하는 것을 아버지는 매우 안쓰럽게 생각했다. 이러던 차에 장안동이나 월계동 정도 가면 일천만 원에 모자라는 돈으로 아주 작은 평형이지만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다는 복덕방 사장의 안내를 들었다. 갑자기 귀가 번쩍 뜨인 여동생의 정보제공으로 비록 영세한 초소형이지만 드디어 "우리 집"을 갖게 되는 작지 않은 행복을 누렸다. 계속 장학금을 받아라. 우리 동기들에게 실컷 술 마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거지?”

동기들의 각종 축하 멘트가 쇄도했다. 장 학금 중에도 제법 그레이드가 되는 ‘총장 장학금’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더욱 기분이 업 되었다.


당일 교내에 없었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베푼 혜택(?)의 술을 마지지 못한 동기생이었다. 친구는 뜬금없는 말을 입밖에 내었다.

“난 알지 현성이의 장학금의 진상을 알지 ~~ ”

진상 어쩌고 저쩌고는 하는 바람에 무슨 음모(?)라도 되는 가 궁금했다. 나중에 조교 동기로부터 이른바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듣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제는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민 주부였다. 그럼에도 편의상 ‘미쓰리’라고 불리며 학장실에서 근무하는 행정 요원이었다. 소신인지 옹고집인지는 몰라도 독특한 캐릭터로 매우 저명한 노동법 교수가 최근 총장에 취임 후 단과대 순시 중 법대에 들렸다. 미쓰리 샘에게 신임 총장은 건의사항 한 가지를 주문했다.

“다른 단과대와 달리 법대에는 총장 장학제도가 없는데 어떻게 해주실 수 있나요?”

미쓰리 샘은 들이댔다. 결국은 신임 총장은 이를 쾌히 승낙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그럼 이번에 최초 수혜자를 당장 한 명 추천하라고 했다. 미쓰리 샘은 고민도 하지 않고 "최현성"을 추천했다.


최현성 학생은 평점도 어느 정도 되고, 평소 공부를 부지런히 하는데, 계속 사법시험에 실패를 하니 안타깝다. 격려 차원에서 한번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추천의 변을 덧붙였던 것이었다.

얼마 후 추천에 대한 감사의 표시 방법을 나는 조교 동기에게 물었다.

“그거 뭐 간단하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거든, 미쓰리 샘이 좋아하는 도넛 3,000원어치면 충분하지.”

의외로 아주 소박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른바 ‘미쓰리 추천 장학금’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최현성 학생, 도넛 맛있게 먹었어요. 열심히 하세요.”

얼마 후 교정에서 마주친 나에게 미쓰리 샘은 한 마디 건넸다. 이에 ‘감사합니다’며 허리를 90 이상 굽히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덕분에 우리 집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전화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집 없는 설움을 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기 없는 설움도 마저 떨쳤다. 까칠한 앞집 바깥주인의 눈치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이래서 나는 ‘자식 키우는 보람을 느낀다’는 보기 드문 칭찬을 아버지에게 받을 수 있었다. 미쓰리 샘 덕분에 총 세 차례나 향토장학금을 면제받는 작지 않은 행복의 랠리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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