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것이 웬 날벼락이야?”
“오늘이 혹시 만우절은 아니지? 거짓말을 할 것이 따로 있지?” 10월의 마지막 주 한가운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자타가 공인하는 팔방미인 우리 고향 친구 상훈이가 세상을 하직했다. 친구는 모든 운동에서 이미 프로선수 반열에 올랐다. 최근엔 주로 테니스를 즐겼지만 운동이라면 감히 대적할 이가 없었다. 그저 단순히 건강 관리를 위한 운동이 아니었다. 운동이 자신의 몸에 체화된 말 그대로 ‘전형적인 운동 매니아’였다. 운동의 가장 기본인 달리기 능력에선 초등시절부터 그 실력이 출중했다. 중학생이 되어선 축구, 핸드볼 등 구기 종목에서도 항상 주전 멤버의 자리를 꿰찼음은 물론이다. 일찍이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렇게도 운동과 친하고 건강하며 멀쩡하던 친구였다. 자기 관리에도 남달랐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친구들을 뒤로하고 먼저 훌쩍 떠나 버렸다. 어안이 벙벙했다. 이 친구를 아는 모든 사람은 공부는 기본이고 노래 기타 색소폰 악기 연주 붓글씨 그림 등 어느 하나 못하는 것이 없는 “팔방미인”이라 부르는데 주저함이 전혀 없었다.
중학 시절 체육 수업 시간 중 선생님의 지명을 받아 부르던 나훈아의 ‘고향역’ 은 이미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노래는 일찍이 인기 직업 가수의 대열에 합류했다. 고교 시절엔 기타 연주의 달인이 되었다. 중년을 넘기자 색소폰 연주까지 쉽게 접수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양손으로 글씨를 자유자재로 구현했다. 붓글씨도 자신의 전공의 범주에 들여놓은 지 오래였다.
친구는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는 소방공무원이란 막중한 중책을 맡았다. 말단부터 시작했다. 특유의 성실함과 업무능력에다 친화력까지 모두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소방 공무원의 꽃이라는 ‘소방서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인문학적 소양도 풍부했다. 이른바 ‘감성경영“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조직의 훌륭한 리더가 되었다. 나랏일을 챙기느라 눈코 뜰 새가 없음에도 신학대학원을 거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주경야독의 전형이었다. 본격적인 목회자라는 고난의 길로 기꺼이 들어섰다. 이른바 ‘소방관 목사’라는 국내는 물론 지구촌 전체를 둘러보아도 전무후무한 타이틀을 얻었다.
자신에게 맡겨진 미션을 빈틈없이 해내느라 보통 사람보다 사생활에 할애할 여유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죽마고우 고향 친구들의 오랜 모임인 통합 동창회장 자리를 세 번이나 마다하지 않았다. 군대조직에선 ‘위수지역 이탈 금지’라는 것이 있다. 이 소방공무원의 특성상 이에도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관할구역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통합 동창회 모임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동창 모임에 나서는 친구들의 외연을 조금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래서 매년 두 번이나 돌아오는 1박 2일 정기 모임에 모습을 드러내는 친구들의 수는 약진을 거듭했다. 동창회란 존재도 모르던 친구들, 자주 볼 수 없었던 친구들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명실상부한 모두의 동창회를 만들어 내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소외되거나 어려운 남들을 한 번 더 살피는 친구였다.
친구에게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큰 신세를 진적이 있다. 금융기관에 몸 담았던 시절 나는 ‘신용카드 발급 권유’ 영업에 매진해야 했다. 여러 번에 걸친 부탁에도 친구는 싫은 내색이 전혀 없었다. 신청서 뭉텅이를 내게 자주 안겨주었다. 공무원인 동료 직원 부하나 상급 간부 가리지 않고 ,상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결코 녹록지 않은 미션이었다. 내 개인적인 실적을 쌓자고 친구를 여러 번 괴롭혔던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염치없는 나를 용서하시게나.
“취토여!” “닭이여!”
어느 저명한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듯이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날이 밝았다. 육중한 위용을 자랑하는 포크 레인이 이른 아침부터 친구의 ‘천년 집’을 꾸미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친구의 시야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모두 제거해야 했다. 하늘 높이 솟은 제법 굵은 소나무를 찍어 눌러 쓰러뜨리고 뿌리째 들어내느라 온 힘을 다 쏟아부었다.
어제 인천의 빈소를 들려 날밤을 세웠음에도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마저 배웅하기 위해 이곳 선산의 한 자락에 모두 모여들었다. 서울부산 대구 청주 대전을 출발한 친구들도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가 회장을 맡고 있는 청년회에서 시역 등 궂은 일은 모두 감당하기로 자청했다. 뜻밖인 제자의 부음을 전해 들은 은사님도 멀리 부산에서 몸소 한 걸음에 달려왔다.
이윽고 하관과 유족들의 헌토가 끝났다. 현장에 모인 우리들은 친구가 편히 누울 수 있도록 곱디 고운 흙을 더 보태고 이를 다지기를 반복하는 의식을 온전히 야무지게 하기로 했다. 장례 일정을 총괄하는 호상을 맡은 친구가 먼저 나섰다.
“친구가 선창 하시게, 구성지게 한번 해봐.” “닭이여! 닭이여!”
조각 제품처럼 땅의 높낮이, 깊이를 정교하게 맞추었다. 고운 흙으로 다진 직사각형 네 변의
안쪽엔 들어선 친구들은 자신의 몸통과 시선을
바깥으로 향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박자를 맞추어 돌며 울음과 후렴이 반반인 “닭이여!”를 연신 외쳤다. 우리는 3회에 걸쳐 이 의식을 하기로 했다. 두 번째 “취토여”와 “닭이여!”를 이어가던 순간이었다. 호상의 단말마 같은 절규가 잇달았다. 지켜보던 모든 이의 고막을 찢었다. 순식간에 바로 옆의 친구와 와락 부둥켜안고 오열을 했다. 현장은 곧 눈물바다가 되었다.
“상훈아, 왜 내가 너에게 이렇게 절을 해야 되는데? 이 자식아 말 좀 해봐, 잘 가라. 이놈아”
우리는 이순의 문턱을 넘었다. 그럼에도 친구가 벌써 먼 길을 나선 것은 분명히 요절이다. “천재는 단명하고 요절한다.”는 말을 증명해 보이려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으리라. 그 많은 재능을 더 보여주고 길을 나섰어도 그리 늦지 않을 텐데, 너무나 안타깝다. ‘리베로’ ‘슈퍼스타’ ‘올라운드 플레이어’란 말이 결코 아깝지 않은 친구였다. 압도적으로 많은 친구들의 진정성 있는 절규, 울음과 배웅을 받았다. 그래서 마지막 나서는 친구의 길은 덜 외로웠으리라 나름 스스로 위로해 본다.
삼가 목사 친구 상훈이의 명복을 빈다. 부디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 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