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단 강 상류를 가로지르는 멋진 다리가 놓이고 진입로도 확장ㆍ포장되어 쉽게 접근이 가능했다. 종래엔 TV 프로그램에 오지마을로 소개되었다. 나룻배 신세를 지지 않고는 건널 수 없고 조선 토종 얼룩빼기 황소가 끄는 달구지에 땔감을 수북이 실어 나르는 장면이 더욱 어울리던 곳이었다.
이젠 이곳을 자주 찾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여러 동의 숙소용 건물이 들어섰다. 바비큐 시설은 기본이었다. 근처 개울엔 곳곳에 여러 개의 평상도 준비되었다. 이번 늦가을 모임은 이곳 장선리로 낙점이 되었다. 우리 선후배들은 이미 이곳을 제법 다녀간 것으로 보였다.
회장 상훈이가 한 명의 친구라도 더 "모디키려" 무던 애를 쓰고 있다는 걸 모르는 회원은 없었다. 동안 동기회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순신규(?)는 물론 띄엄띄엄 출석을 하는 이탈 고객(?)을 ‘야지리’ 수소문하여 대열에 합류시키는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다. 이른바 발로 뛰는 영업(?)에 대한 일정한 수준의 보상을 받았다.
바비큐 구이로 맛있는 만찬을 마치고 드디어 가무 버전으로 넘어갔다. 첫 번째 오프닝으로 비단강 건너가 출생지인 문호가 무대에 올랐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열창했다. 아직 인공적인 물을 들이지 않은 반 백의 머리카락을 날리며 구성지게 뽑아냈다. 이제 중년 장년을 넘어가는 연식에다 노랫말의 마디마디가 폐부에 와 닿았다. 원곡의 수준을 훨씬 넘는 감흥을 모든 친구에게 아낌없이 선사했다.
방선리를 본적으로 둔 친구 덕성이도 오늘은 처음부터 얼굴을 보이는데 좀 이례적이었다. 평소 각종 경조사는 물론 동기 모임을 나 몰라라 했는데 좀 의아스럽긴 했다. 한 사람이라도 참석하는 회원을 늘리고자 하는 것이 회장단의 방침이지만 공식적인 연락은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친구 덕성이는 대단한 애주가이지만 워낙 주사가 심하다 보니 친구 중 만나자고 먼저 나서는 이는 드물었다. 이런 덕성이가 모임에 참여하면 다른 친구들이 감당하기에 ‘감프니까’ 애써 먼저 부르지는 말자는 게 중론이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자신의 두 발로 걸어 행사장에 당당히 입장한 마당에 본인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라고 강제할 권한은 회장단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제 만찬과 가무 타임 등 공식 여흥이 마감되었다.
이어 삼사오오 자연스럽게 무리를 지어 술자리나 고스톱판을 이어갔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 동기들은 덕성이와 합석을 꺼렸다. 잠자리에 들고자 덕성이와 다른 공간으로 슬며시 도망을 치면 어느새 귀신같이 눈 채를 채고선 끈질기게 궤적을 뒤쫓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친구들이 본인을 피하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만의 믿을만한 휴대용 레이더기기라도 작동 중인 거로 보였다. 술자리나 고스톱판을 덕성이와 떨어진 은밀한 구역으로 옮겨 이어가려 하는 동기들은 한꺼번이 아닌 찔끔찔끔 이동했다. 게다가 잠자리에 드는 걸로 위장하기 위해 소등을 하는데도 끈질기게 탐지하여 출입문을 두드렸다.
이러한 한밤중에 벌어진 여러 번의 숨바꼭질 끝에 친구 덕성이는 밤새 마신 술기운을 견디지 못하였는지 더 이상의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 아침이 오기 전 이른 새벽에 모임 장소를 표표히 떠났다. 친구들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술자리든 고스톱 놀이 판이든 덕성이가 합류하면 심한 주사로 오래지 않아 파장이 되는 사태를 여러 번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국민 총무 정수와 막무가내 영호는 오늘 모임 장소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별로 우호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종래 동기 전체 단톡방에 밤늦게 상호 간 비판적인 글을 주고받은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였다. 서로 다툼이 있는 사건의 실체를 이미 동기들 대부분이 훤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 동기 모임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정수는 통 크게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본인의 입장에선 커다란 잘못이 없어 보이는데도 ‘공개사과’란 쉽지 않은 요구까지 받아들였다. 지근거리에서 경과를 지켜보던 나는 혹시 몸싸움이나 그 이상을 넘어 커다란 불상사로 번질 것을 우려하여 여자 동기와 같이 오분 대기조를 방불케 하는 초긴장 모두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였다. 다행히 최악의 사태로 발전되지 않았다. 친구들은 또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월영산 천 번째 모임의 만찬은 조직생활의 커다란 경사 중 하나로 꼽히는 승진을 최근에 이룬 경수가 한턱 쏘기로 했다. 크고 작은 친구들 모임마다 이런 좋은 일이 이어지기를 모두들 바라는 건 어쩌면 친구로선 당연했다. 만찬을 흡족하게 즐긴 후 평소 모임에 얼굴을 거의 내밀지 않는 친구 규호의 여동생이 꾸려가고 있는 음식점 겸 숙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관공서에 정식으로 행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노래방 기기를 들여놓고선 영업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친구들에겐 이런 사정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반가운 고향 동기들을 만나 회포를 풀기 위해선 음주 가무는 빠질 수가 없는 필수 코스였다. 규호는 일반 음식점이나 주점 대비 반 토막에도 미치지 못하는 용량의 병맥주를 식탁에 마구 올렸다. 속이 들여다 보이는 유리 글라스의 바닥을 보기에는 제법 여유가 있음에도 친구 규호는 연신 오프너를 들이댔다.
“어이 친구, 이러면 아니 되지, 이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친구가 아는 곳이라 이리 찾은 것은 맞는데 그래도 진도를 보아가면서 진행을 해야지, 친구 사이에 바가지를 씌우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바로 코앞의 나는 정색을 하고 한마디 건네며 제동을 걸었다. 규호는 순간 당황했고 머쓱해하며 나의 뜻을 즉각 받아들였다. 그나마 다행이고 나도 더 이상 코멘트를 하지 않기로 했다.
관내 면소재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부락인 이곳의 동기도 예닐곱이나 되지만 모임에 얼굴을 내미는 친구는 행사 때마다 눈을 비비고 보아도 거의 없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음주와 가무 실력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한창 자랑하던 차에 갑자기 입구 쪽이 소란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근무복인 유니폼을 감추기에 충분한 사이즈의 점퍼를 걸쳐 완벽한 위장을 한 경찰이 출동했다. 친구들 무리의 한가운데로 곧장 들이닥쳐선 점퍼 한편을 여러 번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권력기관의 최첨병 임을 자랑했다. 약간 빈정대는 표정도 섞었다.
정상적인 노래방 허가를 받지 않고 유사 불법 영업을 한다고 인근 경쟁업소로부터 신고가 접수되어 자신들로선 문제를 삼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주인의 진술서 등을 받고 발길을 돌렸는데 그 후 부담스러운 레벨의 과태료를 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속은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관존민비’라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그게 무어 엄청난 사건이라고 위장까지 하고 출동을 했다. 쥐꼬리만 한 권력에 휘둘리다 보면 민초들의 생업ㆍ생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는 것은 분명했다.
오늘은 월영산에서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이번엔 회장단이 미리 섭외한 사설 밴드를 동원했다. 항상 그래 왔듯이 ‘부어라 마셔라 불러라 그리고 몸부림쳐라’가 정해진 수순이었다.
나는 오지게 식중독에 걸렸다. 식은땀에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오한이 나는 등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식사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널찍한 방 한구석에서 두꺼운 담요와 이불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자주 화장실을 오가고 고막을 찢을 정도의 밴드 연주와 노랫소리, 중간 쉬어가는 타임의 친구들의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에 기본적인 취침시간의 확보는 언감생심이었다.
새벽 늦게서야 불편한 속을 달래려 평소 나름 이무럽다 생각되는 여자 동기 미영이에게 긴급을 알렸다. 항상 우리 동기 모임의 단골 메뉴이자 한계이기도 한 ‘고딩이국’을 데워 그나마 응급처치를 받았다. 이런 막후의 일을 친구는 전체 동기들이 모인 자리에서 "창성이, 저 녀석이 새벽부터 톡을 해대는 바람에 "어쩌고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나는 그 정도 창피야 충분히 감수할 용의가 있었다.
한반도의 저 아래쪽 우리나라 제1의 항구도시에서 출발한 친구들은 모임 개시 시각에 맞추기란 만만치 않았다. 제법 흥이 달아오른 시각에야 도착했다. 이에 ‘지속적으로 부르 자파’와 밴드의 예약 시간이 다 되었다는 사정을 이유로 ‘예서 마무리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친구들 간 약간의 마찰도 생겼다. 차기 회장으로 내정되어 모임의 살림살이 등을 인수받기로 한 친구의 공식적인 소개가 유야무야 되었다. 그래서 또 한 번의 작은 마찰도 뒤따랐다. 평소 이 동기 모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친구들을 발굴하여 많은 멤버를 모디키다보디 단일 모임 최대 규모라는 보기 드문 기록을 세웠다. 이는 전적으로 회장단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였다.
둘째 날 아침식사 후 인근 비단 강변을 따라 단장된 둘레길을 찾아 나섰다. 우리 고향의 아름다운 풍광은 어느 곳에 견주어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 몇 해 전 TV 드라마로 먼저 소문이 나고 나중엔 영화로 버전 업되었다. 한류 열풍에 커다란 기여를 한 바 있는 대장금 여주인공이 거문고를 연주하던 장면을 촬영한 곳이라고 했다. 이런 사실은 친구로부터 듣고 늦게서야 알았다.
상큼하고 약간 시큼한 향이 일품인 모과나무가 숙소의 인근에 지천으로 널렸다. 볼륨이 제법 되고 상처라곤 찾아볼 수 없으며 반질반질한 윤이 나는 최상품 모과 열매도 너뎃개 씩 챙기는 뜻밖의 수확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