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는 특권계층

by 그루터기

최근 나는 고혈압과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다. 내 주요 고객에게 사무실 인근 내과를 소개받았다. 그런데 이곳 박원장은 독특했다. 보통 한 번에 2개월분이 아닌 1개월분 단위 약 처방을 고집했다. 더 자주 체킹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였다. 아주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병원에 들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신들이 건강보험 공단에 청구할 수 있는 급여액이 많아진다는 것은 이제 웬만한 상식이다. 그럼에도 그 정도야 감수하기로 했다.


고혈압에 이어 다른 부분도 검사나 치료의 범위를 점차 넓혀갔다. 비뇨기과 병원에서 이미 전립선 비대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자 박원장은 이곳에서도 해당 검사를 할 수 있다며 반색을 했다. 나는 기끼이 검사에 응했다.

“이 정도면 70대 노인네 수준입니다. 요즘 전립선암이 널려 있습니다. 문제는 수치가 이 정도에서 머물지 않고 어느 날 갑자가 퀀텀 점프를 합니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입니다”

아직 70대는 나에겐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그런 나에게 공갈을 하거나 공포감을 조성했다. 일종의 ‘공포 마케팅’을 들이댄 것이었다.

나는 얼마 전 고교 절친 한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20 내지 30명의 고혈압, 당뇨환자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내과 의사는 평생 먹고살 수 있다.”

좀 과장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같은 병원을 찾는 환자는 곧 병원의 안정적인 수익 기반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금융기관으로 말하자면 수익성이 높은 예금의 평잔을 계속 유지시켜 주는 충성 고객과 다름이 아니었다.


이 박원장은 이미 나를 공포 마케팅 진료 범주에 끌어들인 것이었다. 내 연령대에 우리 회사 정도 다니는 사람이면 지인이나 학교 선후배 중 의사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를 너무 무시하고 돈이 되는 검사나 처방이면 무엇이든 권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내과 병원이 이곳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에 다른 병원을 찾기로 결정했다.


오늘도 박원장은 늘 그랬듯이 혈압계를 들이댔다.

“아니고요. 오늘은 혈압을 재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다른 병원으로 옮길 테니 그동안 진료기록과 소견서를 부탁드립니다.”

순간 박원장은 몹시 당황했다. 얼굴도 상기되었다.

“그동안 혹시 제가 서운하게 해 드린 것이 있나요?”

“다른 사정이 있어 아는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좀 충직하고 멍청한 평생 단골환자를 한 명 잃어버리니 큰 손실이라는 것이 얼굴 표정에서 충분히 읽혔다.


새로이 찾은 병원 객장엔 송곳을 꽂을 틈도 없이 환자들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각종 표창패와 감사

패가 진을 치고 있었다. 이전의 박원장과 가장 다른 점이 금새 포착되었다. 이곳의 최원장은 일단 매우 친절했다.

“아이고 그래 그동안 별일 없이 잘 지내셨지요?”


일단 얼굴을 맞댄 환자와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모습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 만약에 가슴에 심한 통증이 오면 저한테 즉시 달려 오셔야 합니다.”

‘공포 마케팅’이 아니라 ‘감성 마케팅’이 이곳 최원장의 주특기였다. 결국은 이렇게 응대하면 이곳을 찾는 새로운 환자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은 뻔했다. 바로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환자의 기반을 장기적으로 늘리는 기법을 최원장은 익히 알고 있었다.


“진단서나 소견서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별로 큰 병도 아닌데요. 그저 지금 드시고 계신 혈압약을 적어드리겠습니다. 혈압이 잘 통제되고 있습니다.”

최근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아 진료기록 등을 달라고 요구한 나에게 돌아온 답변이었다.


자신의 본연의 영역인 진료는 그다음이었다. 먼저 이웃사촌이나 친인척처럼 환자를 대했다. 병원에 들어선 환자에게 편하고 친근한 상태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인성교육이 제대로 된 것으로 보였다. 박원장과 최원장은 같은 대학 동문이니 진료 수준이나 의학 지식 등에서 큰 차이는 없을듯했다. 박원장이 나에게 보여준 공포 마케팅 진료의 그림자를 이곳 최원장에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이유가 있었다. 대기 시간이 다른 곳보다 두 세배 길어져도 불평이나 불만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수가가 높은 항목의 검사를 권유하거나 환자의 상태를 부풀려 겁을 주지 않았다. 나는 이번엔 정말 인성이 제대로 된 좋은 의사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계층상승 사다리 역할을 했던 사법시험이 폐지되었다. 그 대신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다. 사법시험 합격자의 약 두배로 로스쿨 정원을 책정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신분이 수직 상승했다. 합격자의 희소성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이젠 달라졌다. 최근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취업률은 초라하다.


얼마 전 코로나19 감염증의 정부 방역대책 등에 반발하여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일부 의사들은 진료를 거부하고 의대생은 국가고시 응시 거부라는 집단행동까지 감행했다. 참으로 개탄스런 운 일이다. 의과대학 정원이 아직 일정 수준에 미달된다. 이는 의대 정원이 충분하지 않아 의사란 전문 직업이 아직도 상당히 희소가치가 있다는 반증이다. 이를 무기로 국민의 생명을 담보 잡는 집단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주식시장에서 가장 우선하는 재료는 수급이다. 기업의 실적이 양호해야 주가가 오르지만 그보다 유동성이 풍부하면 주가는 오르게 되어 있다. 돈의 힘으로 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의 펀더멘털 대비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주식의 공급물량을 늘리면 주가는 하락한다. 희소성이 떨어지게 때문이다.


의사의 수급 문제도 마찬가지다. OECD 국가 대비 의대 정원은 우리나라가 결코 많지 않다. 사법시험 대신 로스쿨을 도입했듯이 현재의 의대 정원을 두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이리하여 그저 의사라는 신분만으로 과대평가받는 지금의 현실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미 특권계급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 왜곡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함이 바람직해 보인다.

늘어나는 정원의 대부분을 지방대학에 배정하면 지역균형 발전에도 혁혁한 공헌이 기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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