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예비 영업점장 연수제도

by 그루터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송 부장, 어디든지 손을 좀 써야겠어.”

“왜요? 송 부장님, 중앙지점 최부장님도 영업을 잘하거든요? 송 부장님, 열 받으셨어요?”

나는 제2차 예비 영업점장 연수대상자 명단에 이번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점장은 위로성 립서비스를 했다. 철부지인지 꼴통인지 구분이 쉽지 않은 김대리는 이번 명단에 포함된 중앙지점의 최부장을 칭찬했다. 이어 나를 졸졸 따라나서며 염장을 질렀다.


“우리는 자료만 넘겨주었지, 말 그대로 대서소 역할만 했어. 선임 부장이 두 세명이나 있는 점포도 연공서열은 아예 무시해버렸지. 한참 아래 차장이 대상자로 선정된 경우도 많아.”

평소 소통이 잘되는 인력담당 부서장이 나에게 귀뜸을 했다. 이번 우리 지점에선 예비 영업점장 연수 대상자 명단에 자신의 선임 부장 3명을 보기 좋게 제치고 가장 막내인 박 부장만이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렸다. 박 부장은 지점장의 대학 후배이고 점포 내 실세로 사실상 실세 2인자 행세를 한지 오래였다.


오래전 고위공직자 출신의 낙하산 사장 재직 시절이었다. 이른바 ‘지식인 제도’의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벤트의 후속 편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했다. 도대체 이 조직은 언제까지 이런 이벤트성 행사를 이어갈지 알 수가 없었다. 참으로 비애를 느꼈다. 기행은 이어졌다. 이번 연수대상자 중 지방 근무자를 본부 임원진은 해당 점포장에게 한마디의 귀띔도 없이 따로 불러 모아 면담도 했다. 첩보기관원의 은밀한 비밀 접선을 연상케 했다. 은행권 금융그룹에 편입된 지 긴 세월이 흐르지 않았다. 은행에서 이미 시행 중이라는 이유로 이 제도를 같은 계열사에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이 제도의 본래 숨은 의도를 알아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종래 연공서열 제도를 허물어 버린다거나 실적 중심 제도로 전환, 정체된 회사 조직에 일시적인 충격을 주어 직원 간 치열한 경쟁을 유도한다는 것 등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


종래 직원의 인사권은 인사 담당부서의 몫이었다. 그런데 우리 회사가 금융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후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다. 영업총괄 본부에서 이 고유한 인사권마저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다. 우리 지점 박 부장이 이 명단에 오르리란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지점장이 자신의 대학 직속 후배라며 너무나 일방적으로 끼고도는 것으로 보아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른 점포의 대상자들 면모를 볼 때 이번 연수 대상자 선발은 도저히 수긍이 가지 않았다.


나는 오랜 기간의 수험생활을 보낸 후 대학원까지 마치고 회사에 늦게서야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다 보니 지진아가 된 셈이었다. 게다가 한 번은 직속 상사의 업무상 횡령에 연루되어 징계를 받은 전력도 있었다. 승급과 승진 등 인사에서 계속 뒤로 밀린다는 작은 열등의식도 있었다. 때론 초초함도 따랐다. 그래도 이 회사에서 최소한 점포장은 지내고 직장생활을 마감해야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소박한 꿈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회사가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이를 접을 운명인가도 생각했다. 이후 이 예비 영업점장 연수가 몇 차례 더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끝내 이 연수의 수혜자가 되지 못했다.


제법 많은 세월이 흘렀다. 회사의 인사발령 시즌마다 나는 나름 그 깊은 의도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습관이 자연스레 생겼다. 이 예비 영업점장 연수 과정을 거친 직원들 중 발탁인사가 더러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 연수의 수료자라고 해서 인사발령 시 특히 우대를 받았거나 이른 시일 내에 지점장 자리를 꿰차는 이변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 후 은행과 우리 증권회사 간의 콜라보 영업에 따른 시너지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새로이 도입한 복합점포장의 공모가 있었다. 대학 선후배라는 특수관계를 내세워 지점장이 박 부장을 노골적으로 밀어주고 챙기는 기행적인 행태는 그칠 줄을 몰랐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내가 벗어나는 길은 내가 직접 점포장으로 나서는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공모에 응했고 당당히 어엿한 금융기관 지배인인 지점장 자리에 올랐다. 나는 현 점포에서 제법 오랜 기간 근무를 이어왔다. 고액 거래 고객이 핵심인 영업기반도 탄탄했다. 지점장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무서울 것이 없었던 박 부장은 이번 지점장 공모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결국 이 예비 영업점장 연수제도는 바람처럼 한 번 스쳐 지나가는 ‘이벤트성 행사’ 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나는 이번에 내가 근무했던 지점 인근에 신설되는 복합점포장이 되었다. 그러니 지점장과 박 부장은 나에게 영업기반을 빼앗길 까 보아 전전긍긍했다. 예비 영업점장 연수를 거치지 않고 나는 복합점포장이 되었다. 지점장과 박 부장에게 그간 받은 푸대접을 몇 배로 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송 부장님 복합점포장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점포 개설 후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정말 독특한 캐릭터임을 자랑하는 김대리의 축하 메일이었다. 그저 ‘지점장’으로 부르면 될 것을 굳이 ‘복합점포장’으로 칭하였다. 그렇다고 이를 내가 나서서 직접 바로 잡아 줄 자신은 없었다. 지금까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며 비슷한 사례를 충분히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지점 김대리는 더욱 그러했다.


그 이후 약 5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새로이 사장이 부임했다. 우리 회사의 종합자산관리자는 은행권의 VIP PB에 해당하는 역할을 모두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상시 구조조정의 역할’이라는 숨은 발톱을 감추고 버전이 업그레이드된 제도가 새로이 도입되었다. 비교적 나이가 어린 아래 직급 여직원들을 파격적으로 우대하는 ‘VIP PB 제도’가 그것이었다. 일방적으로 자산(고객)을 몰아주며 절대 원거리 근무지로 이동을 시키지 않는 각종 특혜 덩어리가 탄생했다. 내가 이 회사를 떠나는 날까지 크고 작은 이벤트성 행사나 제도는 계속 끊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만약 대법원 판사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오른다면 6개월 석사장교 제도의 위헌 결정을 반드시 관철할 것이다.”

오래전 어는 중견 법관의 하소연이 떠올랐다.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 제도를 지목했다. 이는 대표적인 5공 비리의 한 꼭지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비교적 낮은 연령대의 아래 직급 여직원을 기형적으로 우대하는 ‘VIP PB 제도’를 똑같은 반열에 올리고 싶다. 이는 페미니즘을 넘어 남녀 역차별적인 제도의 전형이라고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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