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 기내기

by 그루터기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외부요건으로 衣 食 住 세 가지를 꼽는다. 이중 어느 것 하나 덜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이 3가지를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인간다운 생활을 할 최소한의 여건이 된다. ‘의식이 족해야 예절은 안다’라는 말은 우리 삶의 선결조건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루 세끼가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정규 식사 외에 새참이나 간식이란 것도 있고 가벼운 주전부리나 음료수나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음식물을 일정한 기준과 조건을 정하고 ‘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베팅을 하는 "내기"를 한다. 혹자는 이런 내기에 대해 몹쓸 짓이라고 혹평 내지 폄훼를 하기도 한다. 일용할 소중한 음식을 홀대해서는 아니 된다는 의미인데 일리는 있다.


나는 음식물 먹기 내기하는 걸 주위에서 더러 보아 왔고 참여자 또는 구경꾼이 되기도 했다. 이런 내기란 게 건강을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한 크게 문제를 삼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때 국민 간식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밀, 보리가 주원료이고 얇은 직육면체 모양에 옅은 베이지 색상이다. 가운데 부분엔 송곳에 몇 번 찔린 것 같은 흔적이 있다. 종이로 된 밀가루 포대와 유사하게 마분지를 몇 겹 포갰다. 입구 부분을 이 양쪽 겹겹 한 종이를 한데 모아 독특하게 마감 처리한 "봉지"(봉지)에 담겼다.이름하여 ‘건빵’

이다.


군대를 경험한 남자들은 일반 제품에 ‘별사탕’을 추가한 특제품을 먹은 경험이 있었다. 어떤 목적으로 특정한 효능을 발휘하리라고 믿고 그렇게 했다. 약간의 단 맛을 제외하곤 다른 과자나 주전부리 대비 특별히 끌리는 차별성이 없었다. 요즘 어린아이는 물론 청소년을 포함한 젊은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소외된 주전부리이다. 추억으로 시식을 하거나 가끔 있는 기아 체험장에서나 구경이 겨우 가능하다.


이 건빵을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1분에 10개를 완벽하게 먹을 수 있느냐에 베팅을 했다. ‘사이즈도 크지 않고 그까지 것 10개 정도쯤이야’라고 사람들은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매치가 성사된다. 나는 직접 당사자가 아닌 곁에서 관람을 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구경꾼 역할을 여러 번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먹을 수 있다(可) 먹을 수없다(否)의 두 가지 선택지 중 이 종목의 내기가 생긴 이래 첫 번째 선택지가 이긴 경우를 한 번도 보지를 못했다.


식성이 보통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나게 식사량이 10배 이상이나 되는 구기 선수나 권투 레슬링 씨름, 스모 선수 등의 내기를 안타깝게 지켜볼 수 없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이 내기가 아득한 예전부터 있었다 해도 단군 이래 첫 번째 결과가 나온 사례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궁금하신 분들께는 한번 직접 체험을 권유해본다.


내 주위엔 운동선수들이 이 내기에 참여하기를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향후에도 첫 번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건빵 먹는 내기를 나는 현장의 한 복판에서 여러 번 지켜보았다. 물을 일체 마시지 않고 1분 내에 10개를 먹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참여자는 처음 5~6개 정도까지는 호기롭게 진도를 제법 잘 뽑는다. 그런데 그 이후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드디어 제동이 걸린다. 물을 마실 수 없다는 내기 규칙 때문에 물의 기능을 자신의 입 안의 침으로 대체해야 한다. 건빵 5~6개를 해결하다 보면 이미 입안의 침이 바닥이 난다. 추가로 침을 자체 생산하여 지속적으로 동원해야 하나 이게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진도는 7~8 개 선에서 멈추고 제한 시간 1분을 모두 써버렸다. 소기의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주 드물게 의욕이 앞선 나머지 10번째 건빵 알까지 입안에 넣는 데 성공하여 상대를 잠시 긴장시키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이 때도 입안에 가득 채운 건빵을 모두 해결하기에는 침이 부족했다. 최종 목표 달성에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나와 같은 어린 초등생이 아닌 18세 전후 청소년이나 20대 건장한 청년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코 이벽을 넘을 수 없었다.


건빵을 잘게 씹어 삼키는 데는 일정한 양의 침이 필요한데 추가로 생성(조달)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더구나 1분이라는 시간 제약 때문에 더욱 어렵다. 물의 도움 없이 찐 계란을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먹는 경우와 유사하게 목이 막히는 것을 호소하다가 결국 두 손을 들고야 만다.


내가 살던 면소재지에서 읍내를 하루에 서너 번 왕복하던 시외버스가 정차하고 대기하던 버스정류장은 농협창고 우측에 있었다. 버스정류장 뒤편 오른쪽에 보뚝의 언덕으로 경계한 아담한 관공서가 있었다. 사방 울타리 중 절반 이상이 그 울창한 탱자나무 군락이 일품인 토지개량 조합이 있었다. 입구 우측 울타리에 바짝 붙인 곳에 당시 상당히 획기적인 건축물이 동네 최초로 등장했다. 땅바닥을 돋운 집터에 나무 무늬가 고스란히 드러난 목재로 성냥갑처럼 기다란 송판 대기 등을 끼우고 붙여 만든 조립식 상점인 풀빵 집이다.


일본에서 손으로 꼽을 정도인 ‘명치대학’을 중퇴하였다고 알려졌다. ‘호주기’라는 별칭도 얻은 60대 초중반 되는 주인장과 뛰어난 노래 실력이 자랑거리이고 흥도 많은 50대 초중반 안주인이 가게를 꾸려갔다.


단가 1 윈짜리 풀빵이 주력 상품이었고 나중엔 호떡도 메뉴에 추가되었다. 학창 시절 배운 것을 사회에 나와서 제대로 못다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아버지는 이 가게 주인장을 늘 지목하곤 했다. 이 가게 안주인은 일 년에 두세 번 동네 예능 잔치로 벌어지는 ‘콩쿠르대회’ 에선 보통 엔트리 1번으로 무대에 올랐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바람난 처녀’를 현란한 율동을 곁들인 열창에 구경꾼들도 ‘앵두나무 츠자(처녀)’를 연호했다.


상대적으로 장사 수완이 좋은 안주인은 당시 나팔바지로 신작로는 물론 동네 뒷골목까지 쓸고 다니던 건달인 우리 6년 선배들에게 그럴듯한 내기를 제안했다. 자리를 옮기지 않고 가게 현장에서 풀빵 100개를 먹으면 추가 50개는 ‘개평(서비스)’으로 주겠노라는 게 골자였다. 건빵 10개 먹는 내기와는 달리 물과 음료수는 제약 없이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매우 솔깃한 제안에 귀를 기울이던 무리 중 한 선배는 입 맛을 다시며 쾌히 승낙을 했다. 공짜 50개 풀 팡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100개를 못다 먹는 경우엔 서비스 50개는 당연히 날아가고 먹은 풀빵의 대금을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만약 100개의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에 추가 50개는 서비스로 제공하되 선수가 해치운 100개 값은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이 선배들은 고교 2년생이었다. 18세 원기 왕성한 절정기의 청소년이었다. 덩치 체력 식성 어느 하나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선배는 중간중간 물도 들이켜고 약간의 휴식도 취하며 때론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한숨도 내쉬며 천신만고 끝에 목표 치인 100개 달성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처음 풀빵 10개와 마지막 그것의 맛(효용)은 전혀 다르다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결론은 뻔했다. 중반(반환점)을 지나 목구멍 안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풀빵은 과연 무슨 맛이었을까. 선배는 드디어 승자가 되고 챔피언의 트로피에 맞먹는 부상인 자그마치 풀빵 50개를 가슴에 한아름 꼭 껴안는 가문의 영광을 누렸다.

내기에 졌음에도 풀빵 100개 대금 100원을 안주인은 챙겼다.

그럼 여기서 선배와 안주인 중 내기 게임에서 승자는 누구 일가. 안주인은 풀빵 150개를 바겐 세일하였지만 짧은 시간에 엄청난 매출을 올렸다.


선배는 10개 정도 풀빵을 맛있게 먹으면 될 것을 맛이 많이 떨어지거나 아예 아무 맛도 없는 그 많은 양의 풀빵을 독립운동하듯이 의무감으로 100개나 먹어 치웠다. 그도 모자라 쳐다보기도 싫은 풀빵을 50개도 추가로 떠안았다.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풀빵을 할인하여 판 안주인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선배는 안주인의 뛰어난 수완에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 선배는 풀빵 집 안주인에게 낚였다. 처음엔 ‘꿀빵’ =>‘풀빵’=> 이름에 충실한 ‘풀내만 풀풀 나는 빵’ 이렇게 된 것이었다.


중학 2년 늦여름 내 친구 갑, 을과 병이 포도 1관을 먹을 수 있느냐로 내기를 했다. 학교를 파하고 약 2킬로미터의 가깝지 않은 길을 걸어 포도밭을 찾았다. 갑은 ‘먹을 수 있다’에 을과 병은 ‘불가능하다’에 베팅을 했다. 포도밭 주인장에게 이곳을 찾은 사연을 알렸다. 빙그레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정한 게임을 위해서 요즈음 수산시장에서 생선의 무게를 측정할 때 사용하는 저울에 소쿠리를 올린 후 포도송이를 차근차근 하나씩 채우며 저울 침을 주시했다.


소쿠리 무게를 뺀 포도만의 무게가 1관 (3.75 킬로그램)이 되도록 조심스럽게 미세조정을 했다. 정량의 포도를 모양이 좀 더 깔끔한 플라스틱 용기에 옮겨 담아 참여자에게 건넸다.


드디어 갑이 포도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보통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한 알마다 껍질과 씨를 발라내는 것과 달리 친구 갑은 껍데기채 통째로 연속하여 쉬지 않고 목구멍 안쪽으로 넘겼다.


과연 갑이 선수인 것은 맞는구나 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을과 병의 얼굴에는 불길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갑이 체격 체력 식성이 뛰어나다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중학교 2년생 밖에 되지 않은 친구가 송이당 500그램인 결코 작지 않은 크기의 포도를 거의 8개나 해치울 수 있을까. 을 과 병은 혹시 마루 바닥이나 포도밭 고랑 등에 떨어진 포도알이 있나 두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애초 쟁쟁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팽팽한 경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결국 게임은 시소가 아닌 원사이드로 마감되었다.


아마도 갑이 보통 사람처럼 포도 껍질과 씨를 일일이 뱉어내고 알갱이를 씹어 맛을 즐기는 방법으로 접근했다면 승패가 달라졌을 것이다. 갑은 우월한 신체 여건뿐만 아니라 나름 비장의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어찌 보면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단칸방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는 기철이와 정수는 땅거미가 질 무렵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서며 저녁식사 내기를 했다. 이백 미터 트랙 다섯 바퀴를 도는 달음박질 시합을 하기로 했다. 진 사람이 오늘 저녁식사를 책임지기로 했다.


평소 정수는 달리기에 제법 재능이 있었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친구였다. 이런 사실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 기철이는 먼저 내기를 제안했다. 드디어 달리기는 시작이 되었는데 4바퀴를 돌아서 5바퀴째 들어설 때는 어떤 사연인지 줄곧 기철이가 선두를 유지했다. 격차는 먼 거리가 아닌 거의 일정한 수준이었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정수는 마무리 스퍼트를 했다. 드디어 정수는 기철이를 순식간에 추월하여 결승선을 정수보다 10여 미터나 앞서 통과했다. 정수는 자기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어 4 바퀴까지는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유지했다. 비축해 놓았던 힘을 마지막에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처음부터 승부가 예견될 정도로 역량부터 차이가 났다. 이제 정수가 내기에서 이겼으니 기철이가 저녁식사를 사는 게 마땅했다. 그런데 지구 상에 보기 드문 멋지고 그럴듯한 궤변이 등장했다.


"네 바퀴는 내가 이겼는데 한 바퀴밖에 이기지 못한 걸 가지고 나한테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 ".


중학교 2년 늦여름 나는 친구 경호와 일주일간 주번 임무를 같이 맡았다. 주번은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등교를 하고 친구들이 귀가한 뒤에 늦게까지 남아 청소상태나 교실의 비품 등을 챙기는 일을 했다. 둘 다 무료했든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의기투합이 되어 맹물 마시기 시합을 하기로 했다.


노란색 알루미늄 약 10리터들이 주전자에 맹물을 가득 채웠다. 무게에 비해 용량은 얼마 되지 않는 사기 재질의 투박한 물컵 두 개를 들고 나섰다. 교실 뒤편 구석에 자리한 평소 식수대로 사용하는 경기장으로 전의를 불태우며 맞섰다. 각자 자신의 컵에다 하나 가득 맹물을 채워 교대로 마시기로 했다. 올림픽 인기 종목에 출전한 선수처럼 이를 악물고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상대 친구가 먼저 두 손 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각자 20여 잔을 들이마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구멍에 맹물을 들어붓는 속도가 처음보다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고지가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랠리를 계속하다 보면 생명도 보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승리의 여신은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전혀 그럴 기색을 보이지 않던 친구 경호가 두 손을 들었다.


상품이나 상금은 준비되지 않았다. 선수 모두 남자 전용 작은 볼일 화장실로 내달렸다. 경호는 먼저 분수처럼 맹물을 뿜어댔다. 호기롭게 그 정도 가지고 무얼 그러느냐며 빈정대던 나도 아랫배를 두 손으로 시험 삼아 살짝 눌러보았다. 그러자 나도 방금 전의 친구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아무 거리낌 없이 큰소리로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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