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류장의 흔적> 1화
한밤중의 정류장은 존재 이유가 없다.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의 목적이 무엇인가. 목적을 잃은 것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한밤중의 버스 정류장은 거기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정류장에 왔다. 오늘만 4번을 지나쳐 간 곳.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휴대폰 전등을 켜 정류장을 밝힌다. 노선안내도 주변, 손으로 더듬어 찾는다. 분명 이 부근이었는데. 오늘 오후, 백미러를 통해 반사된 그 여자의 시선은 분명 이곳을 향했었다. 여자의 시선을 상상하며 따라 눈을 옮긴다. 24번 버스 노선을 따라, 한 개 발견했다. 이것은 지난번에 봤던 것이다. 토마토인지 나비인지 알 수 없는 것. 25번 버스 노선을 따라, 또 한 개 보인다. 꽃을 그리다 만 것 같다. 아직 미완성인 것일까. 이 정류장에 다시 오려면 한 달은 넘게 기다려야 할 텐데, 그때까지 그 여자가 기억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흔적은 오늘 하루, 몇 명이나 보았을까.
휴대폰 전등을 끄고, 정류장은 다시 빛을 잃는다.
그 여자는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고 있다. 언제나처럼 큰 원통형의 화구통을 품에 안고 있다. 오늘은 세 정류장 뒤에 내릴 것이다. 지난달 보았을 때, 그 정류장에 있던 것은 바람개비같이 생긴 그림이었다.
그 여자는 매일매일 한 정류장씩 전진한다. 하루에 딱 한 정류장. 종점에서 그날의 두 번째 24번 버스에 타서 그날의 정류장에 내리고, 그 정류장에서 네 번째 24번 버스에 다시 올라 종점에서 다시 내린다. 두 번째 버스와 네 번째 버스 사이의 시간 간격은 4시간이다. 그 4시간 동안 그녀는 그날의 정류장에 흔적을 남긴다. 4시간을 전부 흔적을 남기는 데 활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세 번째 버스를 운전하며 보는 그녀는 그냥, 그냥 정류장에 있다. 정말 그저 존재하고 있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것처럼 존재만 하고 있다. 그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오늘은 꽤 큰 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버스가 시장의 냄새를 품고 있다. 운전석 바로 뒤에 앉은 할머니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 안달이 난 눈치다. 그가 처음 버스 기사가 된 것이 6개월 전인데, 아직도 그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남아 있다. 룸미러를 쳐다보는 순간 할머니와 눈이 마주칠 것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그는 어떻게든 룸미러를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곧 그녀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온다. 그녀를 보는 순간 할머니를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시선을 포기하는 사람이다.
오늘의 정류장에 버스가 멈춰 선다. 그는 그녀가 완전히 내렸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내리기 위한 계단을 밟을 때, 다른 할머니가 오르기 위한 계단을 밟는다. 그의 계획과는 다르게 새로운 할머니가 그를 보고 아는 체를 한다.
“영곡댁 손주~”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익명의 버스기사로 존재할 수 없다. 그는 룸미러를 볼 수밖에 없다. 그녀의 시선을 찾는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미 버스에서 완전히 내려 오늘의 정류장을 살피는 데 열중이다.
익명에서 실명으로의 변화는 그 실명을 아는 사람에게만 효과를 미친다.
“영곡댁 손주 맞았네! 내 기억 안 나나?”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고 대화를 차단할 방법을 찾는다. 뒤이어 따라올 말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러나 그가 버스기사를 넘어 영곡댁 손주로 존재하는 순간, 그 방법은 찾을 수 없다.
“원 없이 운전하고 좋겠네!”
할머니가 자기가 맞았다는 것을 은근히 표하고 있음을, 그를 은근히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모르는 척하는 기술을 지난 6개월 동안 키웠다. 그리고 이럴 때 상대가 원하는 것이 웃음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는 웃음을 보여 준다.
부끄러움은 기억을 전제로 발생한다. 이 순간을 저 사람이 기억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부끄러움은 발생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기억할 때 부끄러움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반대로 상대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부끄러움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에게 이 마을은 부끄러움이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은 그의 과거를 기억한다. 그는 부끄러움을 끊임없이 발생시킴과 동시에 반복한다. 마을에 남은 흔적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그날의 4번째 24번 버스가 운행을 하고 있다. 라디오 속 여자는 실없는 농담을 하고, 그에 맞춰 다른 패널들이 실 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버스를 가득 채운 노인들도 함께 웃음을 터뜨린다. 순간 그들은 함께 웃은 공동체가 된다. 버스를 메우는 라디오 소리는 기사의 존재감을 약간 높인다. 그는 그것이 두렵다.
그때 그 여자의 정류장에 도착한다. 그녀 혼자 정류장에 있다. 공동체가 되어버린 버스 안으로 한 명의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이다. 좌석은 가득 차 있고, 그녀는 운전석과 가까운 곳에 서 손잡이를 잡는다.
다시 한번 라디오 속 진행자가 농담을 하고, 라디오 속 패널들, 버스 안의 노인들이 다 함께 웃는다. 버스 안에 웃고 있지 않은 사람은 그녀와 그 둘 뿐이다. 그 둘의 존재감이 절정에 달하고 특히나, 노인들의 가까이에서 표정을 그대로 내보일 수밖에 없는 그녀에게 시선이 쏠린다. 다 함께 웃고 있는 노인들 속 무표정의 한 어린 여자의 모습은 이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 노인이 그녀를 자연스럽게 해주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차단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어쩌면 아예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창 밖의 무언가가 그녀의 시선을 끌었는지 그녀는 그것을 따라 버스 안에서 걸음을 옮긴다. 그녀의 시선을 버스 안 모든 사람들이 따라간다. 그 시선 끝에, 한 아이가 정류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버스는 그 정류장에 정차하고, 대부분의 노인이 내린다. 그 여자는 정류장이 잘 보이는 좌석에 앉는다. 그는 계속해서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일부로 버스를 천천히 출발시킨다. 정류장이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그녀의 표정이 비로소 그에게 보인다. 그녀는 미소 짓고 있다.
종점까지 다섯 정류장을 지날 동안 버스에는 그와 그녀 단 둘만 있다. 그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그녀를 한심하게 보고 있다. 그녀가 어리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마을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런 직업이 없는 것 같고, 매일매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버스 타는 것과 정류장에 그림 그리는 것으로 보내고 있다. 그는 그녀와 비슷한 나이이지만 그녀와는 다르다. 지금은 마을버스를 운전하고 있지만 이것은 지나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는 경력을 쌓아 가까운 미래에 고속버스를 운전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를 쓰고 있다. 어쨌거나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운전을 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는 의미 없는 환상을 쫓는 사람을 가장 한심하게 생각한다.
과거 자신이 했던 부끄러운 일을 현재 다른 사람이 반복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혐오감이 든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가리기 위해 혐오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녀를 한심하게 보고 있지만 그는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그만두기를 원치 않는다. 그 자신도 그것의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는 매일, 오늘 그녀가 남긴 흔적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어느새 종점에 버스가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둘 사이에는 어떠한 대화도 오고 가지 않았다. 그녀가 내리고, 버스에 홀로 남은 그는 운행일지를 적은 후 차고지로 버스를 향하게 한다.
그에게 이 마을은 자꾸만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헛된 환상을 가졌었다. 그 환상을 이루어줄 확률이 그나마 높은 곳이 바로 이 마을이었다는 것이 그는 원망스럽다. 마을 곳곳에 환상을 쫓던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