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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연주 Nov 19. 2022

나는 네가 왜 이직하려는지 납득이 안가

강남구에 위치한 글로벌 회사 건물 지하 1층, 아담한 커피집에서 마주한 사장님.

7월 초, 매미소리가 맴맴 귓가에 맴돌고, 아스팔트 도로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여름이었다. 건물 지하카페는 고창 수박을 공수해와, 더위에 지친 직장인 손님들의 목을 축일 수박 주스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수박과 얼음과 함께 갈려 얼음이 톡톡 튀는 날카로운 믹서기 소리로 가득했다.  


수수한 옷차림의 캐주얼한 복장 그리고 납작한 남색의 스니커즈를 신고 있는 우리 사장님. 유수의  IT 기업의직원룩을 고수하는 40대 초반의 젊은 사장님과의 마지막 4번째 독대였다. 얼음과 함께 무자비하게 갈린 수박주스를 쭈욱 크게 빨아 드신 사장님은 목을 가다듬으며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생각해봤어?”


“네. 어떨지 모르지만 그냥 가보겠습니다..“


 “ㅇㅇ아, 나는 네가 왜 이직하려는지 납득이 안가.

네가 떠난다고 한 이유를 주말 내내 고민해보았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를 설득시켜봐.


너는 우리 회사의 최고의 top  talent이고 Best  Performer 야. 필요로 하는 서포트는 전방위적으로 다 해줄게. 내가 아무한테나 이렇게 엄지척 해주지 않아.

내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는 거야. 사장인 나도 이 회사 얼마나 다닐지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에는 네가 꼭 필요하고, 오히려 평소에 더 많은 하이라이트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올해 연봉 인상률도 네가 승진한 것도 아닌데 그만큼 올려준 거는 우리 회사 최초이고, 시스템에서 불가한  

rate로 올려준 거야. 그만큼 deserve 하기 때문이고, 인사팀에서 이렇게까지 해도 되냐고 물어봤지만 이렇게 해도 된다고 했어.

나는 이 회사 다니면서 너랑 했던 이야기들, 고민되는 부분들 다 기억하고 있고, 처음 우리 회사에 면접을 보러 왔을 때 했던 이야기들도 다 기억하고 있어.”


그렇게 그는 내가 이 회사에서 진행했던 수많은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읊어주었다. 이렇게까지 일하기 쉽지않고, 특히 오너쉽 없이는 이 모든걸 해내기 쉽지 않은데 정말 respect 한다라는등 끊임없는 칭찬과 애착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이런 칭찬을 받았기에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싶었다.


독대는 1시간 반이나 이어졌다.

회사를 떠나가는 과정은 지독했던 사랑을 끝내기 위한 정리 과정과 흡사했다.


이직하려는 이유는 나도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웠다.다만 같은 팀 팀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난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했고, 최선을 다했어. 이제 할게 남아있지 않아.”


팀원은 크게 웃으며, 네 말이 맞는 것 같아라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제는 그 회사를 떠나왔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이 회사를 떠나고 난 이후에 후회는 없는지


내 대답의 속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없어요.
왜냐면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았거든요.
그래서 후회는 없어요.


마치, 누군가와 뜨거운 연애를 하며,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 한 이후, 연애가 종료된 이후에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거나, 이때 이렇게 할걸..!이라는 아쉬운 마음이 없는 상태와 동일한 느낌이었다.


인생에서 직장생활은 누군가에게는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공간일 수도 있고, 나의 자아실현을 구현할 수 없는 곳이라 치부하며, 내 진짜 삶은 회사를 벗어난 이후에 시작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도 직장생활은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다만,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하나의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당장 움직여 실천해보기도 하며, 혼자 하지 못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결과물을 만들어감에 따라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온 마음을 다했던것이 아닐까.

평범했던 나의 삶이 잠시나마 비범해짐을 느끼며 반짝반짝 빛나게 되는 모습들, 그리고 그 모습을 서로가 바라보며 기뻐하는 파트너들.

어디서도 만날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이 그곳에 함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일을 다 마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그 순간의 삶의 편린마저 소중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제 주니어 시절 즐겁게 같이 일했던 차장님 (현재 이사님)을 만났다.


 “ㅇㅇ아 초심 잃지 않았지?

그래서 지금 열정 온도 몇 도야?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어?”


 “체온보다 살짝 높습니다.”


기가 막히다. 이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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