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_아빠
“아들, 아빠 일하러 나갔다가 올 테니 밥 잘 챙겨 먹거라.”
새벽부터 아빠는 나갈 채비를 하였다. 밖에는 장대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지만, 강 건너에 급히 가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내를 잃은 후로, 홀로 아들을 키우는 집 반찬이라곤 간장과 된장이 다였다.
“응, 아빠…”
잠이 덜 깬 아들이 졸린 목소리로 대답하곤 이불 속으로 다시 웅크려 들어갔다.
“노인장, 배를 타도 됩니까?”
나루터에 급한 손님 서넛이 모여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니 당장은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소.”
뱃사공 노인은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불안하게 올려보았다.
“어르신, 한 번만 건너가면 안 될까요? 아이가 아파 빨리 의사를 만나러 가야 해요.”
열이 펄펄 끓어 보채는 아이를 안은 엄마가 애원했다.
“노인장, 우리도 도울 테니 어디 건너봅시다! 물을 계속 퍼내면 어찌 되지 않겠소.”
아이를 본 다른 손님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강을 건너자고 재촉했다.
터―엉!
나룻배가 강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온 나무토막이 선체를 후려치면서 배가 크게 기울어졌다. 그 충격에 엄마와 아기 모두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 순간, 아빠의 눈앞에는 과거 강에 빠져 끝내 구하지 못했던 아내의 모습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평생을 짓누르던 그 한이 다시 심장을 찔렀다. 오늘 새벽 이불 속에 웅크린 채 졸린 목소리로 자신을 배웅하던 아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아빠는 망설임 없이 강에 몸을 던져 아기 엄마를 향해 헤엄쳐 갔다.
“아, 아기를 먼저!”
그는 먼저 아기를 구하여 배 위로 넘겼다. 그리고 허우적대는 아기 엄마를 향해 다시 헤엄쳤다. 아기 엄마의 머리채를 간신히 붙잡았으나, 그는 더 이상 나룻배로 헤엄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빠는 배가 다가오기를 기다려 아기 엄마를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모든 힘이 다한 그의 몸은 세찬 물살 속으로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비가 그치자, 마을 아저씨가 아빠 소식을 알려주려 집으로 찾아왔다. 아들은 멍하니 눈물도 흘리지 못한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빠… 아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빠를 부르자. 그때야 눈물이 장마처럼 쏟아져 내렸다.
소식을 듣고 온 마을 아주머니 두 명이 수다를 떨었다.
“길동 엄마! 글쎄 물에 빠져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대요.”
“그러게, 땅에라도 묻어야 하는데 안타깝게 되었구려.”
“아참, 그 소문 들었어요?”
“무슨 소문?”
길동 엄마는 궁금하여 되물었다.
“주막배 못 들어봤어요? 소원 들어준다는 그 주막배. 개경에 파다하게 퍼졌다던데.”
“다 헛소문이요, 헛소문. 내 남편한테 들었는데 거짓말이라고 하더이다.”
아주머니들이 떠나자, 아들은 이불에서 뛰쳐나왔다. 아빠를 찾아야 했다. 시신도 남기지 못한 아빠를.
'소원 들어준다는 주막배에 가서… 아빠를 되찾아야 해!'
03_아들
주막배 앞의 사람들 사이로 열 살 정도의 사내아이가 어른들을 비집고 나와 여인을 불렀다.
“잠깐만요. 저를 태워주세요.”
여인이 초롱을 아이 얼굴에 가까이 붙여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다.
“꼬마가 가진 재주는 무엇이니?”
아이가 웃통을 벗고 앙상한 배를 불룩하게 만들었다. 양 손바닥으로 두드리자, 작고 귀여우면서도 구슬픈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땡중의 '술배' 소리보다 훨씬 절박하고 애절했다.
“통! 통! 통! 통통― 통! 아! 아이가, 배를 타고 아빠를 찾아 용궁에 가니. 아! 아이가―”
북소리에 맞춰 앙증맞게 노래를 불렀다.
“어린 게 재주는 가상하나, 그 슬픔의 크기가 아직 배에 오를 정도는 아니구나.”
여인은 차갑게 판결했다.
“자, 배는 떠납니다!”
여인이 초롱을 높이 들었다. 초롱에서 반짝이는 벚꽃 무리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것은 안개 위로 승천하는 환상적인 용의 모습과 같았다.
와―!
구경꾼들이 환호하며 감탄했다. 나루터는 손뼉 치고 열광하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누구 하나 발을 쉽게 떼지 못하고 주막배가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자 하였다.
“태워주세요. 제발 태워주세요!”
배가 나루터를 떠나자, 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더니 배를 따라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달리며 소리쳤다.
손님들이 자리를 잡자, 얼굴에 이상한 가면을 쓴 무희와 악사가 춤으로 분위기를 달구기 시작했다. 달콤한 술과 먹음직한 고기가 한 상 가득 나오니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는, 한밤의 유희였다.
덜컹―!
천천히 흘러가던 배가 갑자기 멈춰 섰다.
“일단, 멈춤!”
마치 뱃머리가 말한 듯했다. 굵고 탁하여, 사람 목소리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다들 무슨 일인지 두리번거리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배 난간에서 초롱을 든 채 물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푸―! 어 푸―!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배를 따라 달려오던 아이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배가 서지 않자 급한 마음에 강물로 뛰어들었던 모양이었다.
꼬르륵―꼬르륵―
아이는 마지막 공기 방울이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의식을 잃은 채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어이쿠! 재주 있는 꼬마 손님이 강물에 빠졌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보통 사람 얼굴 여섯 배는 됨직한 큰 얼굴의 사내가 그물을 당기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초립이 올려져 있었는데, 너무 큰 머리통 때문에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감을 얹은 듯 기괴했다.
그물이 배 위로 끌려 올라왔다. 그 안에서 죽은 듯 숨을 쉬지 않는 아이가 나왔다. 사내는 초립을 아이 얼굴에 덮어둔 채 손뼉을 치며 폴짝 뛰었다. 초립이 사내 키 높이까지 솟아오르자, 아이 입에서는 물이 샘솟듯이 솟구쳤다.
'휑!' 그는 곧바로 한쪽 코를 막고 소리 나게 코를 풀었다. 그러자 아이의 꺼졌던 배가 새 생명이 든 것처럼 볼록하게 부풀어 올랐다.
콜록콜록!
아이가 깨어나자, 둘러싼 손님들이 손뼉 치며 자기 일인 것처럼 좋아했다.
“이야, 멋지다! 제일 신통한 재주로다!”
손님 모두는 초립 쓴 사내를 칭찬했다. 바짝 얼었던 긴장이 풀리면서 손님들의 흥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풍악을 울려라!”
“지화자 좋다!”
털퍼덕―
한 손님이 술 한 잔과 고기 두 점을 먹고 빙 돌다 쓰러졌다. 쓰러진 방향에 있던 아가씨가 벌칙으로 재주를 뽐낼 시간이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작은 칼 두 개를 꺼내 들고는 풍악을 울려달라고 요청했다.
챙! 챙 챙! 챙챙! 챙―!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손님들 마음을 뜨겁게 했다. 풍악에 맞춰 움직이는 아가씨의 발놀림과 손놀림이 매우 아름다워, 구경하던 손님 모두 칼춤을 넋 놓고 보았다.
“멋진 춤이다!”
“재주가 최고다! 최고!”
뜨거운 함성 속에 아가씨가 술 한 잔과 고기 두 점을 먹고 칼춤을 추며 빙 돌았다. 쓰러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쓰러―져!”
“쓰러져―!”
손님들이 입 모아 쓰러지라고 외쳤다.
빙 돌며 손님들 얼굴을 일일이 살피던 아가씨가 구석에서 슬픈 눈을 하고 있던 아이와 마주쳤다.
‘동생은 잘 지내고 있겠지?’
그 짧은 순간, 그녀는 친척에게 맡긴 동생이 떠올랐다. 눈물 많고 겁이 많던 아이가 친척 집에서 눈칫밥을 먹지 않는지 항상 걱정하던 누이였다.
‘잡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그녀는 주막배에서 쫓겨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아 소원을 말해야만 했다.
아가씨가 빙빙 돌면서 둘러싼 손님을 헤쳐 가더니 아이 앞에서 드디어 쓰러졌다. 아이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구경하던 손님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쓰러졌던 아가씨는 아이 앞에 앉아 그 애를 말없이 꼭 안아 주었다.
이때 여인이 다가와 아이에게 물었다.
“이제 네 재주를 보여주겠니?”
아이는 일어나 대뜸 강을 향해 두 번 절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강에 들어가신 아빠―!”
“강에서 얼른 나오세요. 함께 집에 가요.”
“아빠! 아빠! 집에 가… 엉엉.... 요.”
아이가 노래를 부르다 말고 펑펑 울어버리자, 모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를 지켜보던 여인이 초립 쓴 사내를 부르더니 한참을 속닥거렸다.
“아빠를 강에서 구하고 싶니?”
초립 쓴 사내가 아이에게 다가가 제안했다.
“네…”
아이는 코를 훌쩍이며 힘없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하는 것을 견뎌야 한다. 네 온 마음을 담은 슬픔이 곧 대가다.”
그러고는 아이의 다리 한쪽을 잡고는 망설임 없이 강물에 집어넣었다.
“헉, 아이에게 뭐 하는 짓인가?”
구경하던 손님 모두가 놀라고 말았다. 아이를 물에 넣고 빼기를 여러 번 한 후 아이에게 재차 물었다.
“아직 더 해야 하나 보다. 할 수 있겠니?”
아이가 고개를 간신히 끄덕이자, 초립 쓴 사내는 다시 아이를 물에 넣고 빼는 동작을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반복했다.
바로 이때, 강물 바닥에 앉아 있던 ‘물속 죽은 자의 왕’은 아이의 팔에서 흘러나온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한 죽은 사내의 팔에 감기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는 아이를 붙잡기 위해 죽은 사내를 놓아주었다. 마치 미끼처럼 풀려난 죽은 사내가 수면 위로 천천히 떠올랐다.
“드디어 잡았다!”
초립 쓴 사내가 고함을 치고는 팔을 번쩍 들었다. 아이 손에 아빠의 손이 꼭 잡혀 있는 것이었다. 배 위에 아빠를 눕혔으나, 이미 차가운 시신이 된 지 오래였다.
“아빠― 아빠―”
물컹거리는 아빠의 몸을 부둥켜안은 채 아이는 슬피 울었다.
초립 쓴 사내는 아이와 아빠의 시신까지, 허리춤에 감고 있던 보자기로 감싼 후, 홀연히 배에서 사라졌다.
여인이 초롱에 숨을 길게 불자, 벚꽃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배 가득 채우니 손님을 홀리기에 매우 황홀했다.
“자, 다시 재주를 부리며 신나게 놀아봅시다.”
주막배의 밤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손님들은 곧 아까의 비극을 완전히 잊은 듯, 다시 황홀한 유흥과 환호 속에 젖어 들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자신의 즐거움과 소원뿐이었다. 주막배는 안갯속으로 더욱 깊이 흘러갔다.
04_도깨비의 부하
집 뒤에 무덤을 만들었다. 아이는 정성껏 숭늉을 만들어 아빠 무덤에 올리고 절했다. 그제야 비로소 안심되었는지 아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돌봐줄 가족이나 친척이 있니?”
초립 쓴 사내가 아이에게 물었다.
“저에겐 아무도 없어요.”
“얘야? 아저씨를 자세히 보렴.”
초립 쓴 사내 대신, 바위만 한 얼굴의 거대한 도깨비가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아저씬… 도깨비예요?”
“도깨비지! 장난 좋아하는 심술궃은 도깨비가 바로 나야! 크하하하!”
도깨비는 동그래진 아이의 눈을 보고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재밌다는 듯 웃었다.
“도깨비가 무섭니? 호랑이가 무섭니? 어흥―”
도깨비가 바위만 한 얼굴을 아이 얼굴에 바짝 붙이고는 호랑이 흉내를 내며 물었다.
“아저씨는… 아빠를 구해주셨잖아요. 저는 무섭지 않아요. 좋아요.”
아이의 대답을 듣자, 도깨비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나이대의 아이가 가질 수 없는 담력과 지극한 효심이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도깨비가 오랫동안 찾던 부하로 삼을 만한 인간이 바로 이 아이였다.
“나를 따라오려나.”
도깨비가 짐짓 커다란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먼 산을 바라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아이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따라갈게요. 따라가고 싶어요.”
“그래, 내가 배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았을 테니 나를 도와줄 수 있겠지?”
“네, 아저씨 일을… 아! 도깨비님 일을 열심히 도울게요.”
“좋다. 그럼, 지금부터 너는 도깨비 부하가 되는 거다.”
“네, 도깨비 대장님!”
“으하하”, “하하”
도깨비와 아이는 크게 웃었다.
도깨비와 아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아이의 슬픔을 위로하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술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후로 아이가 살던 집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아 쓸쓸하게 허물어졌다. 그러자, 항상 집의 그늘에 가려졌던 무덤 위로 따뜻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가끔 달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무덤 앞에 술잔이 놓이곤 했다. 마을 주민들은 '아들이 다녀갔나 보다'며 술잔 옆에 가끔 숭늉을 올렸다.
“제가 이만큼 컸습니다. 아버지…”
시간이 흘렀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근육질의 사내가 무성하게 자란 풀을 뽑으며 혼잣말했다. 그는 더 이상 겁에 질린 아이가 아니었다. 도깨비 부하로 성장한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강해진 성장을 보고하는 듯했다. 땀을 흘리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여전한 미소가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비극을 초월한 운명적 선택에서 오는 평온함이었다.
06. 나는 어떡하면...
두 번째 이야기인 <주막배>는 위장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밤에, 꿈에서 너무도 선명하게 보고 들은 것이었다. 그게 꿈인지 실제 경험한 것인지 혼란스러웠으나, 일단은 '꿈'이라 믿고 싶었다.
"재밌어요!"라고 눈앞의 도깨비를 올려보면서 크게 소리치자마자, 잠에서 번쩍 깼기 때문이다.
새벽 2시 13분에 노트북 앞에 앉아 그 이야기를 미친 듯이 쓰기 시작했다.
키보드를 정신없이 두드리는 와중에 목구멍을 타고 온 핏덩이가 여전히 혀 위를 돌아다녔다. 마치 '너 지금 위험하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야기 쓰는 게 어느 정도 진척되자 위장의 고통은 잦아들었지만, 핏덩이의 쇠맛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쓴 글을 올리고 나자, 문득 걱정이 됐다.
'큰일인걸.... 다음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는데, 어떡하지? 어떡하면 되는 거지? 이러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면... 어떡하.. 지? 이대로 처참하게 죽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