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호랑이 3화: 흰 눈썹

by Tigerwood

05_수컷 흰 눈썹

암컷 호랑이는 죽은 새끼 한 마리를 물고 마을 북쪽에 터를 잡고 사는 늙은 수컷 호랑이 흰 눈썹을 찾아 길을 나섰다. 새끼들을 잃은 어미의 억울함과 복수심, 그리고 새끼들의 아비에게 기댈 마지막 희망이 갓난이를 북쪽으로 이끌었다. 갓난이의 죽은 세 새끼들의 아빠는 북쪽의 산주, 흰 눈썹이었다.

어미 갓난이의 입에 물려 있는 죽은 새끼의 몸은 볼품없이 축 늘어져 흔들렸다. 죽은 새끼의 콧속으로 시꺼먼 파리 떼가 알을 까려는지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그 역겨운 풍경만이 갓난이의 억울함을 함께하고 있었다. 갓난이는 수컷 흰 눈썹의 짙은 냄새를 따라,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북쪽 산 깊숙한 곳으로 계속 걸었다.


“크으… 크응… 크으…”

갓난이는 빛이 잘 드는 큰 바위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던 수컷 흰 눈썹을 보자마자 애달픈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갔다. 고개를 든 수컷 흰 눈썹은 암컷 갓난이를 보자 배를 뒤집어 교태를 부렸다. 따스한 햇볕을 같이 즐기자는 듯이 뒹굴뒹굴했다.

어미 갓난이는 수컷 흰 눈썹의 머리맡에 죽은 새끼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뒤, 파리가 꼬인 새끼를 연신 핥아주었다. 아빠인 수컷 호랑이가 비참하게 죽은 가여운 새끼에게 애정이나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가지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수컷 흰 눈썹은 죽은 새끼에게 단 한 번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묵직한 몸을 일으켜 바위에서 뛰어내리더니 북쪽 숲으로 미련 없이 사라져 버렸다.

늙은 수컷 호랑이 흰 눈썹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어미 갓난이는 어둠에 완전히 파묻힐 때까지 한 저의 미동도 없이 북쪽 숲을 바라보았다.

06_영물과 흰 눈썹

해가 바뀌고 봄을 앞둔 늦겨울, 암컷 갓난이가 발정이 났다. 발정 난 냄새에 이끌려 가장 먼저 찾아온 호랑이는 북쪽 산의 늙은 수컷 호랑이 흰 눈썹이었다.

“크릉 크릉 크르릉…”

늙은 수컷 흰 눈썹은 암컷 갓난이의 주변을 돌며 교미하려고 다가갔지만, 암컷 갓난이는 완강히 거부하며 늙은 수컷 호랑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흰 눈썹은 쉬이 물러나지 않고 밤낮으로 갓난이 주변에서 배를 뒤집어 교태를 부리며, 짐승을 사냥하여 가져다주었다. 갓난이의 발정 난 냄새에 몸이 달아오를 데로 올라 있었다. 곧 암컷 호랑이가 넘어올 것임을 늙은 수컷 호랑이는 잘 알고 있었기에 서두르지 않고 꾹 참으며 기다리는 눈치였다.

사흘째 되는 아침에 암컷 갓난이가 수컷 흰 눈썹이 가져다준 사슴을 뜯어먹었다. 수컷 흰 눈썹은 ‘이제 됐다’라고 생각하여 암컷 갓난이 뒤로 다가가 교미하려 했다. 그때 늙은 수컷 흰 눈썹은 맞은편 숲 속, 어둠의 경계에 서서 암컷 갓난이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노려보는 젊은 수컷 호랑이 영물을 보았다.

암컷 갓난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쳐다보고 있는 젊은 수컷 영물을 못 본 듯이 사슴을 뜯어먹기만 하더니, 늙은 수컷 흰 눈썹이 암컷 갓난이 엉덩이에 올라타려는 순간, 고개를 살짝 들어 영물을 슬쩍 쳐다보았다. 늙은 수컷 흰 눈썹이 알아채지 못하게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것은 마치 영악한 젊은 호랑이를 부르는 듯한 묘하고도 결정적인 신호였다.

젊은 수컷 영물은 늙은 수컷 호랑이와 암컷 호랑이를 동시에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첫발을 조심스레 내디딘 후로는 점점 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교미를 막 하려던 늙은 수컷 흰 눈썹의 눈앞까지 젊은 수컷 영물이 겁도 없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자기 앞에서 이만큼 무례하게 행동한 호랑이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수컷 흰 눈썹은 적잖이 당황했다.

젊은 수컷 영물은 늙은 수컷 흰 눈썹의 머리와 거의 마주칠 정도로 다가섰으나, 다른 행동은 하지 않고 암컷 갓난이만 내려보았다. 이때 암컷 갓난이가 고개를 들어 젊은 수컷 영물을 도발하듯 보았다.

“크르릉! 크르릉! 크르릉!”

더러운 기분을 느낀 늙은 수컷 흰 눈썹이 젊은 수컷 영물을 향해 물러나라고 으르렁거렸다. 오랫동안 넓은 영역을 지배해 온 산주답게 위엄이 무척이나 남달랐다. 그는 큰 덩치를 과시하듯 몸을 천천히, 육중하게 일으켜 세웠다.

젊은 수컷 영물이 움찔하여 뒤로 여러 발짝 물러나는 순간, 암컷 갓난이가 벌떡 일어나 젊은 수컷 영물 앞으로 다가가더니 엉덩이를 내밀고 앉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넋이 나간 늙은 수컷 흰 눈썹이 멍한 상태로 가만히 있자, 암컷의 발정 난 냄새에 도취한 젊은 수컷 영물이 암컷 갓난이의 신호를 승리의 깃발로 받아들여 더 이상 늙은 수컷 흰 눈썹이 무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젊은 수컷 영물이 엎드린 암컷 갓난이를 가볍게 펄쩍 뛰어넘어 늙은 수컷 흰 눈썹을 눈 깜짝할 새에 공격했다.

“꺄항! 꺄항!”

젊은 수컷 영물의 오른 발톱에 머리를 할퀸 늙은 수컷 흰 눈썹이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두 수컷 호랑이의 싸움은 싱겁게 승부가 결정 나버렸다. 늙은 수컷 흰 눈썹은 왼쪽 눈이 심하게 찢어져 피를 철철 흘렸는데,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동쪽 산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어흥! 어흥! 어흥—!”

젊은 수컷 호랑이 영물이 승리에 취해 우렁차게 포효했다.

젊은 수컷이 암컷 갓난이 엉덩이에 올라타 갓난이의 목을 살짝 물던 시점에, 갓난이는 고개를 살며시 돌려 사라지는 늙은 호랑이 흰 눈썹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늙은 호랑이 흰 눈썹은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고개를 뒤로 돌린 순간 암컷 갓난이와 눈이 마주쳤다.

“흐엉- 흐엉- 흐엉-”

암컷 호랑이 갓난이가 조롱하듯 발정 난 콧소리를 계속 내자, 늙은 수컷 흰 눈썹은 상실과 모멸감 속에서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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