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그리운 야옹이
길 야옹이
천변 옆 풀밭에 길야옹이 두 마리가 보인다.
새끼를 낳았는지, 언제나 나란히 앉아 있다.
오가는 사람 손을 타서인지, 다가가면 만지게 허락한다.
산책길에 나는 매일 그 야옹이들을 쓰다듬는다.
길야옹이는 좋아라 하며 꼬리를 살짝 흔든다.
나는 야옹이를 키워본 적이 없다.
친구는 야옹이를 키우며 말했다.
“엉덩이를 두들겨주면 좋아해.”
그 말대로 ‘토닥토닥’ 해주면 신기하게도 야옹이는 눈을 반쯤 감고 행복해한다.
내 짝꿍은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강아지도, 야옹이도, 대부분의 동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산책길에서 야옹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쓰담쓰담하며 말을 건네면,
짝꿍은 혼자서 훌쩍 앞서가 버린다.
나는 뒤늦게 ‘난 바삐’ 뛰어가 따라붙는다.
요즘은 밤낮의 온도 차가 커서인지
두 마리 야옹이는 서로에게 꼭 붙어 있다.
다행히도 어느 아주머니가 매일 밥을 챙겨주신다.
주변은 재개발로 집들이 사라졌지만,
야옹이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작은 집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길야옹이 들도 하루를 견뎌낸다.
그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오가는 이들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고,
정이 그리운 듯 기다린다.
사람이 버렸는데,
야옹이들은 여전히 사람을 그리워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말하고 싶다.
“자신이 없으면, 키우지 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나 또한 딸이 키우지 못하겠다며 데려온 햄스터를
‘딱하다’ 하면서도 정을 주며 키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다음 생엔 인간으로 태어나렴.”
짧은 생을 인간 곁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때로는 슬프게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
그들의 눈빛 속에 비친 인간의 책임을,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